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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l 21.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19

공무원 면접 & 첫 출근 이야기 2 

합격자 발표당일, 합격 소식을 들었다. 나보다 엄마가 더 좋아할 것 같아서 아들로서 기분이 좋았다.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점심에 부모님과 함께 중화요릿집에 가서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3일 금식기도를 하러 경기도 가평에 있는 강남금식기도원에 갔다. 공무원 합격했으니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려는 마음이었다. 강남금식기도원에서 3일 금식을 몇 번 했었는데 상당히 괴롭다. 첫째 날 첫끼, 둘째끼까지는 괜찮은데 세끼부터 힘이 쭉-쭉- 빠지면서 예배시간 빼고 하루종일 계속 누워있는다. 다리는 풀리고 온몸에 기운이 1도 없어진다. 마치 중력의 강도가 높아져서 지구가 나를 더 세게 잡아당기는 것처럼, 깊은 물속을 걷는 것처럼, 연체동물 문어처럼 어기적 거리면서 버틴다. 시간이 제발 빨리 가기를 바란다. 기도원은 하루에 예배가 5번이 있다.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리며 바닥에 누워서 잠들었다가 깼다가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예배를 드린다. 


 

 사람은 약하다. 며칠 안 먹었다고 아무 일도 못하게 되니까 말이다. 한 끼, 두 끼, 세끼... 일곱 끼, 여덟 끼, 아홉 끼를 안 먹고 밤 12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금식 기도는 금식하면서 기도를 하는 게 목적인데 기도는 별로 안 하고 금식 체험을 하듯이 시간을 보낸다. 금식기도원에 들어가면 먹고 싶은 게 팝콘 튀기 듯 미친 듯이 생각난다. 과거 배부르다고 먹을 거를 남겼을 때가 생각나서 가슴을 치며 후회를 하기도 한다. 짜장면, 탕수육, 짬뽕, 냉면, 쫄면, 떡볶이, 튀김, 오므라이스, 김치볶음밥, 어묵, 치킨, 피자, 초콜릿, 햄버거, 불고기, 제육볶음, 과자, 아이스크림 등 그중에서 제일 먹고 싶은 건 요플레와 감자칩이다. 


 상큼하고 달콤하며 차갑고 부드러운 요플레가 너무 먹고 싶어 진다. 거기에 곁들어서 바삭바삭한 감자칩을 입으로 산산조각 내며 혀끝에 느껴지는 짭조름한 맛이 황홀할 정도다. 3일째 저녁시간에 매점에 가서 미리 사놓은 요플레와 감자칩을 비닐에 숨겨두었다가 철야 예배가 끝나고 12시가 넘어서 예배당 바깥쪽 신발장에 숨어서 먹을 때의 쾌감은 진짜 미-쳤-다. 그렇게 금식을 끝내고 먹을 거를 먹기 시작하면 온몸에 포도당이 쫙쫙 퍼지면서 팔, 다리가 아이언맨처럼 힘이 쫙쫙 뻗친다. 죽을 것 같던 나는 어느새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활기차게 기도원을 내려온다. 기도원에서는 너무 고통스럽지만 기도원을 내려올 때는 늘 힘이 나는 걸 보면  참 신기한 장소 같다.

 합격도 하고 기도원도 갔다 와서 끝난 줄 알았는데 마지막 관문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신체검사였다.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정식 임용이 될 수 있었다. 별로 걱정도 안 하고 건대입구역에 있는 건대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검사결과를 기다리다 병원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신체검사 합격증명서 발급이 안 된다고 했다. 특별히 아픈 데가 없어서 전혀 걱정을 안 하고 있었던 나는 깜짝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맙소사! 의사는 내 간수치 가 높아서 통과가 안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엄마는 우리 집안 남자들이 간이 약하다고 늘 걱정을 했었는데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의사는 약이나 주사를 맞아서 간수치를 내리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며칠 뒤에 다시 검사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금식기도를 하러 강남금식기도원에 갔다.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며 밤에 기도원장님께 기도를 받는데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원장님께서 일주일을 금식기도하라고 하셨다. 나는 3일도 죽을 것 같은데 일주일은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차마 그러겠다고 말씀은 못 드렸다. 그때 며칠을 있다가 기도원을 내려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검사를 했다. 다행히 정상 수치가 나왔다. 드디어 진짜 합격을 한 것이다. 할렐루야!


 하지만 그때부터 본격적인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합격을 하고 나니 공무원 생활이 걱정됐다. 공무원이 되기 전 나는 공공기관에서 무기계약직으로 4년을 일했는데 공적인 업무 처리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허위로 서명을 한다던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공무원은 공공기관보다 더 하다는 얘기를 들어서 겁이 많이 났다. 그래서 최대한 늦게 발령이 나기를 바랐다. 그렇게 기쁨과 두려움이 짬뽕처럼 섞인 체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과 동네 닭갈비집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있었는데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서울의 한 구청이었다. 면접장에서 희망근무지 1~5순위를 썼었는데 그때 쓰지도 않았고 생각지도 않았던 구청이었다. 발령 일자와 필요서류를 제출하라는 문자였다.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부모님께 발령일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근심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닭갈비를 먹었다. 아버지는 바로 내가 겁에 질렸다는 사실을 알고 안쓰러워하셨다. 어머니도 유약한 나의 심성을 알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으셨다. 나는 내게 닥칠 폭풍 같은 수많은 일들의 공포를 본능처럼 느꼈다. 


 제출해야 할 서류들을 준비해서 구청으로 갔다. 그날은 쫄지도 않고 그냥 회사 간다고 생각하고 마음 편히 갔다. 빈손으로 가기가 그래서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던킨도너츠에 들러서 도넛을 몇 개 사서 들고 갔다. 구청은 큰 회사 같았고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6층 행정지원과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직원에게 쭈뼛거리며 서류를 제출하러 왔다고 말했다. 중년의 어떤 직원에게 서류와 도넛을 주고 나았다. 그리고 며칠 뒤 2016년 1월 2일 발령장을 받으러 갔다. 100여 명의 공무원들이 강당 같은 곳에 서있었고 나는 거의 맨 뒤에 있었다.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직급, 이름, 근무지를 읽고 발령장을 하나씩 나눠줬다. 내 차례가 되었다. 김태우, 지방시설관리서기보, 땡땡 2동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동이었다. 기분이 안 좋았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동은 생각도 못해봤기 때문이다. 발령장 수여식이 끝나고 다른 사람들이 줄줄이 강당을 나가는데 나와 함께 있었던 특별채용 4명은 멀뚱멀뚱 뒤쪽에 서있었다. 그때 내 서류와 도넛을 받았던 나이 많은 아저씨 공무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 명씩 발령받은 근무지의 선배 공무원들에게 가라고 했다. 나를 기다리는 선배 공무원은 여자 둘이었다. 중년의 여성 한 명, 젊은 여자 한 명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상황파악이 안 됐다.


 택시를 타고 발령받은 근무지 주민센터로 갔다. 중년의 여성 공무원이 나에게 물었다. 


"주임님, 행정직이에요?"


"아니요. 저는 시설관리직입니다."


그분은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을 보면서 말했다.


"시설관리직이시구나. 주민센터에도 시설관리직이 필요한가?"


"그 주임님 나가서 오시나 봐요."


뭐 이런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공무원 세계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주민센터 근처에 도착해서 택시비를 내려고 했는데 중년의 여성 공무원이 무슨 말이냐며 본인이 냈다. 서울 같지 않는 시골 같은 분위기의 동네였다. 주민센터는 낡고 오래됐다. 요즘에도 이런 데가 있나 싶을 정도로 주민센터로 들어가는 입구가 약간 오르막길의 거친 시멘트 바닥이었게 아직도 기억난다. 주민센터에 들어가자 잠깐 앉아있으라고 해서 앉아있었다. 다들 뭔가 바빠 보였지만 다들 나의 등장에 신경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무뚝뚝하고 나이 많은 팀장 같은 사람이 건조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김태우 씨, 오늘은 이만 집에 들어가고 내일 출근하세요."


 나는 집에 일찍 간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주민센터를 나왔다. 계단을 걸어 나오는데 등 뒤에서 나를 보는 뜨거운 눈길들이 느껴졌다. 전혀 모르는 동네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곳을 찾지도 못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봐서 지하철 위치를 알았다. 땡땡땡역 처음 들어보는 역 이름이었다. 낯설었다. 아니 지하철을 그렇게 많이 타고 돌아다녔는데 내가 모르는 역이 있었어? 당황스러웠다. 처음 와본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갔다. 그렇게 난 공무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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