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100가닥의 꼬불꼬불한 면들이 뭉쳐있는데 한가닥의 길이가 약 40cm이다. 한가닥의 길이가 40cm인 이유는 젓가락질을 해서 한입에 먹기에 가장 적당한 길이가 40~50cm 때문이라고 한다. 라면의 총길이는 40m라는 말이다. 라면을 먹는 것은
굉장히 긴 면을 먹는 것이다.
라면 하면 뽀글이가 생각난다. 군대에서 라면을 냄비로 끓여 먹기가 어려워서 여러 방법을 사용한다. 뽀글이는 라면 봉지를 냄비 삼아서 뜨거운 물을 붓고 스프를 뿌리고 라면 봉지 윗부분을 빙빙 돌려서 밀폐시키고 나무젓가락의 벌어지는 텐션을 이용해 고정시킨 후 면발이 익기를 기다렸다가 먹는 방법이 다. 뽀글이를 즐겨 먹지 않았고 그마저도 제대로 익지도 않은 면을 후루룩 먹었던 기억이 있다. 국물은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우리 부대에서는 고추장 통을 많이 이용했다. 빨간색 고추장 통에 뜨거운 물과 라면을 넣고 전자레인지를 돌리면 그럴싸한 라면이 완성된다. 라면봉지나 고추장통으로 라면을 조리해서 먹을 때 환경 호르몬도 많이 먹었을 것 같다.
나는 GOP에서 취사병을 몇 달 했었다. 어느 날 중대장이 함께 일했던 취사병에게 라면을 끓여 오라고 했다. 취사장에서 만난 그 취사병은 냄비에 물을 담아 끓이고 라면 재료를 넣고 나에게 말했다.
“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 알려줄까요?”
“네?”
“카아아악~~~퇘!“
웃음, 짜증, 통쾌, 분노가 묘하게 섞인 표정으로 라면냄비에 가래침을 뱉었다. 잦은 라면 심부름에 짜증이 많이 났었던 것이다. 그 중대장은 그 취사병에게 라면 수프를 직접 만들라고도 했었다. 소고기 가루, 고춧가루, 버섯가루 등을 직접 만들어서 건강한 라면수프를 만들라고 했었다. 아무튼 특이한 중대장이었다.
중대장은 침 뱉은 라면인지도 모르고 호호 불면서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그 취사병은 내가 없을 때 그런 짓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살지 궁금하다.
고등학교를 안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짜장면집에서 일하는 한 친구에게 들은 말이다. 지방 짜장면집에는 침보다 더 한 것을 넣는다고 했다.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겠다. 짜장면에 뭐가 들어갔는지도 모르고 맛있게 먹으며 손님들의 말을 흉내낸 게 기억난다.
“오늘 짜장면 진짜 맛있다!”
아무튼 깨끗하고 청결한 음식점을 찾아야 한다.
다시 라면으로 돌아가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라면을 뽑으라면 20대 때 새벽까지 친구들이랑 놀다가 한강에서 찬바람을 쐬면서 먹었던 라면이다. 새벽 강바람에 온몸이 으스스 떨렸지만 라면국물의 매콤한 향기, 모닥불을 피운 것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오동통통하고 뜨거운 면발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온몸이 난로가 된 것처럼 따뜻해졌던 추억이 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한강에 가면 라면 생각이 많이 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노량진에서 먹었던 라면도 생각난다. 요즘에는 공무원 인기가 시들하지만 2015년도만 해도 공무원 인기가 엄청나서 노량진이 명동거리 못지않게 번화했었다. 뷔페집도 여러 군데 있었는데 나는 고구려라는 뷔페집을 종종 갔었다. 뷔페답게 라면도 맘껏 끓여 먹을 수 있었는데, 라면코너에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라면스프만 가져가지 마세요!"
라면 봉지를 뜯어서 스프만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도 왜 라면 스프만 가져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5천 원 정도 내면 정말이지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었다. 추억을 생각하면서 노량진을 한두 번 가봤는데 고구려 뷔페는 없어졌고 길거리가 휑했다. 어쩌다 공무원이 기피직업이 되다 보니 노량진도 많이 시들해졌다. 컵밥집도 엄청 많았지만 문 연 곳이 별로 없었다.
한동안 떡볶이와 콜라보해서 먹는 라볶이를 좋아했다. 주민센터에서 일할 때 주민센터 앞에 분식점이 있었다. 그 집 라볶이에는 야끼만두와 계란이 하나씩 올라가 있었다. 야끼만두를 아주 좋아한다. 야끼만두는 고소하고 담백한 맛과 바삭한 식감이 일품이다. 야끼만두의 야들야들한 배부분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만두소가 들어있다. 만두소는 잘게 잘린 양념된 당면이 들어있다. 만두피는 양쪽 끝으로 갈수록 단단해지는 데, 초반에 크런키 하게 부셔먹는 것도 좋고, 소스에 담갔다가 양념이 베어 부들부들해진 상태로 먹어도 굉장히 맛있다. 생각해 보니 만두라면은 있는데, 야끼만두라면은 없는 것 같다! 좋은 사업 아이템 같다! 야끼만두라면! 오호!
사실 라면을 즐겨 먹지 않는다. 건강을 챙기는 편이라 인스턴트를 많이 먹지 않았다. 예전에 라면을 먹을 때면 토마토를 넣어서 먹었는데, 국물이 상큼하고 깔끔해서 괜찮다. 토마토를 넣어 먹는다고 했더미, 미간을 찌푸렸던 사람이 생각난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자 최근에 라면을 많이 먹었다. 평생 먹은 라면보다 최근 몇 개 월 동안 먹은 라면양이 더 많을 것 같다. 라면의 베스트 프랜드 삼각김밥도 마찬가지로 최근에 먹은 양이 평생 먹은 양보다 훨씬 많다. 돈이 없어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최근 나의 식사 패턴을 보고 스스로가 놀랄 때가 있다. 우선 질보다 양이 중요해졌다. 돈은 아껴야 하는데, 배는 고프니까. 예전 같으면 칼로리를 확인했겠지만 삼각김밥을 사도 크기와 용량 g을 계산해서 사 먹곤 한다. 예를 들어, 편의점 김밥 한 줄은 300g이 안되지만 비슷한 가격에 점보 삼각김밥 두 개는 350g 정도 나가기에 삼각김밥을 선택한다.
잠깐 샛길로 더 세자면 영화 기생충에서 충숙은 돈이 다리미라서 부자들은 구김살이 없다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돈을 아끼며 생활하다보니 그 말에 공감이 되었다. 우선 짜증과 신경질이 부쩍 늘었다.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못 먹는 게 큰 것 같았다. 갖고 싶은 것도 못 갖고 맛있는 음식도 선택할 수 없으니,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돈 때문에 불평하고 불만을 쏟아내는 내 모습이 크리스천으로서 부끄러울 때가 있다. 반성하려고 해도 잘 안된다.
다시 라면 얘기로 돌아와서, 특별히 좋아하는 라면은 없다. 매운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불닭볶음면류는 먹어본 게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도 튀김우동을 많이 먹는 것 같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먹을 수 있는 라면 하나를 고르라면, 육개장 사발면과 안성탕면 중에 고민하다가 안성탕면을 고를 것 같다. 요즘처럼 화려한 라면들이 나오기 오래전부터 있었던 안성탕면은 계란을 풀어서 끓여 먹으면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옛날 추억을 떠오르게 해서 정감이 가는 것 같다.
라면은 왜 우리에게 특별할까? 찬밥도 라면 국물이 있다면 더 이상 찬밥신세가 아니다. 배고플 때, 추울 때, 돈이 없을 때, 혼자 있을 때,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고 배부르게 해 줘서 라면을 좋아하는 것 같다. 라면은 손난로처럼, 연탄처럼, 따뜻한 인사처럼, 엄마가 해주는 갓 지은 하얀 밥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채워줘서 좋다.
라면 같은 인생도 멋진 인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