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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Aug 14. 2023

폭탄 같은 민원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22

 


 주민센터에는 폭탄 같은 인간들이 온다. 어떤 남자는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으면서 나에게 이전 신분증을 돌려 달라고 했다. 규정상 줄 수 없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인간은 주민센터에서 다른 직원에게 분노한 헐크처럼 쌍욕을 퍼붓고 지랄을 떨었던 인간이었다. 나도 겁이 조금 났지만 원칙적으로 말했다.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으면 이전 신분증은 반납하셔야 합니다."

 비웃는 듯 놈은 실실 쪼개면서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주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가소롭다는 듯 헛소리 집어치우고 내놓으라는 태도였다. 진짜 폭탄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잠깐 고민하고 예전 신분증을 줬다. 나쁜 새끼…. 자기 아버지도 공무원이었다고 하는데 아주 공무원을 우습게 보는 놈이다. 원칙왕자인 나도 미친 헐크로 돌변할 수도 있는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었다. 휴-

 나에게는 또 다른 잊지 못할 여자가 있었다. 어느 날 주민센터 서류 발급 담당자인 나에게 민원전화가 왔다.


"반갑습니다. 땡땡 주민센터 김태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제가 땡땡 서류를 발급받으려고 하는데 뭐가 필요하죠?"


 "아, 그럼 신분증만 갖고 오시면 됩니다."


 아뿔싸! 그런데 필요한 물품을 잘못 알려준 것이었다. 도장도 갖고 와야 했는데 그 말을 안 해줬다. 잠시 후 주민센터에 어떤 여자가 도착했다. 그녀는 곧바로 내가 잘못된 정보를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현기증을 느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나에게 계속해서 똑같은 말을 했다.  


 "미리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미리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미리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내가 죄송하다고 계속 말을 하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어도 로봇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얼굴이 크고 짙은 화장을 한 노란색 머리의 여자였다. 향수냄새가 특이했는데 남자 스킨 냄새 같기도 하고 뭔가 향기롭지가 않았다. 그녀의 현기증과 두통은 그 향수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민번호가 2로 시작하는 그 여자는 계속해서 나에게 말했다.



 "미리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그리고 어지럽다면서 힘들다고 했다.


 '하, 제대로 잘못 걸렸구나.....'라는 생각에 도무지 빠져나올 방도 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앵무새처럼 말하는 여자의 말을 듣다가 결국에는 처리가 되고 그 여자는 떠났던 것 같다. 이상하게 이런 일들은 그때 상황은 기억되는데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이후로 민원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이성적인 대화가 안 되는 인간들이 있구나.’


그런데 잘못은 내가 먼저 한 것이니 그분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녀가 자신의 향수를 은은한 향으로 바꿨길 바란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도도하고 거만한 태도로 공무원들을 하대한다.  하- 무슨 판사나 검사가 죄인 대하듯, 마님이 머슴 대하듯이 말이다. 어떤 중년의 아줌마가 있었다. 그분의 태도는 뭐랄까- 1980년대 부잣집 아줌마가 동네 구멍가게를 방문해서는 일하는 점원을 하찮은 인간 대하는 듯이 나를 대했다. 차갑고 신경질적인 태도가 너무 시니컬해서 나도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가 궁금했다.


 추측건대 그녀는 문화센터에서 노래교실을 하는 강사 같았다. 그녀도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평범한 인간인 걸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구나 하고 새삼 놀랐다.


그 아줌마가 상대하는 분들은 동네를 장악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아줌마클럽이었을 것이다. 아줌마들에게 꼬투리하나 잘못 잡히면 그 지역 강사생활은 곧바로 접어야 한다. 그녀가 일하는 사진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애교와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내 앞에서 앉아서 서류를 신청할 때는 근엄하고 도도한 대기업 상무이사로 돌변했다. 과연 그녀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거만한 모습을 보고 나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 교만하지 않고 건방지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웃으며 말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절한 말투와 표정, 태도는 돈이 들지도 않으니까.


 민원얘기는 아니지만 언젠가 6급 어르신들과 중국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는데 아주 찐덕찐덕한 대화가 오갔다. 어떤 남자 계장이 나에게 말했다.

 

"탕수육을 입으로 잘라서 옆에 있는 여자 팀장 줘."


 내 옆에 여자 팀장이 앉아있어서 가뜩이나 긴장하고 있었는데 황당했다. '뭔 헛소리야?' 생각했는데 뜻밖의 여자팀장의 멘트에 나의 멘탈이 흔들렸다.


 "그럼 난 땡큐지~"


여자 팀장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평소에 조신하고 여성스러운 팀장이었다. 말도 얼마나 곱고 부드럽게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녀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놀라웠다.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나도 개인적 모습과 사회적 모습이 다르다. 그래서 그분들을 뭐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저녁식사시간이라지만 공적인 모임에서 그런 말들이 오고 갈 줄은 몰랐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떤 동장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동장은 주말에 돈을 빌려달라고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몇십만 원만 빌려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입금을 해줬다. 그런데 곧바로 갚지 않아서 돌려달라고 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빌려준 돈을 돌려받았다. 나중에 다른 직원과 얘기해 보니 그 동장이 종종 그렇게 부하직원들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이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돈을 빌리고 바로바로 갚지 않는 모습은 정말이지 없어 보였다. 뭐 급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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