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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n 17.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7

냥이구출대작전! 1탄

냥이 구출대작전!



 퇴근시간이 다가오는 5시 30분쯤 우리 과 다른 팀에 있는 예쁜 여주임에게 전화가 왔다. 현장출동을 해야 하는 민원이 많은 부서에서는 이 시간대 오는 전화는 웬만하면 받기가 꺼려진다. 출장을 갔다 오기가 애매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쩔 텐가. 업무시간이니만큼 민원 전화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쁘고 날씬한 여주임은 공무원 친절교육을 받은 멘트에 경상도 부산 사투리가 진하게 느껴지는 억양과 상냥한 목소리를 담아 민원인에게 상큼한 쿠션멘트를 날렸다.   


"감사합니다. 땡땡과 **주무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경상도 억양]


여기서 잠시! 내 생각에 오후 5시 30분이 되면 공무원은 세부류로 나뉜다. 

1번 성실한 공무원 : 그들은 맡은 바 업무를 일과 중에 성실하게 수행하고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일을 준비한다. 그런 그들도 5시 30분 정도가 되면 저녁을 뭘 먹을지? 유튜브를 뭘 볼지? 집에 가서 뭘 할지? 같은 딴생각을 한다.  

2번 게으른 공무원 : 하루 종일 탱자탱자 놀다가 4시쯤이 됐을 때 갑자기 오늘까지 끝내야 할 일이나 제출해야 할 자료들이 생각나서 부랴부랴 일을 마무리하느라 진땀을 빼며 초집중을 하고 있을 시간이다. 세상은 고요하고 오로지 그에게는 폭풍 키보드소리만 들릴 뿐이다.

3번 관계형 공무원 : 최대한 빨리 6시가 되기를 바란다. 친한 선후배 공무원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다질 생각에 한 없이 설레는 시간이다. 저녁 식사 > 술 > 당구 > 담배 > 노래방 > 복귀 > 짧은 대화 > 초과지문 찍기의 일련의 코스뿐만 아니라 지하철 도착시간을 계산해서 집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디테일하고 세밀하게 플랜을 짜기에 바쁘다. 

20여 명의 우리 과 직원들은 귀를 쫑긋 세워서 듣지 않아도 워낙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높고 낮음의 억양이 분명한 그 부산아가씨의 통화내용이 귀에 들렸을 것이다. 


"네? 고양이가 빗물받이가 갇혔다고요?"


여직원은 어쩔 줄 몰라했다. 여직원은 우선 장소를 메모하고 민원인의 연락처를 받았다. 고양이가 빗물받이에 갇혔다니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팀이 아닌 일이니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지만 고양이 구출민원을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6시가 되었지만 그 팀에서 아무도 고양이를 구출하러 가지 않았다. JS 민원이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싶었다. JS는 불편한 편의점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도 가끔 JS다.  


다른 팀업무까지 신경 쓰고 걱정하는 나는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나는 그 여직원에게 가서 고양이가 갇혀있다는 주소를 물어보고 내가 가겠다고 했다.


"네? 주임님이 가시겠다고요?"


여직원은 이놈이 미친놈인가 하는 생각을 했을 수 도 있고 아니면 고마워했을 수 도 있을 것 같다. 공무원들은 사과 같아서 겉과 속을 알 수 없으니 잘 모르겠다. 그래서 북한에는 '사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토마토 같은 사람이 되자.'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겉과 속이 같은 색깔이고 겉을 보면 속을 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아무튼 나는 별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도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빗물받이는 힘쓰면 거뜬하게 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동물원은 좋아하지만 동물을 만지는걸 안 좋아한다.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에게 행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행운이가 내게 오는 것을 나는 안 좋아했다. 나에게 꼬리를 흔들며 펄쩍펄쩍 뛰면서 쫓아오는 행운이에게 아침, 저녁으로 외쳤다.


"행운아!!! 오지 마!! 안돼!!" 


행운이 오지 않기를 애처롭게 외치는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특별히 행운, 행복 같은 긍정적인 단어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행운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외쳤었다. 결국 행운이는 시골에 살고 있는 엄마 지인에게 보내졌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키우는 분들이 많지만 나는 강아지보다 고양이에게 더 거리를 두고 싶다. 


그래도 고양이가 불쌍해서 갔다.

택시를 탔는데 차가 많이 막혔다. 택시 운전사는 아주 젠틀하고 세련된 젊은 기사님이셨다. 기사님께 민원처리를 해야 하니 조금 급하다고 했다. 하지만 퇴근시간 길이 막히기로 유명한 땡땡동으로 가는 길은 정말이지 꽉꽉 막혔다.


미터기가 올라가면 승객은 초조함을 느낀다. 택시 기사님 사이에도 불문율이 있을 것 같다. 그중 하나는 '차가 막힐 때는 승객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일 것이다. 상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무슨 말을 해도 상대에게 좋은 말을 못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초초함을 느끼시는 것 같아 내가 자동차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함께 긴장을 풀어드렸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택시 기사를 하게 되셨냐고 물으니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다 30년 일찍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참으로 부지런하고 결단력 있는 분이셨다. 그리고 나처럼 젠틀한 승객이 있어서 좋다고 칭찬까지 해주셨다. 나는 젠틀한 척한 거고 기사님은 정말 젠틀한 사람 같았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젊은 여성 3명이 빗물받이 앞에서 추위에 떨며 고양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구청에서 나왔다고 인사를 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나는 멋지게 보이고 싶었던 건지 패딩을 벗고 장갑을 끼고 작업을 준비했다. 


나는 와일드하게 빗물받이를 들었다. 그런데! 빗물받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안 움직이지....'


도구를 이용하기로 했다. 현장 옆에 있는 부동산에 가서 망치를 빌린 후 빗물받이를 두들겼지만 역시 꿈쩍도 안 했다. 자세히 보니 최근에 새로 깐 아스팔트가 빗물받이 위로 침범해서 단단하게 고정이 되어있었다. 아스팔트로 고정된 빗물받이는 인간 한 명의 힘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민원을 받은 여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주임님! 내가 고양이를 구출하러 왔는데요. 빗물받이가 안 열려요. 괜찮으시면 협력업체 불러주실 수 없나요?"


아니! 이 또라이가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귀찮게 하고 지랄이야?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그 예쁜 여주임은 마음도 예쁠 것이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임님! 업체에 연락해 볼게요!"


전화를 끊고 나는 망치로 빗물받이 모서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아스팔트를 깨면서 빗물받이를 열어보려고 했지만 역시 안되었다. 그때 다시 전화가 왔다. 여직원이 속한 팀의 팀장님이셨다. 


"김주임님! **팀장 **입니다."

"아! 네! 팀장님!"

"지금 고양이 구출하러 가셨다고요? 원래 우리 팀에서 해야 할 일인데 일이 이상하게 되었네요. 우선 업체가 근처에 있다고 해서 바로 가보라고 했어요. 금방 갈 거예요."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전화를 끊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 추워졌다. 세 명 중에 두 명의 여자는 포기하고 집에 가고 한 명의 여자만이 자리에 남아서 고양이의 구출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7시 20분 정도 된 것 같다. 건장한 업체 직원 3명이 특이한 모양의 곡괭이를 챙겨 왔다. 우린 진짜 열심히 아스팔트 돌을 깨고 틈새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결벽증이 있는 나는 심지어 도로 중앙에 있는 하수구까지 들어가서 빗물받이와 통로를 찾았지만 실패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부터 빗물받이에 갇힌 고양이 어미로 추정되는 고양이가 우리 옆에서 계속 우리를 지켜보면서 야옹을 하고 있었다. 아마 그 모습 때문에 그 여자분들도 새끼가 어딘가 갇혀있다고 추측한 것 같다. 여자의 촉과 직감은 역-시 무섭다. 어미 고양이는 자기 새끼를 빨리 구해달라고 하는지 아니면 답답해서 못 보겠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원망스런 야옹의 백그라운 음악을 깔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9시 정도가 됐을까? 진짜 칼퇴하는 회사원처럼 어미 고양이가 갑자기 현장을 떠나 어디론가 유유히 떠났다. 그때까지도 빗물받이를 들어 올리지 못할 때라 혹시 갇힌 새끼를 만나러 가나 싶어 따라가 보았다.


어미고양이는 어느 주차장으로 들어가더니 어떤 아지트 같은 곳으로 쏙- 들어갔다. 진짜 퇴근을 하고 자기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렇게 자기 새끼 옆을 지키더니 잠잘 시간이 되자 새끼를 냉팽겨치는 고양이를 보며 동물의 세계가 원래 이런건가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어미 고양이도 퇴근했지만 나는 내 팀 업무도 아닌 애매한 일로 퇴근을 못하고 있었다. 우리를 돕기 위해 근처 소방서에서 근무하시던 소방관님도 왔다 가셨지만 비관적인 이야기를 남기시고 돌아갔다. 그렇게 2시간이 흘러 9시 20분쯤 포기하지 않고 아스팔트를 깨부수었던 우리는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빗물받이를 들어 올렸다!! 전문가 3명, 공무원 1명이 2시간을 붙어서 헉헉 거리며 해야 할 일을 나 혼자 하려고 했었다니!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 하수는 겁이 없다는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다.




어렵게 빗물받이를 열고 하수구 안쪽을 보니 거기에 고양이가 있었다! 새끼는 아니고 약간 큰 녀석이었다! 

이제 그 녀석을 하수구에서 빼내는 과제가 남아있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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