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진로(進路),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는 말은 언제부턴가 ‘정답’을 찾아가는 여정처럼 여겨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진로를 고민할 때 던지는 질문은 대개 이렇습니다. “무엇을 해야 잘 살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질문은 언제나 불안했습니다. 아무리 잘 짜인 계획을 따라가도 세상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명확한 로드맵을 세워도 마음은 늘 어딘가 어긋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착했습니다. 어떤 자격을 갖추고, 어떤 일자리를 얻고, 어떤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점점 제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계획은 있었지만 감정은 없었고, 목표는 있었지만 의미는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피어올랐습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이 질문은 진로를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의 문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특정한 직업이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삶의 태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존 듀이는 교육을 특정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성장의 과정’이라 했습니다. 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어느 날 도착하는 지점이 아니라, 매 순간 내 삶의 태도를 점검하고 조정해 가는 일상의 실천입니다. 진로란 커리어를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내 삶을 어떤 기준과 자세로 살아갈지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울리히 벡이 말했듯 현대 사회는 불확실성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더 이상 안정된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속에서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전문성이나 성취만이 아니라, 세상과 삶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저는 사회복지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 그것이 제 커리어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길이 저에게 맞는지도 잘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저와 잘 맞았던 이유는 제가 이 일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이 일을 대하는 태도 안에서 ‘나다운 삶’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요.
“어떤 태도로 일할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만날 것인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이 질문들은 제 진로를 단순한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윤리로 확장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확장은 저를 더욱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까’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의 선택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진로는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이고, 속도이며, 무엇보다 삶의 자세입니다. 제가 이 길을 선택한 것은, 그 일이 저를 나답게 살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전히 길 위에서 고민하고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조차 제 삶을 더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진로란 결국,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선택한 이 길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 위에서 저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그 ‘태도’는 언제나 정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