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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Mar 29. 2023

구둣주걱과 효자손

그리고 챗 GPT

 


 나는 구둣주걱과 효자손을 가방에 들고 다닌다. 참 아저씨 같다. 구둣주걱은 신발을 벗고 신을 때 놀랍도록 편하다. 효자손은 손이 닿지 않는 등이 가려울 때 마법사의 지팡이가 되어 나의 간절한 바람을 DREAMS COME TRUE 하게 해 준다. 둘 다 나에게 쾌감에 가까운 만족감을 준다. 모두 천 원짜리다. 다이소에서 샀다. 다이소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와 그 반만 한 크기의 구둣주걱이 있어서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들고 다닐 생각에 작은 것을 샀더니 너무 작아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도 잘 썼다.

좋아하던 자전거를 팔면서 자전거 열쇠에 걸려있던 작은 녀석을 새 주인에게 보내고 큰 녀석을 새로 샀다. 설레는 마음으로 신발을 신을 때 신발 뒤축과 발꿈치 사이에 구둣주걱을 끼고 발꿈치를 내리자 버터를 바른 양키의 발음처럼 스무스하게 신발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대만족! 천 원으로 이만한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가방에 쏙 넣어서 다니면서 신발을 벗고 신을 때가 되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구둣주걱이 없을 때는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이 고생한다. 날렵한 구둣주걱의 역할을 구부러지는 원기둥 모양의 손가락이 대신하려니 여간 힘들고 아픈 게 아니다. 신발 끈을 풀었다가 다시 매면 되지 않겠냐 하지만 그건 너무 귀찮다.


 효자손은 이름부터가 엄청나다. 동방예의지국에 효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손은 우리 신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어마어마한 기관이다. 효자의 덕과 손의 지성과 체력, 지덕체를 모두 겸비하고 있다는 찬사에 가까운 네이밍이다. 얼마나 유용하면 그런 이름을 지어줬을지 선조들의 생각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 관절의 운동 범위가 줄었는지 아니면 등판이 커졌는지 손으로 등을 긁기가 어려워졌다. 또 노화의 과정에서 몸 안에 수분이 빠지면서 피부가 건조해지니 더 자주 가려워지는 것 같다.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데 날갯죽지 근처가 간지러울 때 안테나처럼 생긴 효자손을 꺼내 길게 늘어뜨린 후 목덜미로 집어넣어 앙증맞은 스테인리스 손가락으로 긁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을 느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간지러운 등을 정확하고 시원하게 긁어 주는 건 정말이지 최고다.


 디자인 용어 중에 FORM FOLLOW FUNCTION이란 말이 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이다. 제품디자인에서 제품의 형태를 디자인할 때는 기능에 가장 적합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구둣주걱은 발이 신발에 들어가기 쉽도록 생겨야 하고 효자손은 등을 긁기에 편하게 생겨야 한다는 의미이다. 세상 대부분의 제품들은 FORM FOLLOW FUCTION을 따른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2000년대가 되면서 디자인 르네상스 시대는 더 이상 형태는 기능만을 따르지 않게 되었다. 감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FORM FOLLOW EMOTION 이란 말이 생겼다. 형태는 감성을 따른다는 말이다. 제품의 기능은 기본이고 아름다운 조형미가 느껴지는 예술작품이 되고 있다.


앞으로는 FORM FOLLOW 무엇이 될까? 챗 GPT의 폭발적 인기를 변곡점으로 AI의 태풍이 본격적으로 우리 삶으로 진입하고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제품들이 앞으로 어떤 놀라운 형태를 갖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다.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이라고 말하며 아이폰을 보여줬을 때의 충격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둣주걱과 효자손은 그 모양과 기능을 수행할 것 같기도 하다. 100년이 지나고 1000년이 지나도 말이다.

 이제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나? 구둣주걱과 효자손 같은 변함없는 구닥다리 사람이 돼야 하나? 아니면 챗 GPT 같은 사람이 돼서 최첨단을 달리는 신인류의 삶을 살아야 하나?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챗 GPT를 이용해서 구둣주걱이 필요 없는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디자인하고 효자손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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