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리뷰

통제 욕구 VS 사랑

by 태리우스

먼저 영화 제목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니! 그건 지금 이 순간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는 말인데 솔직히 그게 이해가 잘 안 된다. 멜빈 역의 잭 니콜슨은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괴팍한 강박증 정신병자 작가다. 그리고 캐럴 역의 헬렌 헌트는 싱글맘으로 과부인 엄마와 아픈 아들과 함께 살며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로 남자와의 관계를 그리워하는 그녀도 과부다. 한집에 과부 두 명과 아픈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이다. 사이먼은 모델의 패거리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해 얼굴이 망가지고 미술전시회의 실패로 파산하여 길바닥에 나앉게 된 게이 화가다. 누가 봐도 이보다 더 좋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한숨이 절로 나오고 우울, 고독, 좌절, 외로움, 절망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상황이다.

과거에도 몇 번 봤던 기억이 있지만 오늘 이 영화를 정주행 해서 보고 여전히 제목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아 블로그 리뷰를 읽어봤다. 어찌나 심플하고 정확하게 정리를 잘해놨는지 장황하고 갈팡질팡 쓴 나의 리뷰가 부끄러웠다. 더 많은 독서를 하고 글을 써야겠다.

내가 생각하는 리뷰를 써보겠다. 우선 주인공 3명의 암담한 현실은 이야기했고 첫째로 그들의 인생 목표를 생각해보자.


첫째, 세 사람의 인생 목표

멜빈의 목표는 어렵고 복합적이다. 숨겨진 욕구는 통제 욕구라고 볼 수 있다. 세균과 병균, 정서적 불안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부터 사람과의 관계, 상황,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그의 인생 목표이다. 통제할 때 정서적 안정을 갖기 때문에 엄청나게 불편한 행동들을 빠짐없이 실천한다. 강박행동을 통해 스스로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타인은 원하는 데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혼자 고독하게 사는 것을 선택했다.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스스로를 들여보내고 스스로가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를 꼭 잡고 있는 꼴이다. 그리고 작가로서 꾸준히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직업으로서 그의 목표다. 또 다른 인생의 목표가 생기는데 바로 사랑스러운 캐럴이다.

사이먼의 목표는 그림을 통해 예술가로서 성공하는 것이고 캐럴은 아들의 건강 회복과 남자를 만나 육체적, 정서적인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둘째, 인생의 목표를 방해하는 것 멜빈의 숨겨진 통제 욕구를 통해 진정 얻고자 하는 것은 정서적 안정이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놀랍게도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만든 통제의 대상과 기준들이 만족되지 않으면 불안정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애초에 스스로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기준이다. 사랑스러운 캐럴과의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존재도 자기 자신이다. 말 그대로 자신이 인생의 걸림돌이다. 강박증 환자는 말을 거꾸로 타고 달리는 것과 같다는 말과 같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나와 나의 발목을 잡는 내가 인생의 목표를 집요하게 방해한다.

캐럴은 여자로서 누리는 안락한 가정의 안정과 사랑을 바라지만 싱글맘, 경제적 어려움, 불같은 성격, 아픈 아들, 과부 엄마를 둔 현실이 그녀의 삶을 힘들게 한다. 사이먼은 모델 패거리들의 폭행으로 얼굴과 몸에 깊은 상처가 생기고 전시회의 실패, 경제적 파산, 의식주 문제, 부모와의 갈등과 같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고통스러워한다.


셋째, 인생의 목표에 어떻게 다가가는가?

멜빈은 최고의 여자인 캐럴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이먼과 캐럴의 도움을 받는다. 캐럴은 괴팍한 멜빈을 상대해준 배려가 자신을 향한 사랑이 되어 돌아오고 사이먼과 멜빈의 도움을 받는다. 사이먼은 캐럴과 멜빈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포기하지 않는다.


넷째, 서로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 멜빈은 사이먼의 강아지를 돌봐주고 사이먼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캐럴의 아들이 치료받도록 도와주고 캐럴을 진심으로 대한다.

캐럴은 사이먼이 다시 그림을 시작할 수 있는 영감을 주고 멜빈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싹트도록 도와준다. 사이먼은 멜빈이 캐럴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준다.

인생의 목표에서 멀리 동떨어져버린 세 사람은 서로를 도와주고 채워주고 도움을 받고 채움 받으며 각자의 목표에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퍼즐을 맞추듯 누군가의 필요한 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채워주고 자신의 필요한 부분을 누군가로부터 채움 받으며 서로가 온전하게 되는 사랑의 의미를 알아간다.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좋아함에 가깝다.

사랑은 서로의 약하고 아프고 힘들고 결핍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아닐까? 그럴 때 사랑을 받게 되고 사랑을 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여전히 난 굴곡, 결핍, 고통이 있는 인생이 두렵다. 어쩌면 그런 것들을 거부하는 것은 인생 자체를 거부하는 어리석음일지 모르겠다. 그런 것들은 인생의 베이스라고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결핍을 누군가가 채워주고 누군가의 결핍을 내가 채워주고 함께 온전해지는 사랑을 하면 좋겠다.


멜빈의 강박증을 중심으로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다. 멜빈은 강박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정신병 환자다. 문을 잠글 때는 5번 반복하기, 아주 뜨거운 물로 손 씻기, 비누는 한 번만 사용하고 버리기, 바닥의 선밟지 않기, 식당에서 개인용 포크, 나이프 사용하기, 다른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기, 택시 손잡이 잡지 않기 등과 같이 강박증, 결벽증, 강박성 성격장애, 대인기피증 복합적인 정신병 환자다. 얼마나 인생이 힘들지 안타깝다.

하지만 그의 고립된 성격을 잘 활용해 67권의 책을 쓴 작가다. 멜빈 같은 사람이 공무원이 됐거나 회사원이 됐다면 아마 스트레스로 여러 번 졸도했을 터였다. 우선 길거리 바닥의 금을 밟지 못하는 강박증은 일상생활에 실로 엄청난 제약을 준다. 길거리를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다니 얼마나 자신을 옭아매는 행동인가? 세균이나 병균이 옮을 까 봐 손잡이를 잡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결벽증도 자신의 손과 팔을 보이지 않는 밧줄로 꽁꽁 묶어 놓는 것과 같다. 넥타이와 재킷을 입어야 하는 레스토랑에서 대여하는 옷을 입지 못해 옷을 사러 가는 끝도 없는 불편한 생활을 보며 가슴이 답답하다.

손을 소독하기 위해 뜨거운 물을 참아가며 비누는 한번 칠하고 버리는 세척 습관은 자학적이며 과소비적이고 병적이다. 멜빈은 스스로를 작은 감옥에 가두고 스스로의 팔다리를 묶어서 자물쇠로 잠근 후 완벽하게 통제하고 사회와 격리된 체 살아가고 있다.

멜빈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병균과 세균을 통제할 수 없으니 접촉 자체를 막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멜빈은 정신병자가 되었을까? 그도 어렸을 때는 안 그랬을 텐데 말이다. 다섯 살, 여섯 살 때는 바닥에 금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돌아다니고 땅바닥이든 어디든 남들이 잡는 무엇이든 신경도 안 썼을 것이며 심지어 입으로 빨았을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그런 어린이가 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자신을 구속하고 속박하고 통제하게 되었을지 원인이 궁금하다.

멜빈이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또 생겼는데 캐럴을 향한 사랑이다. 사랑의 감정 또한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니 괴로워한다. 하지만 사랑은 통제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표현하는 것이란 것을 알아간다.

사랑이 없을 때 통제가 안되면 두려워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사랑하면 저절로 통제하지 않게 된다. 빛이 어둠에 비치면 어둠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처럼. 습기가 많은 반지하에 곰팡이를 없애기 위해 벽을 긁어내는 것보다 창문을 여는 방법처럼. 통제하고자 하는 강박이 맬빈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면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이 그를 회복시킨다. 멜빈이 치료효과가 있는 약을 먹지 않는 것도 통제할 수 없는 약효를 믿지 못해 먹지 않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먹기 시작한다. 더 좋은 남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통제 욕구를 하나씩 포기한다.

세상을 통제하려는 것은 미치는 길로 가는 지름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지만 인간의 마음을 통제하지 않으신다.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주셨다. 우리도 통제하지 않고 사랑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도 통제가 안돼서 힘든데 눈에 보이지 않는 병균과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것은 인생을 망가트리는 지름길이다.


멜빈은 수많은 말실수와 밥맛없는 행동을 하며 계속 실패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실패하면서도 캐럴에게 진심을 담아 말한다. 당신은 나를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든다, 내 눈에 당신은 최고의 여자다라는 고백으로 결국 캐럴의 마음을 얻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삶을 정말 불편하게 살아가는 멜빈을 보며 왜 저렇게 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도 강박성 성격장애, 결벽증, 강박증을 겪고 있어서 마음이 짠했다.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고 나보다 심한 모습을 보면 얼마나 삶이 고단하고 지치고 힘들지 안쓰러웠다. 나도 더 안 좋은 상태가 되기 전에 치료받고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어렸을 때는 안 그랬다. 심지어 죽어있는 쥐새끼를 갖고 놀기도 했다. 땅바닥도 잘 만지고 세균 따위는 신경도 안 썼다. 방학에는 며칠씩 씻지도 않고 화장실도 편하게 다녔다. 나만의 감옥을 스스로 만들어 들어간 후 감금시키고 그 감옥을 점점 엄격하고 타이트하게 운영하고 있다. 어리석게도.


우선 통제하려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아야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은 채로 신경을 안 써야 한다. 세균과 병균을 통제하려는 생각을 벗어 버려야 한다. 미신적인 생각은 진지한 이성의 생각으로 벗어내야 한다. 금을 밟으면 안 된다느니 특정 숫자나 글자가 부정하다느니 생각은 버려야 한다.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마음도 버리고 싶다.

영화는 사랑이 무엇일까라는 멜빈의 물음으로 시작해서 새벽에 바닥의 금을 밟은 멜빈과 캐럴이 함께 빵집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사랑이란 자신이 통제하려던 것을 하나씩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며 그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은 세상에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ps.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교만함 같다. 모든 죄의 뿌리는 교만이라는 C.S. 루이스의 말처럼 겸손히 사랑하는 것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복된 인생을 사는 방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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