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통역은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니다

by Eunhye Grace Lee

복지 상담 중 통역이 필요한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특히 고령 외국인, 기술실습생, 가족체류자 등이 증가하면서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은 주민들과의 의사소통 문제는 더는 특정 기관만의 일이 아니다.


어느 날, 베트남 출신의 여성 보호자 A씨가 치매 판정을 받은 시아버지의 장기요양보험 신청을 위해 지역포괄지원센터에 찾아왔다. 기본적인 일본어 회화는 가능했지만, 제도 용어나 신청 서류에 대한 이해는 제한적이었다. 나는 즉시 지역 다문화센터에 연락해 통역 지원을 요청했고, 이틀 뒤 베트남어 통역사와 함께 상담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통역이 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 자리에서 ‘통역’이 단순히 언어를 전달하는 것 이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예를 들어, 내가 “개호피보험자증(介護被保険者証) 갱신(更新、区分変更申請)을 위한 인증조사를 위한 방문 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면, 통역인은 그 말을 그대로 전달하려 한다. 하지만 상대방은 ‘조사’라는 단어에 당황했고, “왜 조사가 필요한가요? 시아버지를 감시하는 건가요?”라며 불편함을 표현했다.


나는 그때 문득, 내가 사용하는 복지 용어가 상대에게는 낯선 권력 언어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제도와 체계 속에 있는 사람은 그것이 ‘일상 언어’이지만, 그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이럴 때 통역은 단지 ‘단어’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 심리적 배경, 제도에 대한 이해 격차까지 조율하고 설명해야 한다. 그렇기에 통역은 일종의 중재자이며, 해석자이며, 때로는 다리 역할을 하는 감정의 조정자다.


또한, 통역 현장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단절은 단지 기술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말할지’보다 ‘어떻게 들릴지’를 고려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쉽게 위축되고, 복지 제도를 불신하게 된다.


A씨는 상담을 마친 후 이렇게 말했다.
“설명해줘서 고맙지만, 사실 아직도 불안해요. 제가 뭘 놓쳤는지, 뭘 잘못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문득 ‘언어’ 자체가 아니라 ‘이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지 시스템은 철저히 ‘설명하는 자’의 입장에서 설계되어 있다. 문제를 설명하고, 절차를 안내하고, 서류를 요청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해하는 자’의 입장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외국인을 위한 복지 통역이 단지 다국어 브로셔나 문서 번역만으로는 부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정한 의미의 통역이란, 제도와 제도 사이에 놓인 틈을 메우는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감정에 가까운 작업이며, 상대방이 두려워하는 것을 읽고, 무엇을 묻지 못하고 있는지를 포착하는 일이다.


나는 이후 상담 시, 통역이 동행할 경우 ‘말을 전달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의 균형을 맞추는 파트너’로 인식하려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좋은 통역사는 말하지 않은 맥락까지 끌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반면, 단지 문자적 전달에 그치는 통역은 오히려 오해를 깊게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다문화 통역’이라는 말을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복지 현장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복지란 결국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위한 복지가란, 언어 지원을 포함한 ‘접근성(accessibility)’ 확보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해 가능성(understandability)’까지 보장되어야 비로소 그 제도는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A씨는 지금도 시아버지를 돌보며, 지자체가 주최하는 일본어 교실에도 꾸준히 나가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누가 도와주는지, 어디에 가면 되는지는 알 것 같아요.”
그 말은 완벽한 이해보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감각’이 만들어졌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제도가 아닌 ‘사람을 통한 통역’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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