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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n 19.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8

냥이구출대작전 2탄

  드디어 빗물받이를 열고 하수구 안쪽을 보니 고양이가 있었다! 괜히 하수구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는 야옹 하면서 날카로운 발톱에 얼굴을 할퀼 것 같아 무서웠다. 내가 처음에 갔을 때부터 3시간 넘게 구출작전 자리를 지켰던 여성분은 고양이 밥과 간식을 갖고 있었는데 그 먹이로 고양이를 유인했다. 이리 오렴~냥이야~

빗물받이가 열려있는 상태! 냥이가 입구에서 나오기만 하면 번쩍 들어서 빼내면 될 일이지만 야생동물을 무턱대고 잡을 만큼 배짱이 두둑한 사람은 없었다. 먼저 하수구 입구 쪽에 맛난 먹이를 놓았는데 냥이는 배가 고팠는지 바로 머리만 살짝 내밀어서 날름 다 먹어 치우고 쏙 들어가 버렸다. 우린 입구보다 더 멀리 유인하고 다시 하수구 통로로 돌아가지 못하게 해야 했다. 입구 쪽에서 멀리 먹이를 던져 놓고 냥이가 나오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제발 빨리 나와라! 얼어 뒤지겠다! 냥이야! 잠시 후 먹이가 있는 쪽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오려는 냥이의 움직임 포착된 순간 입구를 막으려는 우리의 어설픈 행동이 금세 들통났다. 냥이는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드리듯 순식간에 더 깊은 하수구로 사라져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를 약 올리는 게 아니길! 처음에 먹이를 입구 가까이 둔 것이 우리의 엄청난 실책이었다. 뜨핫!



 그렇게 추위에 벌벌 떨면서 30-40분 냥이가 다시 얼굴을 내밀길 기다렸다. 안 되겠다 싶어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기로 했다. 왜 진작부터 이 생각을 못했을까! 구청야간당직을 설 때 알게 되었던 동물구조협회로 전화를 했다. 동물구조협회는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늦은 밤이지만 통화연결이 되었다! 나는 얼음짱같은 손을 호호 불면서 현재까지 상황을 설명했는데 담당에게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이 못 들어가는 곳은 구출이 어려워서 출동을 못 해요."


이게 뭔 소리인가? 말인가? 방구인가? 동물을 구조하기 위한 조건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그럼 포획 장비들은 왜 있는 건가? 사람이 들어가서 잡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동물들도 구조할 수 있어야 진정한 동물구조 아닌가라는 생각이 나를 자극했다. 하지만 나는 올라오는 화와 짜증을 억누르고 부드럽게 말했다. 


"제 상식적으로 담당자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 되는데요."



 솔직히 춥고 배고파서 짜증도 많이 났던 나는 통화를 하다가 결국 폭발했고 논리적으로 따져 물었다. 나의 논리가 그의 논리를 압도하였고 결국 그는 우리 쪽으로 와준다고 하였다. 드디어 전문가가 온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지만 내가 진상짓을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동물들을 구조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 해봐도 알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기다리는 동안 담당자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동물구조협회와 통화한 시간이 9시 정도 된 것 같다. 아직 오려면 1시간은 넘게 걸릴 예정이었다. 그 사이 업체 직원들도 돌아갔고 끝까지 구조현장을 지켰던 여성분도 내가 상황보고를 드린다는 조건으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거의 4시간을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냥이를 지켰던 그 여성분도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혼자 남은 나는 코로나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9시 이후에 갈 곳도 없었다.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어서 가까운 소방서에 갔다. 아까 봤던 소방관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친한 척을 했고 잠시 몸을 녹일 수 있었다. 밤에 소방서에서 가본 적은 처음이었다. 꽤 많은 직원들이 야간 상황실을 지키고 있었다. 소방관들은 밤낮이 따로 없구나 생각이 들었다. 10분 정도 쉬었을까? 이렇게 있느니 기다리는 동안에 혼자라도 고양이를 유인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다시 소방서를 나와 편의점에 들러 TV 광고에서 봤던 고양이가 좋아한다는 간식을 사서 냥이를 강력하게 유인하기로 했다.


하지만 밤 10시 정도까지 고양이는 꿈쩍도 안 했다. 우리가 틈틈이 줬던 먹이들로 분명히 배가 부른 것이다. 나는 화가 났다. 괜스레 캣맘들을 원망했다. 캣맘들이 냥이들에게 밥을 주며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니까 고양들의 생존율과 번식률이 증가하여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동물구조협회 담당자가 봉고차를 몰고 등장했다. 나는 먼저 그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담당자도 프로답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며 나를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전문가답게 고양이의 유입구와 탈출통로를 신속하게 알아냈다. 역시 그가 말한 대로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공간이었고 이런 상황은 입구를 열어놓고 고양이 스스로 나오도록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괜히 먼 길을 오라고 한 것이었다. 전화로 했으면 됐을 일이었다. 하지만 밤늦게 멀리 온 담당자에게 더 이상 요구할 수 없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90도로 인사하고 담당자를 보내드렸다. 동물구조협회 담당자가 떠나고 열려있는 빗물받이와 하수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냥이를 내려다보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골목 한가운데 있는 기다란 빗물받이를 열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현재 상황을 여성분에게 보고 하고 빗물받이를 도로 설치한 후 고양이를 두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10시 25분 정도 된 것 같다. 너무 고단했다.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다. 맘스터치에 갔더니 사이드와 버거만 된다고 해서 어니언 감자튀김을 아주 맛있게 먹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첫째 날 : 냥이구출대작전 실패


결국 오늘 고양이 구출작전은 실패했다. 고양이 어미도 잠을 자고 있을 것이고 갇힌 고양이도 하수구에서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하수구에 갇힌 고양이는 우리가 유인하기 위해 던져 놓은 간식과 밥을 든든하게 먹고 어느 무엇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오늘 밤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쉽지만 고마워하던 민원인 분들, 고생한 협력업체 직원들, 망치를 빌려 준 인근 복덕방 사장님, 장비로 도와준 식당 사장님, 인근 소방관님까지 고양이 구출작전에 한 팀이 되어 추운 겨울밤 고생을 하였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라는 말처럼 내일 이어질 고양이 구출작전 2차전이 어떻게 될지 기대반 걱정반으로 잠이 들었다. 





둘째 날이 밝았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냥이구출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SBS 동물농장에 연락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 SBS 동물농장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동물 관련사연을 제보할 수 연락처를 입수했다. 나는 동물농장 홈페이지 제보게시판에도 글을 남겼다. SBS 방송국에서 의외로 빠르게 11시 정도에 연락이 왔는데 하필 그때 내가 전화를 못 받았다. 1시 정도에 동물농장과 연결이 되어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프로그램 작가같은 분이 팀원들과 검토 후 연락을 주겠다고 해서 어서 빨리 처리되면 좋겠다고 했지만 곧바로 구조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동물농장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첫날 9시 넘어서까지 자리를 지켰던 여성분에게 연락이 왔다. 현장에 언제쯤 올 수 있는지와 본인이 다른 동물 협회에 연락을 했고 그쪽에서도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도 동물농장에 연락을 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리고 낮동안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빗물받이를 열어놓고 무작정 대기할 수는 없어서 구조기관의 연락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둘 째날 : 냥이구출대작전 실패


민원인이 알아본 카라동물협회에서는 바로 연락이 왔는데 빗물받이를 열어놓고 기다리기 위해서는 구청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우리 과 하수팀장님께 상황을 말씀을 드리고 허락을 받아낸 뒤 민원인에게 전달했다. 이제 카라동물협회가 냥이를 구출하기 위해 출동할 것이다. 그렇게 둘째 날이 지나갔다!

 


 

셋째 날! 나는 냥이구출대작전 상황이 궁금했지만 원래 다른팀 업무였는데 그 일로 출장을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날 구청사에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 나도 검사를 받기 위해 귀가해야 했다. 검사를 받고 집에 가는 길에 여성분에게 연락이 왔다. 냥이가 안전하게 구출되었다는 메시지와 구출된 냥이의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섬뜩한 느낌이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드디어 냥이가 안전히 구출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하고 카라동물협회의 프로페셔널한 구조활동이 멋있었다. 


셋 째날 드디어 냥이구출대작전 성공!


여성분은 나에게 고맙다며 커피와 케이크 기프티콘까지 보내주셨는데 김영란법 때문에  감사하며 마음만 받겠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돌려드렸다. 사실 내가 받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이 냥이에게 받아야 한다. 내가 한 것은 별로 없었고 그분이 끝까지 고양이를 구출하기 위해 노력해서 냥이가 어렵사리 어두운 하수구를 탈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냥이는 자기를 구출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까? 차가운 날씨에 손을 벌벌 떨며 몇 시간을 구조작전 자리를 지키고 간식을 사서 먹이고 다음날도 구청 직원, 동물협회에 연락하고 셋째 날도 동물협회와 함께 구조하는 자리를 지켰던 은인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고양이는 모를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동물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성경 요나서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물들도 아끼신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 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 4:11


 


 

돌이켜보면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면 나도 금방 포기하고 복귀했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나도 냥이구조작전에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그 여성분은 핫팩도 사서 추위에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기도 했다! 동물을 아끼는 사람이 마음이 따뜻하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처칠의 명언이 생각난다. NEVER GIVE UP! NEVER! NEVER!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절대로! 절대로! 그분의 마음과 행동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는 장작이 되어 차가운 우리의 손과 마음을 녹여주었다는 훈훈한 메시지로 마무리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 냥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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