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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Apr 17. 2023

버스

버스의 추억

 외갓집이 충청남도 청양이어서 시골을 갈 때 시외버스를 많이 탔다. 시외버스를 타면 시트 가죽 냄새와 담배꽁초 냄새가 섞인 특유의 버스 냄새가 너무 싫었다. 원래부터 멀미를 잘하던 나로서는 시외버스 타기는 고역이었다. 어렸을 때만 해도 시외버스 좌석에는 재떨이가 있었다. 은색의 스테인리스로 된 작은 담배값만 한 크기의 재떨이가 좌석 뒤쪽에 붙어있었다. 재떨이에는 까만 담뱃재 때가 가득 껴있었다. 큼큼한 담배냄새와 화학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조가죽시트 냄새를 맡으면 멀미기운이 바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동수단의 선택권이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따라 시외버스에 올라야 했다. 긴 시간 동안 겨우 한 번 들르는 휴게소에서 허리도 피고 시원한 바람도 쐬고 군것질도 하는 게 유일한 재미였다. 버스를 타면 심심했다. 특히 밤에 버스를 타면 바깥은 까맣게 어두워진다. 버스 안은 승객들의 호흡들이 모여서 창문에는 습기들이 맺힌다. 그럼 입으로 호호 불어서 유리 칠판을 만든다. 대부분 내 이름을 쓰거나 하트 도형을 그린다. 실패하고 손으로 문지르면 칠판은 물 자국이 남아서 재활용하기가 어려워진다. 어둔 창 밖에 가로등이 슝슝 지나가는 것을 보고 저 멀리 듬성듬성 켜있는 시골 집들이 보이는 게 다였다. 그러다 청양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근처에서 과일들을 사서 할머니 집에 가곤 했다.  아버지의 첫 차 봉고차 BESTA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가족이 시내, 시외버스를 함께 탄 기억이 거의 없다. 가끔 KTX를 탔었지만 부모님이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지 않았다.


18살 때였던 것 같다. 아침에 버스를 탔는데 고등학교 남학생, 여학생들로 가득 찼었다. 갑자기 급정거를 하는데 앉아 있던 내 위에 어떤 여학생이 와락 나에게 안겼다. 깜짝 놀란 여학생은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그때 모습과 쿵쾅거렸던 가슴이 아직도 기억난다. 


더 어렸던 중학교 때였다. 버스 맨 뒷좌석에서 친구들 여럿이서 앉아있는데 내가 코딱지를 팠는데 엄청나게 길고 큰 점액질의 물질이 나왔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친구들을 위협하며 놀렸다. 친구 녀석이 더럽다며 인상을 쓰고 내 팔을 확 쳤는데 그 점액물질이 손에서 떨어져 날아갔다.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던 건장한 형의 깨끗한 갈색 가죽점퍼로 말이다. 길이가 제법 길었던 그것은 초록색의 특유한 색깔과 수분이 가득한 상태로 깔끔한 형의 어깨에 붙어있었다. 우린 모두 순간 얼어붙었다. 말했다가는 혼날 것 같았다. 우린 모른척했다. 몇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형에게 미안하다. 


그 보다 더 어렸던 초등학교 때 같다. 그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딱따구리처럼 하루종일 떠들고 떠벌리고 돌아다녔으니까. 친구들과 버스를 타는데 우리가 버스정류장 이름이 복덕방 앞이었다. 나는 무슨 버스 정류장 이름이 복덕방 앞이냐며 미친 듯이 웃었다. 너무 웃겨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 보다 더 어렸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와 함께 견학을 다녀올 때였다. 나보다 덩치가 큰 녀석이 나에게 겁을 줬다. 나는 그놈의 위협 앞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엄마에게 쪼로로로 갔다. 엄마는 내가 겁쟁이라며 뭐라고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왜소했지만 겁쟁이는 나쁜 거라고 배워서 그런지 깡다구가 있었고 싸움을 제법 했다. 


버스를 생각하면 왠지 아련한 추억이 많다. 덜컹덜컹거리면서 아침에 겨우 일어나서 버스에 몸을 싣고 또 하루 일과가 끝나면 녹초가 돼서 버스에 몸을 실는다. 힘들고 지친 서민들의 삶에서 버스에서 유튜브를 보는 게 우리네 삶의 안식처라는 게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버스 운전사는 일부러 버스를 약간 와일드하게 몬다고 한다. 그래야 승객들이 약간이라도 긴장을 한다고 한다. 너무 부드럽게 운전을 하면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에서 맘을 너무 놓고 있던 승객들이 크게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차가 막히는 걸 싫어해서 지하철을 좋아한다. 버스 전용 차선이 생기고 나서는 버스가 잘 막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안전한 지하철이 좋다. 지하철이 없었던 동네에 5호선 군자역이 생기고 새로 생긴 지하철역은 말 그대로 삐까뻔쩍하고 최신식의 미래도시를 연상케 해서 엄청나게 놀랐었다. 당시 1,2호선의 지하철은 아주 오래된 느낌이 들었으니 새로 생긴 역사가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모른다. 처음 지하철이 생겼을 때는 표도 안 내고 그냥 무작정 달려가서 허들을 넘듯이 매표소를 뛰어넘고 도망쳤던 기억이 있다. 


우리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 되어 주었던 버스는 거미줄처럼 촘촘해진 지하철 때문에 그 위용이 많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버스만의 매력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재미가 있다. 동생 격인 마을버스도 제 몫을 다하고 있는데 환승제도 때문에 마을버스 회사수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도 많이 변했다. 버스를 생각하면 수많은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음....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건.... 여전히 버스를 탈 때 옆자리에 예쁜 아가씨가 타면 기분이 아주 좋다는 것이다. 나는 역시 건강한 남자다! 으랏차차! 하하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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