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전제가 깔린 문장이다. 단지 복지라는 분야에서 일한다는 말이 아니라, 외국인으로서 일본 사회의 제도와 문화 속에 ‘전문가’로 발을 들인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언어와 제도의 장벽, 미묘한 위계와 커뮤니케이션 방식, 그리고 ‘일본 사회의 정서’라는 보이지 않는 규칙들이 얽혀 있다.
처음 일본에서 사회복지 관련 업무를 시작했을 때, 나는 무엇보다도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느꼈다. 일본어는 문법보다 말투가 중요했고, 정확한 정보 전달만큼이나 상대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방식이 중요했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되는 사회. 그 속에서 외국인으로 일한다는 것은 매 순간 스스로를 ‘조율’해야 하는 일이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건, 바로 ‘일본식 관계 맺기’였다. 공적인 일조차도 눈치와 암묵적 기대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고,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분위기를 깨지 않는 사람’이 더 높게 평가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회의는 형식적으로 조용히 진행되고, 자신의 의견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튀는 행동’으로 간주되기 일쑤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방인’으로서의 나는 항상 나의 말투와 태도를 검열하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일본 복지 기관의 ‘팀워크 문화’다. 개인의 역량보다는 팀 전체의 조화와 흐름을 중시하는 구조 속에서, 각자의 역할은 비교적 분명히 정해져 있었고, 융통성보다는 ‘정해진 방식대로 하는 것’에 대한 신뢰가 강했다. 급하게 움직이기보다 천천히, 실수 없이, 반복 가능한 프로세스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 이러한 방식은 처음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속에 내재된 철학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본 복지 현장은 겉으로는 매우 조용하고 단정해 보인다. 문서 정리는 꼼꼼하고, 보고체계는 명확하며, 실무는 규칙대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과로, 낮은 처우, 감정노동, 구조적 한계 등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복지의 현실’이 존재한다. 예산이 부족해 필요 인력이 채워지지 않거나,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복지 이용자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기도 하고, 시스템이 너무 경직되어서 긴급한 지원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나는 이곳에서 일하며 종종 자문했다.
‘왜 사회복지사들은 늘 바쁘고, 늘 지쳐 있는 걸까?’
‘우리는 누구를 돕는가 이전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가?’
현장에서 일하는 일본인 동료들은 대부분 조용히,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냈다.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지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들은 ‘말하지 않는 것’이 곧 성실함이라는 식의 문화 속에서 감정을 억누르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배웠고, 때로는 안타까움도 느꼈다. 복지는 타인을 돕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한 번은 선배 사회복지사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힘들지 않으세요?”
그는 잠시 말없이 창밖을 보다가 이렇게 답했다.
“매일 힘들죠.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계속해요.”
그 말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그건 진짜 복지의 모습일까?
일본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시스템의 장점과 정서적 무게를 동시에 짊어지는 일이다. 규칙을 따르되, 관계 속에서 인간적인 온기를 유지해야 하고, 정해진 절차 안에서 예외적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며, 침묵 속에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리고 외국인으로서 이 일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층위의 긴장을 요구한다. 나는 여전히 일본인과 같은 완벽한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때로는 문화적인 뉘앙스를 놓치기도 하며, 법제도의 복잡한 구조 속에서 실수를 할까봐 조심한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가진 ‘다른 시선’이 현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겼다. 일본 사회의 경직된 문화 속에서, 나는 질문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타국 출신의 복지 이용자에게는 더 안전하게 다가갈 수 있는 동료가 될 수 있었다. 일본인이지만 일본 시스템에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가진 경계인의 정체성이 오히려 더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결국 중요한 건, 국적이나 언어가 아니라 태도와 자세였다. 복지를 ‘직무’로 보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쌓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일본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내가 배운 가장 큰 가치는 이것이었다. 정확한 말보다 정확한 마음,정해진 절차보다 함께 고민하는 자세, 높은 자격보다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인간성.
지금도 나는 일본이라는 타지에서 사회복지사로 살아가고 있다. 완전히 적응했다고 말할 수는 없고,
때로는 여전히 이방인의 감각을 느끼며 하루를 버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이곳에서 나도, 누군가의 일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오늘도 이 일을 계속할 이유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