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글을 쓰는 이유
최근에 신경 쓸 일이 많아 거울을 제대로 안 보고 살았습니다. 가끔 지나가듯 거울을 보고 요즘 표정이 왜 저러나 싶었지만 그래도 평생을 봐왔던 얼굴이라 그렇게 밉지는 않았죠. 그런데 어제 은행 거울 유리에 비친 저의 모습을 보고 완전 충격을 받았습니다.
먼저 너무 아저씨! 같아 보였습니다. 사실 아저씨긴 하지만 아직 결혼도 안 한 남정네가 머리숱도 없고 전혀 꾸미지 않은 건조한 헤어스타일, 깐깐하다 못해 까칠한 눈빛, 웃음기 하나 없고 따뜻한 호감이라고 전혀 안 느껴지는 면상이었습니다. 정말 상대하기 싫은 진상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전혀 매력적이지 않아 보였습니다. 슬펐습니다.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힘들어도 얼굴 표정은 웃음기를 머금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진짜 저런 얼굴로 살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호감형은 못될 망정 비호감은 되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크리스천은 얼굴이 전도지라고 얼굴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저는 전도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삭막하고 각박해 보였습니다. 무관심과 방종의 시간 보낸 것 같습니다. 강박증 때문에 몇 년 동안 불안과 두려움, 긴장했던 마음이 그대로 얼굴 표정으로 전달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장난과 조크를 좋아하고 잘 웃는 분위기 메이커 같은 사람이었는데 직장생활 10년 만에 완전히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말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불안에 떠는 사람이 돼버린 거죠.
세상에 쿨한 이별이 없다는 말처럼 누구도 이별 앞에 쿨할 수 없습니다. 그냥 쿨한 척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나이 들며 변해가는 자신을 보고 누가 쿨할 수 있을까요? 이별은 쿨한 척할 수 있어도 나이 드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지요. 젊음과 매력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져야지요.
젊었을 때 미인은 나이 들면 성격이 고약해진다고 합니다. 젊어서는 어딜 가나 사랑과 관심을 받았지만 세월과 시간이
지나 빛나던 미모가 점점 빛을 잃어가니까요. 과거에 받았던 사랑과 관심이 떨어지니 심통이 날 수밖에요.
브런치 작가분들 중에는 중년의 여성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빛나는 청춘과 불꽃같은 육아의 시간을 보내고 자녀들의 독립할 때쯤 돼서야 이제야 여유를 만끽하며 자신의 마음을 보듬으며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더 이상 예전처럼 달릴 필요도 없고 달릴 수도 없는 스스로를 토닥이며 천천히 자신의
생각과 글쓰기의 발을 맞추며 자신과 친구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독자, 작가)와 친구가 되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는 나이를 들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부드럽고 아름답고 탄력 있기까지 하지요. 육체의 노화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지만 글쓰기는 우리 마음처럼 스스로 노화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글쓰기가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나는 늙지만 내 글은 안 늙으니까요. 언제나 그 순간에 나의 생각이 빛을 잃지 않고 살았으니까요. 그리고 언제든지 더 젊은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이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의 속도 앞에 나만의 속도로 한 글자 한 글자 제대로 숨 쉬면서 걷다가 잠시 멈추어 쉬었다가 다시 걸어갈 수 있는 글쓰기가 나이 들어가는 나와의 데이트 시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