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리우스 Apr 07. 2023

라면

뜨겁고 매콤한

라면은 100가닥의 꼬불꼬불한 면들이 뭉쳐있는데 한가닥의 길이가 약 40cm이다. 한가닥의 길이가 40cm인 이유는 젓가락질을 해서 한입에 먹기에 가장 적당한 길이가 40~50cm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총길이는 40m라는 말이다. 굉장히 긴 면을 먹는 거다.  


라면 하면 뽀글이가 생각난다. 군대에서 라면을 먹을 때 일일이 끓여 먹기가 어려우니까 여러 방법을 사용한다. 라면 봉지를 냄비 삼아서 뜨거운 물을 담아 컵라면처럼 먹는 방법이다. 나무젓가락이 벌어지는 텐션을 이용해 라면 봉지 상단을 묶어서 기다렸다가 늘 제대로 익지도 않은 면을 후루룩 먹었다. 국물은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우리 부대에서는 고추장 통을 많이 이용했다. 빨간색 고추장 통에 뜨거운 물과 라면을 넣고 전자레인지를 돌려서 먹는다. 그럼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그럴싸한 라면이 완성된다. 생각해 보면 라면봉지나 고추장통으로 라면을 먹을 때 환경 호르몬도 많이 먹었을 것 같다.


나는 GOP에서 취사병을 몇 달 했었다. 어느 날 같이 일했던 취사병에게 중대장이 라면을 끓여 오라고 했다. 그 취사병은 나에게 "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 알려줄까요?" 말하면서 "카아아악"하고 라면에 가래침을 뱉었다. 잦은 라면 심부름에 짜증이 많이 났었나 보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 중대장은 그 취사병에게 라면 수프를 직접 만들라고 했던 것 같다. 소고기 가루, 고춧가루, 버섯가루 등을 이용해서 건강한 라면수프를 본인이 만들었는지 아니면 시켰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무튼 특이한 중대장이었다. 중대장은 그것도 모르고 라면을 호호 불면서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취사병은 내가 없을 때도 그런 짓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살지 궁금하다. 짜장면집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 친구에게 들은 말인데 지방 짜장면집에는 침처럼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도 넣는다고 한다.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겠다. 아무튼 깨끗하고 청결한 음식점을 찾아야 한다.


다시 라면으로 돌아가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라면을 뽑으라면 20대 때 새벽까지 친구들이랑 놀다가 한강에서 찬바람을 쐬면서 먹었던 라면이 생각난다. 새벽 강바람에 온몸이 으스스 떨리면서도 라면국물의 매콤한 향기와 불을 피운 것처럼 하얀 연기가 되어 피어오르는 김, 뜨거운 면발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한강에 가면 라면 생각이 많이 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노량진에서 먹었던 라면도 생각난다. 요즘에는 공무원 인기가 시들했는데 내가 준비했었던 2015년도만 해도 공무원 인기가 엄청나서 노량진이 명동거리 못지않게 번화했었다. 뷔페집도 여러 군데 있었는데 나는 고구려라는 뷔페집을 종종 갔었다. 뷔페답게 라면도 맘껏 끓여 먹을 수 있었는데, 라면코너에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뭐라고 적혔냐면, "라면스프만 가져가지 마세요!"였다. 라면 봉지를 뜯어서 스프만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왜 스프만 가져가는지 잘 모르겠다. 5천 원 정도 내면 정말이지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었다. 추억을 생각하면서 한두 번 가봤는데 고구려는 없어졌고 길거리에 사람들도 없고 휑했다. 어쩌다 공무원이 기피직업까지 되면서 노량진도 많이 시들해졌다. 컵밥집도 엄청 많았는데 말이다.


김밥과 제일 어울리는 것도 라면이고 떡볶이와 콜라보해서 먹는 라볶이도 좋아한다. 딱 하나의 라면을 고르라면 안성탕면을 고르고 싶다. 계란을 풀어서 끓여 먹으면 구수한 향기가 정감이 가는 것 같다.


라면을 생각하다가 라면이 왜 우리에게 특별할까 생각해 봤다. 라면은 매콤하고 뜨거워서 그런 거 같다. 추운 겨울에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배도 부르게 해주는 라면, 차가운 김밥도 뜨겁게 덥혀주는 라면, 말 그대로 찬밥신세인 찬밥도 라면 국물에 들어가면 더 이상 찬밥신세가 아니다. 배고팠을 때 추울 때 돈이 없을 때 혼자 있을 때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고 배부르게 해 주는 라면. 그래서 라면에 대한 추억이 많은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비행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