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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Mar 03. 2023

감정적 추론의 오류

내 느낌이 언제나 맞다니까!

의처증이 있는 남자 A 씨는 배우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배우자의 모든 행동들을 불륜의 증거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을 갔다가 조금만 늦어져도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믿었고 친구들을 만나고 와도 외도를 하고 왔다고 느꼈습니다.


급기야 A 씨는 아내의 삶을 강압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A 씨도 아내도 고통스러웠고 가정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느낌으로 단정 짓고 확신한 외도 증거를 찾기 위해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강박적으로 감시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의심으로 노이로제에 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A 씨가 길을 걷던 중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젊은 아가씨가 보였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한 예쁜 여자였습니다. 스쳐 지나가면서 잠시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순간 아가씨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A 씨도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습니다. 아가씨는 A 씨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저 변태 새끼가 날 성추행했어요! 도와주세요!" A 씨는 너무 당황하여 아가씨에게 다가가 오해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더 크게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경찰에 신고하여 결국 A 씨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여전히 경멸과 분노의 눈빛으로 A 씨를 노려보면서 말했습니다.  "제 느낌에 저 변태 새끼가 나를 보면서 음란한 생각을 하고 성추행하려고 했어요.  제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저를 추행했을 거예요. 제 느낌이 맞다니까요! 제 느낌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A 씨는 아가씨의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느낌을 근거 삼아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성적불쾌감을 느꼈다며 막무가내로 처벌을 요구하는 아가씨는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거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듣지 않고 느낌만을 믿으며 끝까지 아내를 물고 늘어졌던 자신은 사이코였습니다.


 그제야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잘못을 짓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했던 대로 똑같이 당해보고서야 말이죠. 조사과정 중 여자가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이 밝혀져 경찰서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A 씨는 경찰서를 나와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그동안 겪어왔을 아내의 고통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그동안 어떤 잘못을 했는지 생각하니 구역질이 났습니다. 골목으로 뛰어가 한참을 구역질을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해가 지고 어두운 저녁이 되어 있었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꽃집과 빵집이 보였습니다. 케이크와 꽃다발을 샀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서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몰래 문에 귀를 대고 아내가 누구와 통화하고 있는지 감시를 했었습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집안에는 적막과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아내는 A 씨를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집안에 있으면서도 옷을 단정히 입고 있어야 했습니다. 의심을 받으니까요. A 씨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당신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편의 행동에 아내는 놀랐습니다.


남편의 진심 어린 반성이 느껴지자 그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흐느끼는 남편에게 다가가 몸을 숙여 남편의 어깨를 감싸주었습니다. 아내의 품은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드디어 내가 사랑하는 남편으로 다시 돌아왔네."

아내의 울먹이는 속삭임이 들렸습니다. A 씨는 아내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안아주었습니다. 잊고 있었던 A 씨의 든든한 품 안에 안긴 아내의 아픔과 슬픔은 따뜻한 햇빛 아래 눈꽃처럼 녹아 내렸습니다. A 씨는 두 번 다시 자신의 느낌을 근거로 아내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감시하고 통제할 시간과힘으로 더 신뢰하고 사랑하는 남자가 되었습니다.


감정적 추론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근거 없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주관적 감정과 느낌을 근거로 결과를 단정 짓는 인지적 오류입니다. '내가 그렇게 느끼니까 반드시 확실한 사실이야!'라고 주장하는 허무맹랑한 믿음입니다.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절대 네 느낌이 사실이 아니란다. 이 또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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