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핫 Aug 08. 2023

6. 마음 힘껏

'그땐 그랬지~'

내가 살던 곳은 대전이었다.


고향은 서울이었으나, 어린 시절 대전으로 내려 살게 되었다. 20년을 넘게 그곳에서 자라온 내게 고향이 서울이라는 말은 오히려 생경하기도 하다. 가장 친한 친구들도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그곳에서 만났다. 아직까지도 서로에게 친한 친구일 수 있음에 참 감사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처음을 간직한 그곳이 이따금 그립기도 할 법 한데, 전혀 잊고 지내다 가끔씩 들려오면

'살기 좋은 곳이지~'

하며 괜히 너스레 떠는 때 외에는 떠올리는 일이 없다.  그새 이 번잡한 도시가 익숙해진 걸지도. 어디든 2시간 내외면 갈 수 있는 편리함이 내 어린 시절 추억마저 두고 왔나 보다. 잊힘은 축복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그날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니.


그래서 이렇게 떠올려볼 때면 가끔 스쳐 지나간다. 저녁 어스름 지던 그날의 동네 놀이터, 배고픈 학생들 코를 간지럽히던 저렴한 값의 전기구이 통닭 트럭, 뭐가 그리 혼란스러웠는지 정처 없이 거닐던 그 동네 골목 어귀가. 내가 보고 듣고 자라던 도시는 마지막으로 가본 지 어엿 5년이 다되어간다. 짐을 챙겨 도착하면 그 도시는 나를 반겨줄까? 달라진 모습에 살짝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아~ 나이 먹기 싫다~'

라고 되뇌게 된다.




요즘 나와 그녀의 최대관심사는 역시 <내 집 마련>이다.

건물 옥상에 올라 바라보면 저리도 집이 많은데, 저 중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하나도 없다니.. 정말이지, 출근 안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알뜰살뜰 열심히 모아 그녀와 나의 회사, 그 중간지점으로 구해보자는 작은 꿈 하나를 심었다. 물도 주고 햇빛도 머금게 하려면 꽤나 쉬지 않고 가야겠지. 언젠가 꽃도 피고 열매도 맺게 하려면 심어놓은 꿈, 가꾸는 건 우리 몫이다. 먼 훗날, 돌아보면 내가 자라온 그 도시처럼

'그땐 그랬지~'

하고 추억할 수 있을까? 그렇겠지. 의심의 여지없이.


언젠가 같이 내가 자란 동네에 가보자고 말했다. 그녀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 예쁜 눈에 나를 비추며 그녀는 물었다.


"대전은 뭐가 맛있어?"

"음~ 맛있는 거 많지~ 칼국수가 유명하고, 내가 자주 가던 닭볶음탕 가게도 있고, 고기국수가 참 맛난 곳도 있어."

"그건 서울에도 있지 않아..?"


왠지 지는 느낌이다. 조바심 나는 것을 숨기며 말했다.


"흠흠. 그래도 대전의 자부심, 성심당이 있는 걸?"

"... 오빠, 성심당은 서울에도 있어."


그날, 이핫의 세계는 무너졌다.




최근 들어 기억력이 나빠진 걸까. 그녀와 나눈 이야기들이 잘 떠오르질 않는다. 얼마 전에는 무려 데이트하는 날 같이 가기로 한 음식점이 어디였는지를 까먹는 대참사가 벌어질 뻔했다! 하마터면 그날 저녁은 혼자 먹을 뻔했다. 달력에 일정을 쓰기도 하고, 나름 세심하게 잘 기억하려고 노력하는데 영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언감생심이다. 애초에 메모를 시작한 게 왜인데.

증거자료 제출

 그러나 요즘은 너무 메모에 의지하면서 사느라 머리가 굳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가기로 했던 가게를 기억해 내려 그날 데이트 전체를 반추해 보는데, 참 웃기게도 그 가게 이야기만 빼고 다 기억이 난다.. 결국 그녀에게 힌트를 듣고 정답을 생각해 냈다. 초밥 무한리필집.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 없기 때문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해봤다. 물론 씨알도 안 먹혔다. 미안, 다음부턴 힌트 없어도 혼자 기억할게. 그 가게 말하고 있는 순간의 네 얼굴 보느라 기억 못 했나 봐.

(응, 씨알도 안 먹힐 거 나도 알아.)


내 그림은 항상 세심했다고 그녀가 말했다. 내 기억이 세심하지 못한 대신, 내 그림이 세심한가 보다. 잊히는 것보다는 확실히 기억하는 쪽이 더 특권이다. 내겐 특권이 없으니, 그 특권 그림으로 남겨서 손에 쥐어야겠다. 앞으로도 더 많은 너를 그리고 담아내고 싶다. 순간순간추억할 수 있게끔. 그렇게 우리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그땐 그랬지~'

하며 같이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리워도 돌아가고 싶진 않을 만큼만, 딱 그 정도로 그리울 만큼 오늘 사랑하자. 돌아보는 그때가 언제든 오늘 가장 사랑하자. 지금을 마음 힘껏.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당신이었으면 좋겠.




최근에 업로드한 만화




작가의 이전글 5. 겨울에 태어난 남자, 가을에 태어난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