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리우스 Apr 22. 2023

글쓰기 모임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로 구성된

어쩌다가 내가 반장이 된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30대부터 70대까지 버라이어티 한 남 2, 여 7 총 10명으로 구성된 글쓰기 모임이다. 여기서 예리한 독자는 궁금할 것이다. 왜 남자가 2명, 여자가 7명인데 총 10명이라는 걸까? 오타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오타가 아니다. 여자 회원 한 명이 현재 임신한 상태며 출산일이 얼마 남지 않아 뱃속에 한 명이 더 있어서 10명이 되었다. 우린 도서관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정식 출간이 되지 않아 서점에서 판매는 하지 않지만 함께 에세이집도 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모임을 만들고 만남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모임에서는 하루에 한 단어를 주제로 글을 써서 카톡 대화방에 공유한다. 짧게 쓰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꽤 길게 쓴다. 내가 쓴 글이 너무 길어서 읽기가 짜증 날 수 있지만 쓴 글을 브런치에도 올리기 때문에 묵묵히 길-게 쓴다. 길게 쓰니까 글쓰기 실력도 느는 것 같다. 하긴 길게 쓴다고 좋은 글은 아니지만. 시는 모든 글쓰기 중에 최고봉이니까. 


오늘은 글쓰기모임에서 소풍을 가는 날이다. 꽃피는 4월에 여자친구도 없는 노총각인 내가 어떻게든 소개팅 자리를 만들어서 토요일에는 여성을 만나야 하는데 나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솔직히 내가 이런 모임에 계속 있는 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소풍얘기를 처음 꺼낸 건 나였다. 반장으로서 분기별로 모임 이벤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역시 깊게 생각 안 하고 저질러 보는 나의 성격이 나온 것이었다. 원래 계획은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거나 안국역 투어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가서 전시도 보고 유명한 테라로사 카페에 가서 라떼도 마시려고 했는데, 70대 회원분이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하셔서 그분 집 가까운 자양한강도서관 투어로 대체되었다. 모인 사람은 4명, 70대, 60대, 50대, 40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무슨 말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도무지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무표정한 얼굴을 힘껏 웃어 보며 표정관리를 하고 어르신들을 만났다. 약속 장소인 도서관에 갔는데 70대, 60대 선생님 두 분이 계단에 쪼그려 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계시니 다행이다 싶었다. 50대 한 분을 만나 쭈뼛쭈뼛 근처 카레돈가스 집으로 향했다. 염려했던 것과 달리 가장 연세가 많으신 70대 어르신이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셨다. 60대, 50대 어르신들과 감각적인 핑퐁을 하시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나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하하", "허허", "헤헤"를 반복하며 추임새를 넣는 게 다였다. 내가 대화의 포지셔닝을 차지하는 건 힘들었다. 


역시 70대 회원분은 노련하시게도 대화를 이끌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셨다. 본인이 쓴 자서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사진들과 함께 굉장히 잘 정리한 자서전이어서 깜짝 놀랐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의 사진, 노트, 기록들을 보존하시고 책으로 엮으신 작업을 보고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이라면 유치원생 수준이 나는 그분의 기록능력이 엄청나게 부럽고 멋져 보였다. 선생님은 한 명씩 자서전을 보여주며 가족관계부터 시작해서 직장생활, 취미생활, 결혼생활, 자녀얘기, 학업얘기, 동아리, 대학원 생활 등 일생을 총망라해서 이야기를 펼쳐주셨다. 국회에서 발언을 오래 하기로 유명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의 손에는 언제나 수첩이 들려있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선생님은 기억에 의존한 대화가 아니라 시각적 자료를 보여주며 PPT 발표에 칼을 간 회사원처럼 물 흐르듯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역시 뭘 하든 준비한 사람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걸 또 깨달았다. 그분은 70대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밝고 활기차고 건강하셨는데 늘 뭔가를 배우고 경험하고 싶어 하시는 태도가 20-30대처럼 왕성하신데, 그런 호기심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같았다. 



60대 회원분은 이야기를 경청하며 중간중간 본인의 의견을 말씀하시면서 툭~툭~다른 내용의 대화주제를 던지셨다. 독서를 아주 좋아하시는 분인데 최근에 정년퇴직을 하신 남성분이시다. 대기업 해외주재원으로 파견되셔서 오랜 해외생활로 다양한 경험이 많으신 분이다. 광진정보도서관에서 책을 1,000권 정도 대출받아서 읽으실 정도로 독서에 열정적이시다. 역시 풍부한 독서력과 삶의 경륜으로 어떤 대화 주제가 날아와도 흔들림 없이 유쾌하게 받아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시다. 직장에서라면 부장님 이상의 경력을 갖고 계실 분이기에 사회생활을 한 나로서는 쉽게 대화하기가 어려운 느낌이 있다. 상무님이나 전무님 앞에서 선 대리의 느낌이랄까. 회사에서 직급이 높아지면 밑에 직원들이 뭘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 봐도 다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뭔가 그분 앞에 서면 내가 발가벗겨진 느낌이 든다. 내 속마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웬만큼 감을 잡으시는 것 같아서 말이다. 


50대 회원분은 중년 여성 특유의 포용력과 리액션으로 대화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하셨다. 요리에 들어가는 감미료처럼 깔깔 웃으시며, 깜짝 놀라시고, 키득키득 분위기를 띄우셨다. 책 얘기가 나오면 모르는 책이 거의 없으실 정도로 그분도 독서를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대화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우산을 펼쳐서 빗물을 즐기는 듯한 태도에서 역시 다독가의 포스가 느껴졌다. 


40대인 나는 왜 말을 제대로 못 했을까? 분위기가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편하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대화에 농담을 많이 섞어서 하는 스타일이다. 가볍게 헛소리를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스타일로 10대, 20대 때는 내 주위에는 깔깔대는 친구들이 많은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런데 30대 중반이 되면서 주위 사람들이 모두들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 직장에 자리를 잡고 자녀를 키우면서 진짜 어른이 된 것이다. 반면에 나는 그때부터 공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공무원이 되었고 연애에 계속 실패하면서 결혼을 못했다. 40대가 되면서 강박적인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고립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고 무서웠다. 오로지 혼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편안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어딜 가도 사회성이 없는 조용하고 과묵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최근에 강박과 결벽이 많이 좋아지면서 조금씩 사회성이 회복되고 있어서 다행이다. 


 내 본모습은 혼자 있을 때 나온다. 아프리카 원주민 같은 소리를 외치며 요상한 개그를 하고 깔깔, 낄낄, 키득키득 웃고, 혼잣말을 한다. 누구나 자신의 본모습과 사회적 모습이 같을 수는 없지만 나는 굉장히 다른 사람이 돼버렸다. 내 모습 그대로 사람들과 대화하면 미친 사람이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북한에는 사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토마토 같은 사람이 되자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사과 같은 사람이다. 북한 사람들이 싫어하겠지만 말이다. 


누구에게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지 않을까? 나는 사실 사람들의 어두운 면이 무섭다. 나의 어둔 모습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인지적 오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분들과의 관계는 무슨 의미일까? 어떤 관계가 되면 좋을지 모르겠다. 관계의 적절한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도 잘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피상적인 관계? 점점 깊어지는 심층적인 관계? 나도 나를 잘 모르고 평생 함께 산 배우자도 잘 모른다는데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가고 있고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상대방이 말하는 걸 잘 듣는 것이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고 그런 얘기들을 주워 들었다가 기억하는 게 전부다. 70대 선생님 바깥 어르신이 뻥튀기를 좋아하신다는 말을 기억해서 남은 뻥튀기를 그분에게 드렸다. 다른 분들 의견을 듣고 기억했다가 그분이 의견을 낼 때 호응하고 동의하고 힘을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다. 오늘 모임의 정리는 이 정도로 해야겠다. 내가 얻은 교훈은 아래와 같다.


"다음 모임에는 70대 회원님처럼 대화할 아이템을 몇 가지 준비해 가자! 필살기가 뭐 없나?"


ps. 내가 말을 많이 못 했던 이유는 내 독서력이 너무 약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돌 작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