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연처럼 찾아온 사회복지사의 길

by Eunhye Grace Lee

어떤 길은 처음부터 선명하게 계획되어 있다. 목표가 있었고, 로드맵이 있었고, 각 단계마다 전략이 있었다. 하지만 내 길은 그렇지 않았다. 이 길은 계획되지 않았고, 준비되지도 않았으며,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방향이었다. 그저 우연처럼 다가왔고, 나는 그것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돌아보니 그 우연이야말로 내 삶을 가장 정확히 이끄는 나침반이었다.


나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서 일본에 온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좌절, 정체된 감정, 막막한 진로 속에서 그냥 이곳을 택했다. 어디선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차라리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살아보고 싶었다. 일본어는 서툴렀고, 문화는 낯설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조차 조심스러웠다. “괜찮은 선택이었을까?” 자문할 여유도 없이 생계를 이어가야 했고, 학교와 아르바이트, 공부와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런 나에게 사회복지라는 일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가왔다. 처음 시작한 일은 유학생이 할 수 있는 단순한 통역 아르바이트였다. 외국인 주민들이 시청이나 병원, 복지시설에서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 곁에 앉아 통역을 해주는 일. 정해진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고정된 업무도 없었다. 그저 외국어를 조금 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긴장과 두려움이 더 컸다. 내가 괜히 끼어드는 건 아닐까? 실수하면 어쩌지? 내가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현장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어떤 날은 말보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과 ‘태도’였다. 조심스러운 말투, 공손한 몸짓, 때로는 한숨 섞인 침묵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병원 진료에 동행한 어느 날, 불법체류 상태의 한 여성이 복통을 호소하며 진료를 받으러 왔다. 의료진은 당연히 치료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치료를 거부했다. 강제추방에 대한 두려움과 무엇보다도 돈이 없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녀와 의사 사이를 오가며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진료를 받았고, 병이 악화되기 전에 회복할 수 있었다. 치료를 마친 뒤, 그 여성이 흐느끼며 “고맙다”고 말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이 일이 ‘그저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서서히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서 ‘이 일이 나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로.

그리고 그 물음은 다시 이렇게 이어졌다.
‘나는 이 일을 평생 해도 괜찮을까?’


그 후로 나는 다양한 업무에 참여하게 되었다. 외국인 상담 창구에서 체류 자격과 생활 정보를 안내하기도 했고, 언어장벽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을 위해 각종 서류를 함께 작성하거나 공공기관을 동행하기도 했다. 단순히 ‘알려주기’보다 ‘함께 있어주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많았다. 복지란 꼭 뭔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곁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배웠다.


그 무렵, 나는 고민 끝에 일본의 사회복지사 자격제도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외국인으로서 시험을 준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일본어로 된 교과서와 이론은 낯설었고, 법과 제도를 외우는 것도 버거웠다. 하지만 내가 만난 현장의 장면들, 사람들의 얼굴, 그들과의 대화는 책을 넘기는 내게 실질적인 동기를 부여해주었다. 시험공부는 단순한 자격증 취득이 아니라, ‘이 일을 더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의 연장이었다.


사회복지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생각보다 섬세한 세계였다. 단순히 착한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었다. 때로는 거리두기와 단호함이 필요했고, 제도와 현실 사이의 균형 감각도 요구되었다. 특히 외국인으로서 현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나만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이 사회의 일원이 맞을까?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일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분류되지만, 동시에 일본 사회에서는 여전히 ‘도움받는 대상’으로 분류되는 이중적 위치. 그 모순이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야말로 나를 사회복지사로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되었다.


우연히 시작한 일이 나의 직업이 되었고, 직업이 내 삶의 방향을 바꿨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은 늘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 그저 우연히 소개받은 단기 통역 업무. 그 속에서 나는 나도 몰랐던 나의 성향과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는 ‘사람을 도우며 나를 발견하는 사람’이라고.

도움이 필요한 타인을 돕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사실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 길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 길이 꼭 사회복지가 아니어도 좋다.

당신에게도 그런 우연이 찾아올 수 있다.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한 선택이, 그저 생계 유지용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인생을 이끄는 지도가 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자신이 선택한 일의 크기를 너무 일찍 단정 짓지 말라고. 그 일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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