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 빼기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자전거를 많이 잃어버리셨다.
술을 드시고 놓고 오시거나 누군가가 가져갔었던 거 같다.
아니면 술값대신에 자전거를 맡기셨거나.
나도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자전거를 많이 잃어버렸다.
집 밖에 세워놓고 자물쇠를 안 잠그면 거의 100% 사라졌다.
작년에도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언젠가 자전거는 돌고 도는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재미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프랑스에는 뚜르드프랑스라는 사이클 대회가 유명하다.
예전 근무하던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뚜르드프랑스를 모티브로 한
투르드코리아 대회를 주최했고 나는 총괄 디자이너로 일했다.
우리나라 전국의 아름다운 코스를 로드사이클로 달리는 레이스였다.
코로나로 인해 몇 년 동안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이클 선수를 사이클리스트라고 부른다. 사람을 부를 때 덴티스트처럼 st를
붙이는 경우와 닥터처럼 er을 붙이는 차이를 잘 모르겠지만 사이클리스트라는
말은 멋진 것 같다. 다시 찾아보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사이클리스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경마가 유명하지만 경륜이라는 사이클 베팅대회가 있다.
경륜과 경정은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합법적인 도박이다.
어떤 택시운전사는 손님을 경륜장에 데려다주고 한 번 해보고
도박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륜선수 훈련소에 가서 본 경륜선수들의 허벅지는 어마어마하다.
자전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경륜선수 허벅지까지 얘기를 하는 거 보니
자전거는 이처럼 스펙트럼이 아주 넓은 것 같다. 따릉이부터 시작해서
수천만 원 하는 손가락으로 들 수 있는 카본사이클까지.
요즘에는 전동 자전거까지.
몇 년 전부터 예쁜 로드사이클을 사고 싶었다. 맘에 드는 모델을 사려면
300만원은 필요했다. 돈을 모으지 못해 계속 못 사고 있다. 따릉이 이용기간이
끝났는데 1년 이용권이 4만원이어서 빌릴 바에야 차라리 중고를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당근마켓에서 8만원 주고 바구니 자전거를 사서
잘 타고 다닌다. 물론 헬멧도 꼭 쓰고 말이다.
다른 나라는 헬멧착용의 법으로 정해져서 안 쓰면 과태료를 문다는데
우리나라는 헬멧을 쓰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헬멧을 안 써서 사고를 당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서 헬멧 쓰기를 실천하는 편이다.
언제가 아주 아름다운 색깔에 가볍고 멋진 사이클을 타고
입고 싶은 사이클 슈트 브랜드 라파를 입고 한강을 라이딩하고 싶다.
그러려면 먼저 뱃살을 빼야겠다. 뱃살이 축 늘어져서 덜렁거리면서
라이딩을 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