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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Apr 15. 2023

둥지

끈기와 야성의 불꽃싸나이

 단설유치원 시설관리주무관으로 일 할 때 유치원 뒷마당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가 있었다. 그 공간에는 나무들로 빽빽한 언덕 같은 화단이 있었다. 원장님이 송충이 같은 벌레들을 싫어했는데 가지치기가 잘 안 되어 있어서 벌레들이 엄청 많았다. 어느 날 혼자서 사다리, 톱, 가위를 들고 하루 종일 무성한 나뭇가지를 모두 베어 버렸다. 나뭇잎을 갉아먹는 벌레들이 초토화시켜 놓은 하얀 거미줄 같은 것들로 가득한 나뭇가지들도 모두 잘랐다. 열대 우림 같은 화단은 알몸이 된 나무들만 앙상하게 남게 되었다. 그날 원장님이 얼마나 흐뭇해하시고 좋아하셨는지 모른다. 고생하고 수고한다고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 며칠 뒤에는 가을에 꽃이 예쁘게 피는 나무들도 모조리 잘라서 원장님께서 아쉬움이 가득한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과유불급이란 말을 또 새삼 느꼈다.


그때 화단 가지치기 작업 중에 유일하게 가지치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나무가 있었다. 톱을 들고 어떤 나무를 봤는데 자세히 보니 나무 안쪽에 둥지가 하나 숨어 있었다. 그 안에 어미새 같은 새 한 마리가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경계하며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키가 크지도 않은 나무에 둥지가 숨어있다니 신기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둥지 내부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남의 신혼집을 함부로 엿보면 안 될 것 같아서 못 본 척해줬다. 그 이후로 종종 멀리서만 바라봤다. 그때마다 어미새는 얼어붙은 것처럼 가만히 나를 봤다. 


내가 관심을 계속 갖고 보면 어디선가 숨어서 나를 관찰하고 있을 고양이들에게 둥지의 위치가 탄로 날까 봐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 깜박 잊고 있던 어느 날 다시 가보니 둥지는 빈집이 되어 버렸다. 원인은 잘 모르겠다. 유치원 놀이터에는 모래사장도 있었는데 아침에 출근하면 고양이 발자국들이 종종 남겨져 있었다. 그렇다면 동네 고양이들의 공격을 받았는지, 아니면 은신처가 되어줄 울창한 나뭇가지들이 없어져서 안전의 위험을 느껴 다른 곳으로 이사했는지 모르겠다. 황량하게 시골 빈집처럼 돼버린 작은 둥지는 나무의 안쪽 깊숙이 숨겨진 폐가가 되어버렸다. 


그 후로 화단을 관리하다 새하얗고 메추리알만 한 알들이 화분이나 바닥에 몇 개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란적이 있다. 알들은 깨진 것들도 있었고 깨지진 않았지만 속이 빈 알들이었다. 새를 좋아하시는 지인에게 들었는데 둥지에 알을 낳지 않고 나무둥치 같은 곳에 알을 낳고 낙엽잎으로 엉성하게 감추는 새들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새들의 알 같다. 알들이 부화해서 새끼가 되고 새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갔다면 좋았을 텐데 바닥을 떨어져 깨져 버린 알들을 보니 안타까웠다.


길을 걷다 보면 높이 서있는 나무 위에 둥근 모양의 둥지가 종종 보인다. 도대체 둥지는 몇 개의 나뭇가지들로 만들어져 있을까? 새처럼 경계심이 높은 동물도 별로 없는데 나뭇가지는 어디서 주어 오는 걸까? 언젠가 한강 산책로를 걷다가 나뭇가지 한 개를 뾰족한 주둥이에 물고 가로등 위에 앉아 있는 새를 본 적이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녀석의 둥지가 보였다.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폰을 들었지만 새는 둥지로 날아갔다. 둥지를 신축하는 건지 리모델링하는지는 모르겠다.


나뭇가지를 하나씩 물고 와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튼튼한 둥지를 만드는 새들의 둥지 만드는 기술은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사냥기술처럼 새끼였을 때 배우지도 않았을 테고 다 컸어도 누가 친절하게 가르쳐주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인간으로 치면 건축과도 안 다니고 실무경험도 없는 사람이 결혼할 때가 되면 자신의 힘으로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단독주택을 만들어낸 것과 같지 않은가? 둥지는 튼튼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들이 짓는 둥지의 높낮이에 따라 그 해의 기후를 예측할 수 있다고도 한다. 어떤 새들은 이끼를 재료로 해서 신축성이 있는 둥지를 만들어 새들이 들어가면 늘어나고 나가면 작아지는 둥지도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둥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자. 새들은 번식기가 되면 대부분 둥지를 새롭게 만들거나 옛 둥지를 리모델링해서 알을 낳고 부화된 새끼가 자라는 동안 청결하고 튼튼한 보금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청소하고 수리한다. 둥지는 내진설계한 건물처럼 동글동글한 알들이 떨어지지 않고 깨지지 않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진다. 둥지의 재료는 벗긴 나무줄기, 나뭇가지, 나무껍질, 지푸라기, 털, 흙, 작은 돌, 거미줄이며 특히 거미줄은 가볍고 신축성이 있어서 둥지에 놀라운 탄성을 준다. 도시에는 전선 조각, 유리 조각, 철사, 고무 같은 폐기물들로 만들기도 한다. 실험으로 나뭇조각 모양의 유리들을 새들에게 제공해서 유리 둥지를 만들게 하면 어떻까 생각해 본다.  


둥지를 만들지 않고 나무를 뚫어서 집을 만드는 특별한 새가 있다. 누가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센스 넘치는 이름의 딱따구리다. 딱따구리는 해머드릴로 벽을 뚫는 것처럼 뾰족한 주둥이로 드르르르륵 소리를 내며 나무에 구멍을 뚫는다. 딱따구리는 1초에 16번 정도 나무를 두드리는데 그것을 딱따구리 드러밍(Druming)이라고 한다. 드러밍 소리를 내며 자신의 영역을 나타내거나 힘을 뽐내서 짝도 찾는다. 한번 구멍을 뚫어서 집을 만들면 거의 평생을 한 자리에서 새끼를 키우며 산다. 먹이도 다른 나무 안에 숨어있는 곤충들의 알, 애벌레를 잡아먹는다. 하지만 나무 깊숙이 숨어있는 애벌레를 찾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딱따구리의 혀의 길이다. 딱따구리의 몸길이가 8~45cm인데 머리에 들어있는 혀의 길이가 무려 20~25cm라고 한다. 그 긴 혀끝은 뾰족한 가시모양이고 작은 가시들이 수 십 개 박혀있는 데 마치 낚싯바늘 같은 역할을 해서 깊이 숨어 있는 애벌레를 콕 찔러서 빼낸다. 놀라운 사냥도구와 기술을 갖고 있다.  


딱따구리의 놀라운 비밀은 더 있다. 드러밍을 한 번 할 때 딱따구리가 받는 충격은 중력의 1000배, 우주왕복선 조종사가 받는 힘의 250배에 달한다고 한다. 마치 프로야구 투수가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던지는 것처럼 딱따구리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수만 번의 드러밍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딱따구리의 뇌가 견딜 수 있는 비밀은 두꺼운 스펀지 같은 연골 쿠션이 충격을 흡수해서 머리와 뇌를 보호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면 가장 위험한 기관은 눈이다. 중력의 1000배의 압력이라면 눈알이 튀어나오겠지만 수백 분의 1초의 타이밍으로 드러밍의 리듬에 맞춰서 눈을 감아 눈알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는다. 다른 새들이 둥지를 만들기 위해 수천수만 번 비행을 하는 것처럼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뚫기 위해 얼마나  드러밍을 할고 그런 드러밍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구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참고 EBS 컬렉션-사이언스 뇌 속에 혀가? 딱따구리 뇌구조 공개!]

 또 특이한 새가 있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키우는 데 이를 탁란(deposition, 托卵)이라고 한다. 뻐꾸기는 자기 알과 비슷한 색깔의 푸른색의 알을 낳는 새의 둥지를 찾아서 부모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알 1개를 없애고 1~3개의 알을 낳는다. 암컷 한 마리가 번식기에 10~20개의 탁란을 한다고 하니 적어도 10개의 다른 새집의 알들이 희생되는 것인데 20~30개의 둥지 중에 1개 정도의 둥지에서 탁란이 이뤄진다고 한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원래 둥지의 주인인 붉은 머리 오목눈이 같은 새는 12~13일 정도 알을 품어준다고 한다. 뻐꾸기 알은 원래 있던 알보다 먼저 부화해서 뒤늦게 부화한 새끼들이나 알을 등에 얹고서 둥지 밖으로 몰아내어 떨어뜨리고 둥지를 독차지한다. 그리고 둥지가 터질 만큼 커져서 둥지에서 나오고 나온 후에도 먹이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자기 몸집보다 훨씬 작은 어미새의 보살핌을 받는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니 산속에서 들리던 뻐꾸기 소리가 예전처럼 좋게 들리지 않을 것 같다. 뻐꾸기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졌지만 어찌하겠는가 자연의 본능대로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닌가? 

[참고 EBS 컬렉션-먼저 태어난 뻐꾸기가 하는 충격적인 행동]



새 둥지를 생각하면 나는 폐지를 줍는 할머니들이 생각난다. 나뭇가지 하나를 줍기 위해 인간과 천적을 피해 가며 나뭇가지를 줍는 새들과 백발과 앙상한 몸, 구부정한 허리로 유모차나 작은 리어카를 끌며 동네를 돌아다니며 박스를 줍는 할머니들이 닮은 것 같아 안타깝다. 요즘에는 트럭을 몰고 다니며 분업해서 폐지를 줍는 사람들도 있고 거대한 리어카를 끌고 종이 박스를 싹쓰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틈에서 하루 종일 어렵게 찾은 폐지들을 유모차에 담고 모아서 재활용센터에 갖다 주면 받으시는 돈이 얼마가 될까. 박스를 줍는 할머니들에게 더 안전하고 편한 일자리들이 생기면 좋겠다. 고령의 어르신들은 힘든 일을 안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사실 나는 둥지를 볼 때마다 부끄럽다. 새들도 매력적인 외모로 암컷을 유혹하고 기적적으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기 위한 둥지 하나를 만든다. 가족을 위해 수만 번을 날아서 나무조각을 주어와 보금자리를 만들고 애벌레를 물어오는데, 나는 아직도 내 집 마련을 못했으니 말이다. 다른 동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부모에게 보살핌을 받는 인간으로서 고개가 숙여진다. 남자로 태어나서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집 하나는 만들어야 둥지를 볼 때마다 새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처음 올려놓는 나뭇가지 하나가 모퉁이돌이 되고 그 위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 결국에는 둥지를 완성하고 중력의 1000배에 달하는 충격을 수천만 번 견디며 나무에 집을 만드는 새들의 본능에서 남자다움의 불꽃과 끈기, 야성이 느껴진다. 나도 끈기와 야성의 불꽃싸나이가 되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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