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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삶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by Eunhye Grace Lee

돌아보면, 나의 인생은 한 번의 이주를 계기로 전혀 다른 흐름을 타게 되었다.


국경을 건넜다는 물리적 변화보다 더 크게 나를 바꾼 것은, 타지에서 '나'라는 사람을 처음부터 다시 살아가야 했다는 점이었다.


일본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언어도 미숙했고, 문화도 낯설었고, 주변엔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불완전한 나'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동안,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은 완벽한 준비 끝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일본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된 것도 사실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


우연히 통역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일이 나를 복지 현장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나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진심과 열정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사연이 있었다.


누군가는 아파도 병원에도 가지 못했고, 누군가는 가족도 없이 요양원에 홀로 계셨다.


나는 이방인이었지만, 그들 역시 이 사회에서 ‘조금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공감과 연결을 경험했다.



내가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건


누군가를 도와야겠다는 '사명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상담실에서 마주 앉은 어르신과 나누었던 따뜻한 눈빛, 함께 서류를 작성하며 손끝에 전해졌던 조심스러운 마음,


고맙다고, 덕분에 안심이 된다고 말해주던 짧은 한 마디.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 "너는 여기 있어도 돼"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덧, 일본에서의 삶이 내 삶의 반을 채웠다.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내게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일본 사회복지사’로서 소개되기도 한다.


그런 순간마다 마음속에 조용히 되뇌인다.


나의 두 번째 삶은 일본에서 시작되었고, 이곳에서 나는 다시 나를 길러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이 땅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함께 살아가는 일’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믿으며.




나의 첫 번째 삶이 나를 이끌어줬다면,
두 번째 삶은 내가 나를 선택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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