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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Apr 11. 2023

봄바람

태양과 바람의 콜라보레이션




봄은 보다에서 온 것 같다. 봄이 되면 보인다. 쪼그마한 푸른 새싹들이 보이고 컬러풀한 꽃들과 경쟁하듯 특이한 깃털의 새들도 보이고 개구리와 두꺼비의 올챙이들, 바쁜 개미들, 땀 흘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꽁꽁 싸맸던 사람들의 얼굴도 보이고 겨울 동안 숨겨두고 비축해 두었던 뱃살들도 보인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누군가의 눈빛과 뒷모습도 보인다. 안 보이던 세상이 보이다 보니 봄이 된 게 아닐까?


바람은 언제나 분다. 봄에도 불고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그중에서 핑크빛 가득한 봄바람만큼 설레는 바람이 있을까? 봄바람이 꽁꽁 얼어버린 세상을 간지럽히면 아무리 차갑고 냉정한 세상도 금세 꽃봉오리 가득한 웃음을 터트리며 잔뜩 경직된 몸의 긴장을 풀고 솜사탕처럼 포근해지고 달콤해진다. 봄바람이 불고 나면 태풍이나 폭설이 뒤따라 온다면 아무도 봄바람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봄바람은 마법처럼 지나가는 곳마다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는 푸르른 잎들이 새록새록 피어오르고 계곡물이 은빛을 반짝이며 졸졸 흐르게 하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복숭아처럼 둥근 웃음꽃을 피우게 만든다. 흑백연필로 그린 스케치에 봄바람이 지나가면 숨겨져 있던 색연필 그림들이 마술처럼 나타난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란 말이 있다. 타인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자기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차갑고 엄격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게 봄바람처럼 대하면 호구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늘 엄격하고 차갑게 대한다면 강박증, 우울증 같은 신경증을 갖게 될 수 있다. 나와 타인을 대할 때 봄바람과 가을서리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인생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내 마음에 남겨둔 자리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봄바람처럼 부드럽지만 가을 서리처럼 차가운 얼음 조각이 남아 있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등에 칼을 꽂고 떠난 사람도 있고 봄바람처럼 마음에 꽃씨를 선물해서 꽃밭을 선물한 사람도 있다. 물론 겉은 차갑지만 마음은 봄바람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타인의 마음에 남겨둔 내 자리는 어떤 모습일까? 자신이 없다. 나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죄송하다. 봄바람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생각하기만 해도 차가워진 마음도 따뜻하게 녹고 은은하게 퍼지는 꽃향기가 기억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문득 바람 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태양과 바람이 길을 걷는 사람의 재킷을 누가 먼저 벗길지 내기하는 이야기다. 먼저 바람이 나선다. 열심히 강풍을 불어서 재킷을 벗기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재킷을 움켜쥐게 할 뿐이다. 반면 태양은 햇빛을 비추면서 온도를 서서히 높인다. 땀이 나고 더워진 사람은 스스로 재킷을 벗고 승리는 태양이 차지한다. 나는 이 이야기가 관계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사람 마음을 여는 게 억지로 안된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 마음을 얻으려고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과 말을 많이 하는지 안타깝다.  


태양과 바람이 경쟁하지 않고 함께 힘을 합쳤다면 어땠을까? 태양만 쬐인다면 덥고 뜨겁다. 바람만 불면 춥다. 태양과 바람이 콜라보레이션한다면 판타스틱한 온도의 바람이 되지 않을까? 우린 이미 그 따뜻한 바람을 알고 있다. 바로 봄바람이다. 태양과 바람이 손 잡고 힘을 합쳐 봄바람을 만들어 낸다. 시원하면서 따뜻한 오묘한 바람, 봄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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