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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l 21.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20

주민센터 등본발급 담당자

첫날 인사만 하고 집에 가고 다음날 민원인으로 일을 보러 간 게 아니라 직원으로 일을 하러 주민센터에 첫발을 디뎠다.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뎠을 때만큼 긴장되고 설레고 두렵지는 않았지만 전혀 모르는 세계에 진입한 만큼 떨리기는 했다. 내 업무는 주민등록등본을 발급하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리다. 주민센터에 가면 꾸벅꾸벅 졸고 있거나 옆에 사람과 수다 떨고 있는 그 자리! 우리나라 모든 공무원이 주민센터 민원대 등본발급하는 공무원 같다고 생각해서 어르신들이 세상 편한 공무원 하라고 하는 원인을 제공했던 바로 그 자리였다! 


하지만 그 자리는 나에게 만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등본 외에도 수많은 서류들을 발급해야 했는데 서류 종류가 많고 익숙지가 않아 몇 달 동안은 여러 서류를 함께 떼러 온 민원인을 한 시간 이상 앉혀둔 적도 많았다. 그때 자주 오던 여자가 있었는데 내 업무속도가 너무 느려서 내게 신경질을 내곤 했다. 몇 번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여자는 체념한 듯 볼일을 보러 갔다 올 테니 그때까지 해놓으라고 했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오지 않았다. 아마 내가 너무 느려서 다른 주민센터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처음 주민센터에서 등본 발급 일을 하면서 신기한 건 선배들이 아무도 도와주지를 않는 것이었다. 내가 서류발급을 못하고 쩔쩔매고 있고 자기들은 민원인이 없는데도 모른척했다. 처음에는 야속하고 서운하고 섭섭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서류 발급은 도와주기가 그렇다. 발급자 이름으로 서류가 나가기 때문에 발급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옆에서 콩나라 팥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등에 식은땀이 나고 창피하고 얼굴일 빨개져도 내가 책 보고 사례집 보고 법 찾아보면서 발급을 해야 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보내니 그제야 서류발급이 익숙해졌다.


 

 조금 거친 말을 잠깐 하겠다. 무엇보다 빡쳤던 것은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놈의 새끼들이 선배랍시고 까불대는 게 괴로웠다. 첫날 일을 하는데 나보다 8살 어린 새끼가 옆에서 서류를 빠르게 떼라는 것이다. 미친…. 그 새끼는 두고두고 나를 약 올렸다. 또라이 같은 새끼. 어찌나 빈정대던지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았다. 하- 3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들어온 내가 잘못이지…. 


 늦게 들어간 게 꼭 나빴던 건 아니었다. 2015년에 메르스 가 우리나라를 덮쳤는데 그때 공무원들이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았다. 그때 안 들어간 게 다행이었다 싶었지만 2020년에 코로나가 터지고 공무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기분파다. 날 기분 나쁘게 하면 조금 참다가 싸우거나 화낸다. 잘해주면 나도 잘해준다. 크리스천이 그러면 안 되는데 난 나에게 태클 걸면 싸운다. 아무튼 그놈의 무시하고 빈정대는 태도와 말투 때문에 이성의 끈을 놓을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버텼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음지도 언젠가는 양지가 되듯 그놈은 질병휴직을 낸 후 다른 기관에 합격해서 의원면직을 내고 떠났다.  


공무원이 돼서 업무 외에 부딪혔던 난관은 출장 문제였다. 관행적으로 출장을 가지 않으면서 허위출장을 달고 출장비를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제기랄 - 출장을 나가지도 않았는데 출장을 올리란다. 무수한 공무원들이 출장을 나가지도 않으면서 출장을 올리고 출장비를 받는다. 그런데 하는 말이 그 돈으로 애들 학원 보내고 용돈으로 쓰면서 보람 있게 사용한다고 말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이런 미친.... 엄밀히 말하면 허위 출장은 도둑질이다. 내 양심상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뻘 되는 사수에게 최대한 겸손하고 죄송하게 말했다.


"저.... 주임님 죄송한데요.... 저는 출장을 안 가면 출장을 안 달면 안 될까요....?"  


아니 내가 왜 죄송해야 하는데? 하지만 그때 나는 9급 서기보 시보였다. 진짜 공무원이 아니어서 잘릴 수도 있었다. 용기를 내서 출장 안 가면 출장을 안 단다고 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내 대직자 선임은 그런 나를 이해해 주며 그러라고 했다. 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었다. 나를 이해해 줬던 선임도 민원이 많거나 일처리가 잘 안 되면 쌍욕을 퍼부었다. 예전에는 등본을 손으로 써줬다고 하는데 요즘엔 서류발급이 자동화되면서 출력기 구조가 복잡해진 만큼 고장도 잦았다. 고장이 날 때마다 쉴 새 없이 욕을 해댔다. 그리고 아침마다 이상한 암호 같은 말을 해서 날 혼란케 했다. 


 "아. 오늘 아침은 쌀쌀하네." 


"네. 오늘 아침에 정말 춥더라고요."


 "아. 오늘 어째 몸이 으스스 떨리네." 


내가 대답을 했는데도 계속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나는 계속 춥다고 하길래 진짜 많이 춥나 보다 하고 민원 맞을 준비를 했다. 그렇게 내가 계속 못 알아듣고 있으면 선배는 결국 무언의 명령의 힌트를 준다.  


 "말귀를 못 알아듣네." 

 날씨가 쌀쌀하다는 말은 커피를 타오라는 말이었다. 그제야 내가 눈치를 채고 커피를 타다 주면 선배는 홀짝거리면서 커피를 마셨다. 아침마다 날씨가 쌀쌀하네, 바람이 많이 부네, 몸이 으스스하네 같은 선임의 은유적인 명령을 알파고처럼 해석해야 했다. 


 출장을 한 번도 나가지 않아 주민센터 출장명세서에 0원인 적이 많았다. 월말이 되면 전체 출장명세서에 직원들이 자신의 출장비를 확인하고 서명을 했다. 출장명세서를 확인하면 우리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25명 중에 나만 빵원인 적이 많았다. 출장비 명세서에 빵원이 적힌 내 이름 옆에 사인할 때마다 동장님에게 혼날 것 같아서 마음이 늘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새끼서무에게 물어봤다. 새끼서무는 주민센터 업무를 조율하는 총무 같은 일을 하는 서무를 도와주는 직원을 말한다.


 "동장님이 뭐라 안 하세요?"


 "포기하신 거 같아요. "


 "아.... 네...."


 튀어나온 돌 뽑힌다고 공무원 조직에서 튀는 행동은 금물이다. 더군다나 나의 행동은 추후에 감사를 받을 때 지적사항을 받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허위 출장을 달았던 직원들에게도 불안한 요소였다. 그래도 동장님이 이해를 해주신다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한 달 한 달을 출장을 안 나가고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뭔 일인지 모든 직원이 일주일에 한 번 출장을 나가야 할 일이 생겼다. 우리 동네 주무관이라는 정책이 생겼는데  자기가 맡은 동네 (우리가 아는 통)를 순찰하고 특이사항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의무적으로 우리 동네 주무관 출장을 다녀오고 보고서를 작성해서 결제를 올려야 했다. 한 직원도 빠짐없이 그래야만 했는데 민원대 직원들은 한 사람이 빠지면 다른 직원이 대신 업무를 해야 했다. 그래서 조퇴나 휴가를 쓸 때도 서로 협의해서 날짜를 맞춰가며 사용했다. 민원대에서는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핑계로 출장을 안 가고 거짓으로 보고서를 썼다. 뭐 원래부터 출장을 올리고 안 나갔으니 그들에게는 별문제가 없었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서 출장을 나갔다.


 그런데 7급 여자가 출장을 나간 나에 대해 옆에 직원에게 쑥덕쑥덕 거리며 날 욕했다. 왜 나가냐는 거다. 지는 육아시간 쓴다고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주제에! 그 여자는 몇 년 뒤에 나를 또 열받게 했는데 구청 청소행정과에 가서는 우리 동네 주민이 아침부터 음식물 쓰레기통 달라는 민원전화를 했다고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서는 전임자가 있었을 때는 이런 민원이 없었는데 내가 담당이 되니까 왜 그러냐고 신경질을 부리며 미친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때는 내가 그런 말을 받아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포근했지만 요즘 가끔 그 생각이 나면 혈압이 오르는 기분이 든다. 미친 또라이 같은 여자다! 


그 여자는 육아휴직을 쓰고 떠났는데 동장님이 요직 중에 요직자리로 발령받았을 때 나에게 전화해서는 동장님께 보낼 선물을 대신 전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태우 주임, 동장님 선물 좀 전달해 줄래요? 예쁜 짓 하니까 내가 커피 사줄게. 주민센터 밖에 있거든요."

 

"바빠서 안 되는데요. 죄송합니다."


예쁜 짓? 내가 지 애완동물이야? 아주 나를 우습게 봤던 것 같다. 심지어 나보다 나이도 어렸다! 상대하기도 싫어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내가 미쳤냐? 김영란 법 위반하게? 그리고 내가 왜 네 부탁을 들어주냐? 그때 감사실에 고발 했어야 했는데 못해서 아쉽다. 


 공무원 조직은 정년이 보장되니 작은 주민센터에 20대 초반부터 60대 초반까지 함께 일하는 시골 대가족 같은 분위기가 난다. 뭐 겉으로는 잘 지내는 척하지만, 그 안에는 계급 갈등, 세대 갈등, 직렬 갈등, 업무 갈등처럼 직원들 사이에서도 대한민국의 온갖 갈등들이 축소판으로 압축해서 나타난다. 뭐 민원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별별 민원들이 다 오고 별별 일들이 다 펼쳐진다. 정직하게 사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나만 정직하거나 고결하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닌다. 오히려 살면서 나도 너무 큰 잘못도 하고 거짓말도 했었다. 그런데 언젠가 나는 거짓말 안 하고 정직하게 일을 하고 싶어 졌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부터 내 마음이 변화된 것 같다.



 첫 출근으로 돌아와서 도무지 몇 달 동안은 서류의 발급 조건, 발급 대상, 법령 등이 외워지지 않아 퇴근 후 주민센터에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하기도 했다. 나는 미대를 졸업했다. 책 보다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던 사람에게 학문적인 글들은 독해가 아주 어려웠다.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몇 번, 몇십 번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었다. 그래도 그때가 그립다. 화나고 당황하고 겁났지만 맘 맞는 동료들과 웃고 재밌게 얘기하고 떠들던 민원대 시절이었다. 민원인 몰래 맛있는 간식들을 먹던 순간들, 같은 자리에 2년여를 앉아있으면서 정들었던 동네 사람들,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나는 1년은 다른 일을 하고 주민센터에 3년을 꽉 채우고 구청으로 떠났다. 구청에서 7급도 되고 다른 기관으로 인사교류를 해서 더 이상 주민센터나 구청에서 일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제 AI가 더욱 발전하면 아마도 민원대는 없어질 것 같다. 그럼 그 많은 공무원들은 어디로 갈까? 공무원은 헌법에 신분이 보장되어 있지만 미래에는 AI 공무원이 인간 공무원 자리를 많이 차지할 것이다. 내 생각에 미래에는 행정직 공무원들보다 기술직 공무원들의 세계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행정직 전성시대도 내리막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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