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리우스 Aug 16. 2023

소똥 같은 물체의 정체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23

 아침에 도서관을 가고 있었다. 아차산역에서 광나루역으로 가려면 숨이 헉헉! 거릴 정도로 서울에서 보기 드문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고개 이름은 정해진 게 없어서 아차차 고개라고 명명하겠다. 아차차 고갯길 왼쪽은 아차산 끝자락과 연결되어 있어서 울창한 숲이 있고 오른쪽은 길을 따라 화단 같은 풀숲이 이어져있다. 그날도 아차차 고개를 넘기 위해서 고갯길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저 앞에 남자 둘이 무언가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 남자들 앞에는 거대한 소똥 같은 물체가 보였다. 


'뭐지?' 


괜스레 흠칫 놀란 나는 멈춰 서서 걱정 80% 호기심 20% 눈빛으로 그들을 멀리서 지켜봤다. 남자 중 한 명이 오던 길을 멈춘 나를 보고는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그 남자의 손짓을 의심스럽게 여기며 다른 길로 갈까 말까 고민했다. 그런데 소똥 같은 물체를 보던 다른 한 남자가 소똥 같은 물체를 스마트폰으로 여러 번 사진 찍은 뒤 웃는 얼굴로 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 내려왔다.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남자에게 물었다.


"뭐... 뭐예요?"


"뱀이 쥐 잡아먹고 있어요."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즐거운 표정으로 나에게 대답합니다.


"네????!!!!!"


멀리서 소똥처럼 보였던 물체는 바로 뱀과 쥐였던 것이다. 뱀이 쥐를 잡아먹고 있다니! 나는 자전거를 돌려 고갯길이 아닌 아차산지하차도 옆 자전거길로 서둘러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데 잠깐!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뱀도 쥐도 싫어하지만 뱀이 쥐를 잡아먹는 모습을 서울에서 또 언제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다행히도 어떤 중년의 남자가 뱀 앞에 서서 뱀의 사냥을 계속하게 관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남자를 방패막이 삼기로 하고 천천히 걸어서 사건의 현장으로 다가갔다. 소똥 같은 물체와 가까워질수록 놈의 형체가 드러났다.  뱀의 두께는 엄지손가락만 하고 길이는 1.5m 정도 되는 가늘고 기다란 녀석이 똥처럼 또와리를 틀고 있었다. 기다란 수도꼭지 호수를 둥글게 겹쳐놓은 듯한 녀석의 입 밖으로 들쥐로 추정되는 회색의 생물체 몸통이 반이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바게트 빵을 입에 쑤셔 박아 넣어서 침으로 서서히 녹여먹는 것처럼 아주-아주- 서서히 생물체를 삼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차마 뱀의 눈빛과 주둥이 주위를 디테일하게 보지는 못했다. 엄지손가락만 한 몸으로 아이들 주먹만 한 쥐를 통째로 삼키는 모습을 실제로 본적은 처음이었다. 예전 동물의 왕국에서 아나콘다가 침팬지를 통째로 삼킨 것이 생각났다. 고탄력 판타롱 스타킹에 침팬지가 들어간 것처럼 침팬지 실루엣이 느껴지는 거대한 덩어리를 뱃속에 채운체 유유히 아마존 같은 강을 헤엄치는 아나콘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뱀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말았다. 별로 기록에 남겨두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남자는 뱀이 쥐를 모두 삼킬 때까지 기다릴 작정인지 계속해서 아주 유심히 관찰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쥐를 다 먹은 뱀을 잡아서 뱀술을 담그려 했거나 든든하게 포식한 뱀이 영양가도 풍부하겠거니 생각하고 녀석을 잡아먹으려고 한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문득 뱀을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불편해서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검색을 해보았다.


'뱀을 발견했을 때?'


 네이버에 조회해 보니 뱀을 발견하면 곧바로 119에 신고를 해야 한다고 나왔다. 곧바로 119 신고를 했다. 잠시 후 119 대원에게 전화가 왔고 자세한 위치와 상황을 설명해 줬다. 다소 마음이 안정되고 처리 결과를 기다렸지만 어떻게 되었는지 연락을 받지는 못했다. 119 전문가들이 뱀을 처리했든지 아니면 사냥을 마친 뱀이 아차산에 있는 아늑한 자기 굴로 복귀했든지 그것도 아니면 그 중년의 아저씨가 잡아갔을 텐데도 자꾸 뱀생각이 났다.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뱀이 나타날 것 같아 겁이 났다. 특히 맨발에 슬리퍼를 신을 때는 더 무서웠다. 그 길은 아침저녁으로 지나가는 길이다. 쥐를 통째로 잡아먹은 뱀은 어디에 있을까?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생물체를 통째로 삼켜서 소화를 하는 걸까? 군대에서도 본 적 없는 뱀의 사냥을 서울에서 보았으니 우리 모두 뱀조심해야겠다. 


뱀은 성경 창세기에서 하와를 유혹했다. 하나님께서 절대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선악과를 먹으라고 말이다. 뱀은 거짓말로 하와를 속여서 먹게 하고 하와는 그 선악과를 아담에게 주고 아담도 선악과를 먹어버린다. 그로 인해 전 인류를 죄의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뱀이 뭐라고 하와를 유혹했을까? 얼마나 간교하고 교묘하게 접근하는지 모른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은 모든 것을 먹되 선악과만을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하와의 생각의 프레임을 교묘하게 뒤틀면서 하와에게 접근하여 말을 섞는다.


인류의 첫 여자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기억해서 똑똑하게 대답한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이때 하와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뱀을 무시하고 자리를 피했어야 한다. 우리는 말을 섞지 않을 대상을 구별하는 지혜가 꼭 필요하다! 뱀은 일관되게 하나님 말씀을 뒤집으면서 거짓 정보를 쏟아낸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악의 고단수다. 거짓말을 당당하게 하면서 하나님과 하와의 관계를 이간질시키며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며 하와를 끈적하게 미혹한다. 


결국 하와는 선악과를 보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그 열매를 따먹게 된다. 그리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주고 먹게 한다. 그로부터 원죄의 저주의 뿌리가 전 인류를 뒤덮게 된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죄는 무엇이었을까? 불순종의 죄였을까?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팽개치고 멋대로 행동했던 방탕죄였을까?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모든 죄의 근원은 '교만'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이 인류가 처음 저지른 죄의 본질이었고 여전히 우리 삶의 모든 죄의 뿌리인 것이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자기 멋대로 생각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지혜롭지 못하고 강하지도 않고 어리석고 연약하다. 나에게는 어떤 교만함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어깨에 힘 빼고 나는 하나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겸손히 고백해 본다. 


뱀이 사냥감에게 몰래 다가와 독이 나오는 이빨로 생물체를 통채로 삼켜버린 것처럼 교만의 독이 우리를 통채로 망하게 할 수 있다. 우린 뱀도 교만도 함께 경계해야 한다. 아차차 고개에서 봤던 소똥 같은 뱀을 소똥처럼 생각하고 피하는 게 상책이다. 뱀 같은 교만도 소똥 같은 물체라고 생각하고 가까이하지 않는 게 최고다. 


우리 모두 소똥 같은 물체 조심해요! 


 

작가의 이전글 폭탄 같은 민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