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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by Eunhye Grace Lee

어떤 단어는, 단지 말 이상의 무게를 가진다.

나에게 ‘이방인’이라는 단어는 그런 단어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나는 그저 ‘외국인’이었다.

말이 서툴고, 표정이 익지 않고, 행동이 조심스러운 사람.

무언가를 할 때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고,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까’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모든 감정의 바탕에 ‘나는 이곳에 속하지 못한다’는 막연한 불안과 슬픔이 깔려 있었다는 것을.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항상 주변부에 있다는 감각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대화 속에서 유행어 하나를 놓쳤을 때, 행정 문서를 앞에 두고 단어의 뉘앙스를 몰라 멈칫할 때, 누군가의 말에 모두가 웃을 때 나만 이해하지 못할 때, 그 순간 나는 나의 ‘낯섦’을 또렷하게 자각했다.


그리고 그 자각은 마치 내 안에 얇은 투명막을 하나 더 씌우는 것 같았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조금은 멀리 있는 기분.

가까워지고 싶은데, 쉽게 스며들지 않는 거리감.


그러나 그 막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은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사회복지사로서 이방인의 시선으로 복지 현장에 서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 시선이야말로 내가 누군가를 ‘타자화’하지 않도록 나를 단단히 붙들어주는 감각이라는 것을.


내가 겪었던 낯섦, 거리감, 소외감은 타인의 고통을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나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고 싶다는 태도만큼은 놓치지 않게 되었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나와 다른 삶의 방식과 언어, 세계를 마주할 때 두려워하지 않고 멈춰서서 듣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자리이며, 어쩌면 나라는 인간을 더 정직하게 바라보게 해준 정체성이기도 하다.


나는 이 땅에서 여전히 어딘가 어색하게 존재하지만, 그 어색함 덕분에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있다.

사람의 마음, 삶의 무게, 관계의 결.

그리고 나 자신.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완전히 속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진심으로 연결되려 애쓰는 삶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애씀은, 내가 이곳에 존재할 수 있게 만든 가장 고요하고도 강한 힘이었다.


이방인이라는 이름은,

내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 또 하나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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