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와 평가가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나는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동안 저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끊임없이 증명하려 애썼습니다. 더 많은 자격증, 더 빠른 성과, 더 좋은 평가를 통해서만 저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내가 나를 믿기 전에,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저를 자주 불안하게 만들었고, 비교의 함정 속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사회는 늘 경쟁과 평가를 요구합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느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지,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승진했는지. 그 외적 지표들에 의해 우리는 줄 세워지고, 위아래로 구분되며, 끊임없이 ‘더 나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점점 저 자신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현대인은 스스로를 상품처럼 여기며 외부의 시선으로 자신의 가치를 측정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처럼, 저는 오랫동안 타인의 눈에 흔들리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자라는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저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평가가 멈춘 공간을 경험했습니다. 자격증보다 마음이, 이력보다 태도가 먼저 작동하는 자리. 사람을 마주할 때 성과는 무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얼마나 잘 들어줄 수 있는가’, ‘얼마나 오래 곁에 머물 수 있는가’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경쟁 속에서 억눌러 왔던, 그러나 본래 제 안에 있던 감각이었습니다.
고프먼이 말했듯, 인간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 가면을 씁니다. 하지만 자존감은 그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관계에서 비로소 자랍니다. 현장은 저에게 그런 관계를 허락했습니다. 꾸미지 않아도, 실수해도 받아들여지는 자리. 그 자리에서 저는 비로소 제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존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를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상호 존중 속에서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라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곧 자존감이 자라는 사회를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존감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수용해주는 타인의 시선과 언어, 실패에도 곁에 있어주는 관계 속에서 자랍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저는 그런 관계를 배우고, 조금씩 만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자존감은 잘하려는 의지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견디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더 이상 모든 자리에서 저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제 저는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도 저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칭찬이 없어도, 제가 제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자존감은 경쟁에서가 아니라 수용 속에서, 증명에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랍니다.
지금 저는 평가가 멈춘 자리에서 제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있습니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온기를 느낍니다. 더 이상 과장하지 않아도, 감추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이제 제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자존감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