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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의 또 다른 이름, 기다림과 믿음

by Eunhye Grace Lee

올해도 그렇게 더웠던 여름이 지나가려고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하루하루 내 자리를 지켜내려 애쓰며 살아내고 있는 날들입니다.


오늘은 사회복지사로 살아오며 배운 것 중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흔히 ‘도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늘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제공하는 행위로 여겨집니다. 제도, 서비스, 지원금, 프로그램… 사회복지의 언어는 언제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것이 전부라고 믿었습니다. 어려움에 놓인 이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제도를 연결하는 것, 그것이 최선이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도움은 꼭 ‘무언가를 해주는 것’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어 주는 일, 그 사람이 스스로 걸어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지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타인을 돕는다는 것은 그가 이미 스스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건, 사람 안에는 이미 일어설 힘이 있다는 단순한 진리일지도 모릅니다. 눈앞에 어려움이 있어 보여도, 그 안에는 여전히 잠재된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때로 그 가능성을 ‘발견해주는 사람’이라기보다 ‘믿어주는 사람’에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무언가를 해주지 않으면 마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하니까요. ‘기다림’은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남지 않고, ‘믿음’은 기록으로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조급해지고, 무언가를 건네야만 안심합니다. 그러나 제 경험은 말해줍니다. 그 기다림이 결국 누군가를 단단하게 세우고, 그 믿음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다시 걷게 한다는 것을.


돌아보면, 제 삶에도 그러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신뢰가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시간들. “너는 충분히 해낼 수 있어”라는 말보다 더 큰 선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저 역시 같은 선물을 건네고 싶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주변에서 그런 순간을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가까운 사람의 어려움 앞에서, 서둘러 대신해 주는 것보다 잠시 물러서서 지켜보며 “나는 네가 할 수 있다고 믿어”라고 말해준 순간 말입니다. 때로는 그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울타리이자 용기 아닐까요.


사회복지는 제도와 행정의 언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신뢰와 기다림의 예술에 가깝습니다. 도움과 자율, 개입과 기다림 사이에서 늘 흔들리며 고민하지만, 저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사는 단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이라고요.


이 글이, 복지를 공부하는 분들에게도, 현장에서 뛰고 계신 분들에게도, 그리고 일상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는 여러분께도 작은 울림으로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의 가능성을 믿을 때,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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