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낯선 언어로 된 이론과 법률, 제도와 윤리를 공부하며 매일같이 ‘내가 이걸 정말 해낼 수 있을까?’란 물음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자격증을 딴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실제 현장은 자격시험 문제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인간적이며, 훨씬 예외투성이였다. 그리고 그 예외 속에서 내가 의지했던 건, 자격증이 아니라 첫 경험의 기억들이었다.
처음 외국인 노동자와 상담을 진행했던 날, 나는 자격증이 없었다. 통역 자원봉사로 활동하던 시절, 상담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그는 노동 중 손가락을 다쳤지만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몰라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센터를 찾아온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도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곧장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과거에 비슷한 사례를 접했던 동료의 조언을 기억하고, 병원과 복지사무소를 오가며 지원을 연결할 수 있었다.
그때 느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지식이 아니라 ‘기억’ 때문이었다. 그때 그 여성의 불안한 눈빛, 그 남성의 떨리는 목소리, 동료가 조용히 건넸던 한마디가 내 안에 남아 있었다. 현장은 문제풀이가 아니라, 경험의 누적으로 살아가는 곳이었다.
자격증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복지 업무는 늘 불안했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 누군가 나를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실수에 대한 압박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절이 내게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없이 사람을 대할 때, 나는 오히려 더 조심스럽고, 더 귀 기울이게 되었고, 더 배우려는 자세로 임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이후 자격을 취득한 뒤에도 나를 지탱해주는 근력이 되었다.
사실 자격증이라는 것은 사회가 사람을 평가하고 분류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일정 수준의 지식과 훈련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장치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진짜 실력은 자격증을 따기 전부터 만들어진다. 말없이 옆에 있어줬던 시간, 이용자의 눈을 바라보며 고민했던 날들, 동료에게 고개 숙이며 배움을 청했던 순간들. 그 모든 시간이 자격증보다 더 깊게 나를 전문가로 만들었다.
한 번은 일본인 동료가 말했다.
“당신은 자격증이 있기 전에 이미 사회복지사였어요.”
그 말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물론 법적으로는 자격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지만, 사회복지사로서의 태도, 자세, 감각은 시험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후배들에게도 자주 말한다.
“자격증은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선이야. 그걸 따면 일이 쉬워지는 게 아니라, 그제야 진짜 어려운 일이 시작돼.”
그리고 덧붙인다.
“그러니 자격증을 따기 전에,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현장을 겪어보고, 자기 감정을 기록해보라고.”
자격증은 결국, 경험이 의지를 만나면 따라오는 결과물일 뿐이다. 물론 자격증은 중요하다. 사회 안에서 전문성을 입증받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기도 하고, 제도권 안에서 활동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자격증을 갖기 전의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가이다. 그 시절이 진심이었다면, 자격증을 딴 이후의 삶도 진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자격증이 없던 시절의 나를 좋아한다. 불안했고, 미숙했고, 실수도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이 ‘진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 진심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당신도 지금, 어떤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혹은 아직 자격증이 없어 무력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하고 싶다. 자격증은 나중에 따라오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당신이 경험하는 순간들이라고.
자격증은 종이 한 장이지만, 당신의 경험은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깊은 지식이 된다. 그리고 그 지식은, 시험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오늘 하루, 당신이 마주한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라. 그 경험이야말로, 어떤 자격증보다 깊은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격증을 가지기 이전에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