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내 안에 없던 것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저는 제 자신을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능력도, 재능도, 인간관계도, 운도, 자격도… 세상 그 무엇도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단정짓는 순간, 제 세계는 서서히 닫혀가기 시작했습니다. 말은 줄고, 몸은 움츠러들었으며, 표정은 굳어만 갔습니다.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전에 이미 제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 규정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믿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아마도 ‘비교’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교는 언제나 외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묻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이루었는가, 어떤 학교를 나왔는가, 어떤 직장에 다니는가,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가. 우리는 스스로를 평가하기도 전에 이미 타인의 시선 속에서 평가받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보기 전에 “나는 모자란 사람”이라고 결론짓고 있었습니다.
루소가 말했듯, 인간은 ‘자기애’와 ‘허영’을 동시에 지닌 존재입니다. 자기애는 스스로를 긍정하는 힘이고, 허영은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허영의 그늘 아래에서 점점 작아져 갔습니다. 쿨리가 말한 ‘거울 자아’처럼 타인의 반응을 거울로 삼으며 살아가다 보니, 오랜 비난과 무관심은 결국 제 안에서도 저를 규정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을까요. 저는 어떤 날에는 살아남았고,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으며, 소중한 감정들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 사실들을 제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제 안에는 늘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자존감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타인의 말과 삶의 무게 속에 가려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드워킨은 인간의 존엄이란 고정된 지위가 아니라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능동적 노력” 속에서 실현된다고 말했습니다. 자존감 역시 바로 그 노력에서 비롯됩니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이는가가 더 본질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저는 저와 닮은 많은 이들을 만났습니다. 세상에서 ‘필요 없는 존재’로 취급되며 살아온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믿지 못했고, 결국 제 과거의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건넨 말이 사실은 제 자신에게 향한 위로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갖고 있어요.”
“지금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이 말을 전하며 저는 제 안의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고 있었습니다. 자존감은 거창한 변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인정에서 시작됩니다. 나의 목소리를 내고, 감정을 부정하지 않으며, 나의 선택을 존중하는 그 사소한 순간들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에게 고개를 돌릴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여전히 불안하고, 비교와 열등감에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는 저를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제 안에는 꺼내지 않은 문장들이 있고, 누군가를 따뜻하게 할 감정이 있으며,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제 안에 제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자존감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은 제가 제 자신에게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할 때 가능해집니다.
오늘도 저는 조용히 되뇌어 봅니다.
“나는, 나로 살아갈 수 있다.”
그 문장을 믿는 날이 점점 늘어가며, 그 믿음이 다시 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