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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떻게 복지인의 위상을 높였는가

by Eunhye Grace Lee

‘돌봄’이라는 단어는 따뜻한 울림을 지니고 있지만, 때로는 가볍고 소극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종종 ‘돕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역할로 축소되어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복지인을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사회를 지탱하는 전문가로 자리매김시키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사회적 노력을 지속해 왔다.


1. 전문직으로서의 복지인


일본에서는 사회복지사(社会福祉士), 개호복지사(介護福祉士), 정신보건복지사(精神保健福祉士) 등의 자격을 국가자격으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자격 취득을 위해서는 단순한 시험 통과만으로는 부족하며, 지정 교육기관에서의 전문 교육 이수, 현장 실습, 윤리 교육 등의 과정이 요구된다. 이처럼 체계적이고 엄격한 자격 제도는 복지인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갖춘 직업군임을 사회적으로 각인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2. 복지 실천의 철학적 전환


일본은 복지 실천을 단순한 ‘도움’의 차원이 아니라,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활동으로 재정의하고자 하였다.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의 보급과 실천을 통해 복지인을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지지하고, 구조적 불평등에 대응하는 전문가로서 자리매김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복지인의 사회적 역할을 보다 공적이고 적극적인 차원으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3. 학문과 제도의 뒷받침


전국적으로 사회복지학과 및 개호복지사 양성 기관이 다수 존재하며, 교육과정은 이론과 실천이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다. 복지학은 단지 실무 기술을 익히는 영역에 머물지 않고, 사람과 사회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적 실천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복지 직업군의 위상을 학문적으로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4. 복지인의 처우 개선 노력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복지 인력 확보가 사회적 과제가 되면서, 일본 정부는 개호 인력의 처우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일정 경력 이상의 복지인에게는 경력 단계별 수당(キャリア段位制度)을 도입하였으며, 전반적인 임금 인상도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보상 체계는 복지인이 직업적 안정성과 자긍심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정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5.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


일본은 복지인의 사회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 왔다. 예를 들어, 11월 11일을 ‘개호의 날(介護の日)’로 지정하고, 전국적인 캠페인을 통해 “개호는 사회를 지탱하는 일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TV 광고, 포스터, 교육기관과의 연계 행사 등을 통해 복지직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6. 지역사회에서의 복지인의 핵심 역할


내가 일하고 있는 지역포괄지원센터(地域包括支援センター)에서는 사회복지사가 지역 내 통합적 사례관리자이자 권리옹호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지원이나 상담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복지인을 공공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전문 인력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구조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


복지인을 단순한 ‘돕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성과 윤리를 겸비한 공공전문직으로 자리매김시키기 위한 일본의 경험은, 한국 사회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자격 제도의 정비, 보상 체계의 현실화, 국민 인식 개선은 함께 병행되어야 하며, 복지인이 자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복지는 모두의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복지인은 단지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제도, 사람과 사회를 잇는 다리와 같은 존재이다. 일본은 이러한 역할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여러 해석과 노력을 거듭해 왔다.

이러한 방향성은 한국의 복지 현실에도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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