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작게 도움이 되는 순간, 나는 내 존재를 다시 믿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아주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은 오래도록 제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어떤 날은 그 한마디 덕분에 하루를 버틸 수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제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주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회복지사님들과 함께 처음 현장에 들어갔을 때, 저는 너무도 작게 느껴졌습니다. 낯선 제도, 복잡한 행정, 거대한 체계 속에서 제 역할이 무엇인지조차 알기 어려웠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처럼 능숙하지도, 매끄럽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통역 몇 마디, 문서 정리, 일정 확인 같은 작은 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일들이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저는 제 자신을 조금씩 회복해 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에 ‘조금’ 도움이 된다는 감각이, 제 삶 전체에는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카뮈가 말했듯, “삶은 부조리하지만, 인간은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는 문장은 제게 오래 남았습니다. 의미는 언제나 거창한 업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만남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누군가의 일상 속에 제가 머물렀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제가 무가치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존재란 그렇게, 작지만 지속적인 접촉 속에서 단단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사회학자 미드가 말한 것처럼 자아는 타인의 반응을 통해 형성됩니다. 저는 누군가의 미소, 짧은 감사의 말에서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일을 했을 뿐인데, 그것을 누군가가 “필요했다”고 말해주는 순간, 일은 존재로 확장됩니다. 저는 그때, 단순히 직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참여한 것이라는 실감을 얻었습니다.
현장에는 ‘완벽한 답’이 없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 미완성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분명한 감각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데, 제가 작은 역할이나마 기여했다는 실감. 그것은 무력감 속에서도 제 존재가 작지 않다는 증거였습니다.
어느 날, 도움이 필요하던 한 외국인 노동자가 제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습니다.
“그날 사회복지사님이 여기 있어서, 제가 덜 무서웠어요.”
그 말에 저는 울컥했습니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사람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나의 존재가 ‘필요’로 받아들여지는 경험, 그것은 제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가장 단순하지만 강력한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너무 작고 일상적인 일이라 스스로는 하찮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그 작은 역할이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조용한 만남 속에서 저의 존재도 다시 살아납니다.
저는 이제 제 역할이 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반드시 성과를 내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순간을 건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확신이 제 자존감을 조금씩 회복시켜주고 있습니다.
“작은 역할이 큰 회복이 된다.”
그 문장이 지금도 저를 걷게 합니다. 크지 않지만 의미 있는 걸음을, 작지만 단단한 존재로서의 하루하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