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투영되는 창작
저는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했습니다. 중학생인 저는 고등학생들이 다닌 입시미술학원에 가서 그림을 제법 잘 그려 소질 있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학원을 계속 다니게 하려는 학원 선생님의 계략일 수 있지만) 당시 미술학원에 가서 처음 그림을 그리면 데생을 시작했습니다. 입체도형을 그리고 각상을 그리고 아그립바, 줄리앙, 비너스 같은 석고상을 그렸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리는 사람이 석고상을 캔버스에 그릴 때 자신을 닮게 그린다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얼굴이 넓어서 넓적한 아그립바를 그렸지요. 매일매일 봤던 자기 얼굴이 캔버스와 석고상과 오버랩되면서 나와 석고상이 절묘하게 닮은 누군가를 그린 것입니다.
외국에서 이성의 사진 수십 장을 놓고 이상형을 찾는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실험대상자가 남자라면 그 남자를 여자 모습으로 수정한 사진을 섞어놓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을 여자로 바꾸어놓은 사진을 이상형으로 골랐다고 합니다. 커플들을 보면 닮은 구석이 많은 것 보면 틀린 실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은 창작을 할 때면 자신의 이미지나 생각을 투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느껴지잖아요. 치밀한 사람인지, 자유로운 사람인지, 딱딱한 사람인지, 부드러운 사람인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성격과 마음이
글쓰기에 투영되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이 돼야 좋은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는 거겠죠.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인생을 살려면 좋은 사람이 먼저 돼야 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이라는 창의적인 영역도 결국 작가의 삶이 투영된다는 의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인간은 완벽한 창조를 할 수는 없는 존재이니까요.
자신에게 쌓여있는 것이 결국에는 드러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것을 차곡차곡 쌓는 인생, 사랑과 우정을 소중히 간직하는 인생, 좋은 말과 글, 생각이 넘쳐서 흘러
주위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복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