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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n 30.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16

제빵왕을 꿈꾸다!

 매일이 고통스러운 주민센터 시절에 너무- 감사하게도 제과제빵을 배웠다. 중부기술교육원에서 6개월 동안 야간에 하는 제과제빵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진짜- 행복했다. 출근해서 퇴근 때까지 지옥 같은 일과를 보내다 6시 땡 하면 주민센터를 뛰쳐나와 빵을 만들러 갔다. 처음 만져보는 빵 반죽의 촉감이 정말- 좋았다. 아기 피부처럼 탱탱하고 보드라웠다. 레시피에 맞춰서 재료를 계량하고 반죽하고 숙성하고 모양을 만들고 굽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오븐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지는 빵들의 색깔을 지켜보다 보면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오븐 밖으로 솔솔 피어오른다. 오븐 앞에 서있으면 찜질방 불가마 앞에 있는 것처럼 뜨거운 열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만든 빵을 포장해서 늦은 밤 교육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뜯어먹는 즐거움은 짜릿하기까지 했다. 특히 밤빵을 만든 날 따뜻한 밤빵 안에 들어있는 달콤한 밤맛은 눈이 저절로 감기면서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오우~!  예~! 너무 맛있어!" 

나는 제법 빵을 잘 만들어서 제빵왕 김탁구라는 별명도 생겼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제빵 기술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강박과 결벽적인 성격으로 깨끗하고 건강하고 빵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디자인을 전공했으니 빵을 멋진 모양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때부터 공무원 퇴직에 대해서도 엄마에게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싶다고는 예전부터 몇 번 말을 했었다. 특히 구청 가서 현수막을 자르다 낫으로 다리를 찍어서 무릎을 다쳤을 때 진지하게 공무원이 하기 싫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엄마는 내 마음과 생각을 반대하셨다. 당연히 엄마로서 자식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다고 하니까 걱정이 되시고 반대하셨겠지만 내 마음을 이해 못 해주는 엄마가 원망스러던 건 사실이다. 그렇게 반대만 하셨던 엄마도 내가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내 상태가 확실히 안 좋다는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는 나에게 항복했다.


"너 하고 싶은 거 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빵집을 차릴 계획을 했다. 점포도 알아보러 다니고 베이커리 디자인도 하면서 빵집 창업을 꿈꿨다. 그런데 즐겁기만 했던 제과제빵교육 기간에도 나의 강박과 결벽으로 인해 고통이 찾아왔다. 중간고사 시험을 보는데 같은 조 사람들이 서로 커닝을 하는 것이다. 나는 바로 죄책감에 시달렸고 담당 선생님에게 사실을 말했다. 재시험을 요구하고 같은 조 사람들과 말을 안 하고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잘못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나도 같은 벌을 받을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사이가 좋았던 우리 조는 철천지원수처럼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조원들은 나를 무시하고 비난했다. 직장에서도 괴로운데 제빵 교육장에서도 마음이 불편해지니 사는 게 정말 고달팠다. 집에서도 분리수거가 잘 되어 있지 않거나 가족이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두렵고 불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교회를 가도 방역수칙이 잘 지켜지지 않아 마음이 괴로웠다. 잠잘 때 빼고 하루 종일- 불안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서 제빵기능사 필기와 실기를 합격하여 자격증을 갖게 되었다. 필기는 한 번에 붙었고 실기는 두 번만에 합격했다. 첫 시험에는 모카빵이 나왔는데 엉망으로 만들어서 시험감독관 보기에 창피할 정도였다. 하얀색 조리복, 조리바지, 신발까지 새로 사서 풀세팅을 하고 갔건만 완벽한 실패를 맛보았다. 


두 번째 시험은 소보로빵이 나왔다. 소보로빵은 두 번 정도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대형사고를 쳤다. 시험을 시작하면서 작업스케줄을 메모해 놓은 종이가 바람에 날려 반죽기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반죽기는 고속으로 돌아가는 훅으로 밀가루, 계란, 설탕 같은 재료를 자동으로 반죽을 해주는 기계다. 나는 깜짝 놀라서 반죽기를 껐다. 이미 메모지와 반죽이 뒤섞여버렸다. 옆에는 감독관이 있고

나는 또 떨어지겠구나 싶었다. 우선 감독관이 어떻게 생각하든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했다. 먼저 반죽기에서 섞여버린 메모지를 꺼냈다. 다행히 반죽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아서 빼낼 수 있었는데 마치 껌뭍은 종이처럼 반죽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런데 감독관은 내 행동이 반죽상태를 확인하는 행동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특별히 점수를 차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반죽기를 돌리고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정확히 계량을 했는지 체크를 했는데 통과! 이제 숙성하고 모양을 만들고 굽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솔직히 그러면 안 되는데 다른 사람들의 작업하는 걸 참고했다. 언제 1차, 2차 숙성을 하고 굽기를 하는지 소리가 들려서 어느 정도 작업타임라인을 따라 했다. 완벽하게 내가 작업방법을 습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빵을 만들어냈다. 모양도 굽기 색깔도 괜찮게 나왔다. 11시 방향에 있던 여성은 빵이 아프리카 사람 곱슬머리처럼 웃기게 만들어졌던 게 기억난다. 오븐에서 빵을 꺼내고 냉각타공판에 빵들을 진열하고 수험번호표와 함께 제출했다.


빵을 제출하면서 감독관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다른 사람들 작업하는 소리를 듣고 약간 따라 했습니다. 문제가 된다면 불합격시켜주셔도 됩니다."


깐깐해 보이는 남자 감독관이 말했다.

"그래요? 그럼 불합격시킬까요?"

"네, 잘못한 거니까 그러셔도 됩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으니까 채점에 참고하겠습니다. 돌아가셔도 되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솔직히 작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작업소리를 참고했다는 말을 했다. 온전히 내가 갖고 있던 실력으로만 시험을 보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들어서 중간에 시험을 포기하고 시험장을 나가고 싶었다. 그래도 시험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포기하지 않고 빵을 완성해서 제출하면서 사실을 감독관에게 이야기했다.


몇 주 뒤 합격자 확인을 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기분은 좋았지만 100% 좋지는 않았다. 나의 완벽한 실력이 아니었고 다른 빵들은 아직도 잘 못 만들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돌려서 다시 시험장에 간다면 시험장을 나왔을 수 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무엇이 맞는 행동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빵을 만질 때만큼은 행복했기에 베이커리를 향한 애정은 날로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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