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활을 시작한 첫해,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의도한 것도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었다. 말하는 순간 실수할까봐, 엉뚱한 표현을 써서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까봐, 차라리 침묵을 택했다. 입을 열기 전부터 이미 머릿속에서는 수십 번 문장을 돌려보고 있었다. 이게 맞을까, 저게 더 자연스러울까, 발음은 괜찮을까. 그 모든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대화의 타이밍은 지나가곤 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 법을 배워가는 동안, 나는 언어라는 것이 단지 말을 잘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을 다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경험은 그런 배움을 더욱 분명하게 해주었다. 복지사무소의 외국인 상담 창구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한국말도 일본어도 서툰 어느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노동 중 다친 손을 보여주며 병원비 문제를 호소했지만, 정확한 상황을 설명하지 못했다. 나 역시 그의 모국어를 전혀 몰랐고, 일본어도 서로 어설펐다. 대화는 몇 분 동안 정지된 듯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한숨, 눈빛, 손짓, 그리고 한 자 한 자 힘겹게 꺼내는 단어들 속에서, 나는 그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날, 통역서류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했지만, 그와 함께 병원까지 동행했고, 접수처에서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고용보험제도를 활용해 긴급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주었고, 진료를 마친 후 그는 조용히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 없이, 단지 두 손을 모아 조용히. 그것은 어떤 미사여구보다 깊은 감정의 전달이었다.
이방인으로서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항상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사는 일일지도 모른다. 말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발음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실력이 낮게 평가받거나, 설명을 다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신뢰를 잃는 일. 나 역시 그러한 경험을 숱하게 겪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말하기’보다 ‘전해지기’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말은 어쩌면 껍데기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는, 그 말 안에 담긴 태도와 마음, 시선과 의도다. 나는 그것을 일본 사회복지 현장에서 배웠다. 일본인 동료들은 말수가 많지 않았다. 업무에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도의 말 외에는 격식을 갖춘 짧은 인사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태도와 눈빛, 행동에서는 존중과 책임감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태도야말로, 언어를 넘어서는 ‘진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툰 일본어로 말하면서 늘 실수했지만, 그 실수 안에 담긴 성실함과 정직함이 상대에게 전해졌을 때, 관계는 유지될 수 있었다. 반대로 아무리 유창하게 말해도 마음이 닿지 않으면, 그 말은 공기 중에 흩어질 뿐이었다. 복지현장은 특히 그렇다. 복지라는 단어는 ‘보살피고, 돕는 것’을 뜻하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인간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관계이다. 그 관계가 진실할 때, 말은 짧아도 충분하고, 표현이 부족해도 전달된다.
한 번은 상담 중 이용자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조심스럽게 옆에 앉아 “무슨 일이 있었어요?”라고 물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옆에 앉아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처럼 재촉하거나 혼내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처음이에요.”
그날 나는 깨달았다. 도움이란 꼭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때로 벽을 마주하는 일이다. 언어, 문화, 제도, 편견… 그 많은 벽들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감추거나, 혹은 더 크고 빠른 말로 자신을 방어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말하고 싶다. 언어가 다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마음을 어떻게 전하느냐라고.
나는 지금도 완벽하지 못한 일본어를 쓰며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내가 담으려는 진심과 신뢰가 분명히 전달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단어가 틀려도, 문장이 어색해도, 그 문장을 꺼내는 나의 태도가 진심이면, 사람은 알아본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외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소통’의 문제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말 속에서 진심이 사라지는 사회, 너무 유창한 설명 속에서 정작 중요한 감정이 누락되는 관계들. 그런 세상에서 필요한 건, 어쩌면 말보다 ‘마음’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든, 언어에 서툴든, 자기 표현에 자신이 없든,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사람은, 결국 마음으로 통한다. 그리고 진심은, 언제나 언어보다 깊고 멀리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