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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Apr 24. 2023

뻔데기

멋지게 나이 들기

 도서관 라운지에서 점심을 먹고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담으려고 했다. 내 앞에 어떤 여자가 먼저 정수기 앞에 서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작은 용기에는 갈색의 무언가가 담겨있었다. 납작한 애벌레모양이 그것 같았다. 설마? 요즘에도 저걸 먹는 사람이 있나? 다시 봤다. 맞았다.

뻔데기였다.

 "뻔~데기~데기~데기~뻔데기~뻔~뻔~데기~데기~"

뻔데기는 짭쪼롬하고 곤충의 단백질 특유의 담백한 맛에 쪼그마한 몸통 껍질이 씹히는 식감의 국민간식이었다. 종이컵에 뻔데기를 몇 십 마리 담아주면 이쑤시개로 콕콕 찍어먹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뻔데기를 보기가 쉽지 않다. 뻔데기 본지가 몇 년은 된 것 같다.마지막으로 봤던 장면이 기억난다.


 군자역 5번 출구 같다. 군자역은 5호선과 7호선이 함께 있는 더블 역세권이고 5, 6번 출구는 먹자골목이 있어서 그런지 퇴근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꽤 많다. 그날도 저녁이었다. 어떤 할아버지가 작은 리어카처럼 생겼고 아주 커다란 검은색 솥단지를 가열할 수 있는 이동식 조리기구를 갖고  지하철 출구 앞에 등장했다.

 그분은 커다란 주걱으로 솥단지 가득 담긴 뻔데기를 열심히 휘젓고 있었다. 그분의 몸짓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팔을 걷어붙이고 이 많은 뻔데기를 오늘 다 팔 수 있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작은 종이컵 300개는 담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엄청났다.


 걱정이 됐다. 안 팔릴 것 같았다. 군자역의 유동인구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퇴근길인 사람들은 집에 가서 밥을 먹을 것 같았고 먹자골목에 온 사람들은 맛있는 것들이 널렸으니 뻔데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분은 아직도 1970년대를 살고 있는 듯했다. 뜨끈하고 고소한 맛있는 간식 뻔데기가 군자역에 등장하면 너도 나도 줄을 서서 먹을 테고 그럼 용돈 삼아 시작한 뻔데기 장사로 제법 쏠쏠한 재미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뻔데기는 맛있어 보이지가 않았다. 요즘에는 맛있는 게 너무나도 많다. 옛날이야 먹을 게 없었으니까 뻔데기를 먹었겠지만 요즘에는 뻔데기를 먹는 사람이 별로 없다. 단 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짭쪼롬한 곤충은 선택지에서 순위가 많이 밀릴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5명도 그 뻔데기를 안 사 먹었을 것 같다. 그 많은 뻔데기를 어떻게 하셨을까?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엄청 멋을 부린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본다. 젊으셨을 때 멋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으셨을 것 같은 패션이시다. 그런데 그분들의 패션은 1960년, 1970년대에 멈춰있다. 호피무늬 코트를 입고 파이프 담배를 무시고 드레스코드는 한 가지 색으로 통일하신다. 갈색이면 모두 갈색, 흰색이면 흰색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처럼 낯설다. 어르신들이 제일 잘 나갔을 때 입었던 옷들인 것 같다. 그때의 추억과 자신감을 간직한 옷들을 장롱 속 고이 간직했다가 날을 잡고 입고 나오신 것이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잘못 오해하면 내가 어르신들을 무시하는 듯 보이겠지만 그런 게 아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많이 변했는데 세상의 변화에 따라오지 못하고 멈춰버리신 것 같아서 마음이 먹먹하다. 그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계셔도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아 안타깝다. 정말 멋지게 입으셨는데 의기소침해 보이셔서 울적하다. 나의 편견과 오해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분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감 충만! 하시고 행복하실 수도 있다. 내가 괜히 센치하게 생각해서 그런 거일 수 도 있다. 하긴 멋지게 나이 든다는 게 뭘까라는 질문에 사람마다 다르게 대답할 테니까. 괜한 생각은 접어두고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 근사하게.  


그녀는 뻔데기가 조금 짰는지 뻔데기가 담긴 통에 물을 받아서 먹었다. 언젠가 뻔데기를 파는 곳을 봐도 뻔데기를 사먹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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