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휴지 뭉탱이

포근포근

by 태리우스

한 두 달 되었나요? 퇴근하는 길에 횡단보도 끝 길바닥에 두꺼운 커터칼 조각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은색의 날카로운 커터칼 조각이 눈에 보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어요. 저걸 주어서 안전하게 포장해서 버려야 하나? 아니면 옆에 구석 숨겨둬야 하나? 고민하다가 (저는 이런 고민을 자주 합니다.) 구석에 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 전에 지나가다가 있나 봤는데 그대로 있더군요. 언제 기회 되면 내가 치워야겠네 생각을 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퇴근하고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작은 커터칼 두 조각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관찰력이 뛰어난가 봐요. 그냥 갈까 하다가. 갑자기 강아지나 고양이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걔네들은 신발은 안 신잖아요. 지나가다가 밟아서 다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해졌습니다.


주머니를 뒤지니 다행히 휴지 뭉탱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휴지를 이용해 살살 주어서 휴지를 두툼한 만두피마냥 감쌌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생각하고 제가 숨겨두었던 커다란 커터칼 조각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여전히 구석탱이에 있더군요. 녹이 많이 슬었습니다. 그 장소가 어디냐면 횡단보도

빨간색, 파란색 불빛 나오는 박스가 매달린 기둥이거든요. 감이 오시나요? 지나가는 강아지들이 영역표시를 자주 할 것 같은 포지션입니다. 속으로 에이-하면서 약간 찡그려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맨손가락으로 살살 꺼냈습니다.


그리고 휴지 만두피를 다시 열어 두 개의 작은 커터칼과 함께 담고 휴지 뭉탱이 만두를 만들었습니다. 갖고 다니는 소독제로 손가락을 소독했습니다.


저는 왜 이런 거에 신경을 쓸까요? 아주 답답합니다. 지나가는 강아지가 커터칼을 밟고 피가 날까 봐 걱정이 되는 사람 있나요?

생각해보니 저는 날카로운 것을 잘 못 버리는 것 같습니다. 청소하는 사람이 다칠까 봐요. 그래서 휴지나 종이로 포장하고 펴지지 않도록 스카치테이프로 감싸서 버립니다.


그런데 저는 참 어리석은 것 같아요. 혹시 있을지도 모를 타인의 상처를 막기 위해 그렇게 애쓰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의 상처는 그다지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습니다.


기분 나쁘면 기분 나쁜 티 팍팍-!!

내고 화나면 화내고 한마디로 저는 힘들 때 진상짓을 하는 스타일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날카로움 찔리거나 베이면 상처가 난다는 걸 깊이 생각 안 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사람 마음과 기억에 날카로움으로 상처 주지 않도록 마음의 휴지 뭉탱이를 챙기고 다녀야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나도 신경질 나도 얼른 꺼내서 쿠션이 되어줄 수 있는 방법을 골똘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목사님의 설교말씀 중에

온도계 같은 사람이 아니라 온도조절계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온도계와 온도조절계는 비슷한 라임과 조절이라는 간단한 단어만 차이 날 뿐인데 그 구조의 차이는 개미가 보는 100미터 출발점과 결승점만큼 차이가 나는 거겠죠?


삐짐 수치가 올라가면 대인배 수치를 올려서 조절이라는 기능이 우리 마음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화나면 평안 모드로 바로 바꾸는 모드 전환 스위치도 괜찮을 거 같고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복잡한 조절 기능과 다양한 모드 기능이 탑재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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