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리우스 Apr 21. 2023

아이돌 작가

데뷔할 수 있을까?

 책을 써서 출판사에 보냈다. 나는 책을 쓰면 출판사에 많이 보내지 않는다. 이번에도 5군데 정도 보냈는데 글쓰기에 대해서 잘 배웠던 책의 저자가 대표로 있는 회사에 가장 먼저 보냈다. 지금까지 출판사에서 보내오는 답변은 거의 거절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첫 번째로 보낸 출판사 대표에게 빠른 답장이 왔다. 요즘 출판 트렌드와 출간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메일이었다. 평범하게 출간제안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디자인을 해서 다시 보냈다. 내 책이 부족하다면 대표가 기획하는 책을 써보겠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이번에도 곧바로 답장이 왔다. 연예인기획사에서 아이돌을 기획해서 키우는 것처럼 출판사도 기획해서 작가로 키울 수 있는데 나를 그렇게 키워보고 싶다는 답장이었다.


마음이 묘했다. 마치 소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서 곧 가수로 데뷔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 글솜씨가 어느 정도 인정받는 것 같아서 좋았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쓴 저자이자 출판사 대표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대표는 내가 쓴 책보다는 본인이 기획한 책을 내가 쓰는 콘셉트를 제안했다. 서로 신뢰가 있으면 괜찮은 작가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고 지속적으로 출판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믿음이 가는 출판사와 함께 일을 한다면 통해 작가로서 좋을 것 같아 설레었다. 하지만 바로 대답하기는 조심스러웠다.


그 출판사는 내가 추구하는 책과 결이 다른 책들을 베이스로 하고 있었다. 마치 발라드 가수가 트로트 가수들이 많은 소속사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소속사에 들어가는 가수보다는 감독 밑에 연기하는 배우처럼 대표가 기획하는 책을 써보겠다고 용기 내서 답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메일이 왔다. 대표는 계속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도와주는데 자신에게 무얼 해줄 거냐고 물어왔다. 갑자기 뭘 해줄 거냐고 물어봐서 당황스러웠다. 상식적으로 출판사와 작가의 관계는 작가가 글을 쓰고 출판사가 제작, 홍보, 판매한 후 수익금의 일부를 작가에게 원고료로 주는 시스템으로 알고 있는데 뭘 더 바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역시 답장이 빨리 왔다. 자기가 원하는 걸 모르는 사람과는 같이 일하기가 어려우니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다. 어제는 작가로 키워주겠다더니 오늘은 없었던 일이라고 하니 바로 이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책만 보고 사람을 좋게 봤는데 역시 사람을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 대표가 쓴 책에서 배운 점들이 많으니 공손하게 답장을 보냈다. 도대체 그 대표가 원한게 뭐였을까? 돈? 돈을 원한다면 얼마를 원했던 걸까? 작가가 출판사에 돈을 주면서 책을 쓰는 거였나? 도무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대충 그렇게 얘기하면 다 알아듣는데 내가 못 알아들으니 함께 일을 못하겠다고만 말했다.


그 대표는 자신을 책다운 책만을 출판하는 지조 있는 출판인이라고 말했다. 자신감 있고 솔직한 성격의 작가이자 대표라서 멋지게 봤는데 사람을 한참 잘못 봤다. 책이나 방송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경험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식당창업을 무료로 해준다는 어떤 외식업계사장이었다. 방송에서 그 사장은 순진하고 선한 얼굴로 돈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니까 식당창업을 무료로 해주고 돈을 벌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를 방송에 나와서 직접 했다. 그 사장을 통해 창업한 어떤 점장도 그 사장을 가족처럼 칭찬하니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멀리까지 사장을 만나러 가봤다. 결론은 완전 사기꾼이었다. 거의 노예계약에 가까운 계약 조건이었고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는 거다. 내가 듣다가 짜증이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는데 지금도 잊지 못할 무례한 말을 나에게 했다. 화가 났지만 거기서 같이 쌍욕을 하면서 싸우면 일만 커질 것 같아서 참고 나왔다. 그때 중요한 걸 깨달았다. 세상에는 공짜가 절대 없구나! 그리고 사람 조심해야겠구나! 함부로 믿으면 안 되겠구나! 살면서 그런 사기꾼, 거짓말쟁이, 이중인격자, 무례한 사람을 처음 만나서 한참 동안 몸이 떨렸었다. 어이가 없고 불쾌했지만 세상에 대해 배웠으니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출판계의 아이돌을 만들어주겠다는 출판사의 제안도 비슷한 것 같다. 하루 만에 키워주겠다고 하고 하루 만에 없었던 일로 하는 걸 보니 말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일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건 우선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여러 군데 출판 프러포즈 메일을 보냈는데 유독 한 군데에서만 곧바로 좋은 조건을 제안하는 답장을 보내는 경우는 먼저 경계해야 한다. 다행히 곧바로 관계가 끝나버리면 괜찮지만 잘못해서 계약이라도 한다면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번 일로 또 배웠다.


여전히 다른 출판사에서는 연락이 없다. 긍정적인 답장이 오면 좋겠다. 작지만 좋은 출판사를 만나고 싶다. 아니면 크고 유명한 출판사면 좋겠다. 그런데는 최소한 뭔가를 요구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작가로서의 실력을 키워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버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