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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n 27.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13

버라이어티 한 호주 워킹홀리데이! 크하하하핫! 1

대학 3학년을 마치고 아무 계획 없이 교회 동생과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비행기가 호주상공을 선회하며 활주로로 착륙하는 동안 창 밖을 봤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회색의 흐린 날씨였다. 나의 호주생활을 예상이라도 하듯. 도착한 곳은 호주 브리즈번! 동생은 한국에서부터 미리 홈스테이, 영어연수 프로그램들을 세팅했었고 나는 동생을 따라간 상황이었다. 워킹홀리데이를 무작정 따라갔다는 표현이 너무 어색하지만 달리 표현할 만한 말이 없다.  


진짜 코흘리개처럼 졸졸 따라갔다.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하자 우린 홈스테이집을 찾아갔다. 나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계획이 없었다! 놀랍지 않은가? 아무 계획 없이 호주를 갔다는 사실이! 두둥! 홈스테이 집에 동생과 내가 등장했다. 아주 깔끔한 화이트 톤의 전형적인 외국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가정집이었다. 홈스테이맘은 할리우드 여배우처럼 예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서양인이었다. 원래 외국인은 친절, 상냥, 스마일 마인드가 베이스로 있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밝게 웃으면서 우리를 맞아줄 주 알았던 홈스테이 맘은 눈앞에 서있는 두 명의 동양인 청년을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그도 그럴 것이 자기는 하숙생을 한 명만 받기로 했는데 갑자기 두 명이 나타났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못하는 두 동양인은 멀뚱멀뚱 서서는 어색하게 웃으며 제대로 설명도 안 하고 있다. 내 계획은 동생이 예약한 홈스테이집을 우리나라 시골 친척집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며칠 묶는 것을 허락받은 후 그때부터 대충 뭘 할지 생각할 예정이었다. 아니면 그냥 하숙비 드릴 테니까 같이 지내게 해달라고 할 참이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우린 전-혀 하지 못했다.

계속 "아이... 엠... 히즈... 브라더.... 위 컴...." 로봇이 돼버린 우리였다. 


동생이 어설픈 영어로 겨우 설명을 했다. 하지만 홈스테이맘은 플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형적인 ISTJ 같았다. 바로 정색하며 NO!라고 했고 나는 곧바로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동생은 이민가방 같은 커다란 짐과 홈스테이맘과 함께 거실에 서서 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내가 짐을 들고 현관문을 나가자 그제야 처음으로 홈스테이맘은 밝게 웃었다. 


'그래, 저래야 외쿡인이지! 보기 좋잖아!'


나는 밝게 웃으면서 이국적인 스타일의 단독주택을 나의 조촐한 케리어를 끌고 나왔다. 그때가 되서야 드디어나는 나에게 닥친 현실을 실감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으로 이 멀리 타국땅까지 온 거지?? 잠 잘 곳, 먹을 곳, 생활할 곳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잖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멈춰있던 머리를 초스피도로 굴리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갈 곳이 없었다. 여기가 브리즈번이란 사실 밖에 몰랐다. 그때 생각했다!


'그래.... 난 호주에 있어!! 호주.... 호주....! 그래! 호주 하면 시드니지!! 시드니를 가자! 렛츠고!'

그때 시드니를 처음 생각했고 시드니를 가기로 결심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갑자기 준비한 것도 아니다. 동생과 함께 신체검사, 비행기 티켓팅, 비자 등 6개월 이상 준비했었다. 그런데 호주에 도착해서야 어디 갈지 정한 것이다. 아무리 나지만 대책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드니를 가게 된 짜릿한 이야기는 두 번째 스토리에 담을 예정이다.  


나는 시드니에 정착했고 워홀답게 요트장 새벽 청소, 경기장 관람석 청소를 하며 지냈다. 야구장 관람석 비둘기 똥을 닦고 백팩형 진공청소기를 들쳐 매고 카펫 청소를 하니 한국에서 일하는 동남아 노동자가 된 것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국행 리턴티켓 일정을 앞당겨 변경했다가 조금 더 참기로 하고 취소했다. 또다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일정을 앞당겼다. 마음이 괜찮아져서 취소하려니 취소는 1회밖에 안된다고 했다. 앞당긴 일정으로 한국에 가야 했다. 친구들에게 큰 소리 뻥뻥 치고 호주행 비행기를 탔던 나는 가출한 지 반나절만에 배고파서 집으로 돌아간 철부지 사춘기 아이 같아서 자존심이 상하고 창피했다.


묘수를 찾아야 했다! 

한국행 비행기는 일본경유를 한 번 했는데 대학 여자 후배가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후배의 주소를 알고 있던 나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는 경유 항공편을 포기하고 일본여행을 하기로 했다. 날아가는 비행기 PLANE에서 플랜 PLAN이 없던 나는 4시간 동안 간절히 기도 PRAY 했다. 


"하나님, 저를 지켜주세요."


일본에 도착한 나는 무비자 국가라 입국이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공항입국사무소에서 입국심사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처리가 잘 되어 공항을 나와 버스를 타고 공항철도역 같은 곳에 내렸다. 일본 여행은 처음이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일본은 영어가 병기되어 있지 않고 모조리 일본어로만 표기되어 있었다. 대중교통에서 조차! 일본어를 전혀 몰랐던 나는 혼란스러웠다. 철도직원에게 후배 주소가 적혀있는 꾸깃한 종이메모지를 보여주고 어렵게 철도티켓을 발권해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좌석에 앉아 몸을 웅크린 체 불안한 마음으로 기차를 두리번거렸다. 얼마 후에 기차표를 점검하는 일본철도청 직원이 다가왔다. 내 표를 확인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돈을 더 내라고 하는 것 같아 엔화 동전 여러 개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몇 개를 가져갔다. 고개를 꾸벅했다. 중간에 내리라고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한참을 달려 후배의 집과 가깝다는 역에 도착하고 기차에서 내렸다. 일본은 깔끔하고 깨끗한 나라가 아니었다. 음산하고 침울한 스릴러 영화의 세트장 같았다. 현상수배범 포스터가 무섭게 붙어 있었고 동네 곳곳에 공동묘지가 있어서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다시 한번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후배의 주소가 적힌 구겨진 종이쪽지를 보여줬다. 어설픈 영어와 함께. 중년의 남자가 권위적인 태도로 위치를 가르쳐줬다. 후배가 산다는 주소에 도착했다. 후배가 살 고 있다는 집은 일본 하면 떠오르는 아담한 단독주택이 아니라 허름한 기숙사였다. 입구로 들어가니 일본 할머니가 주방에서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 일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 뒤에서 인기척 소리를 내니 돌아보셨고 나는 후배의 주소 끝자락에 쓰여 있는 101호를 보여줬다.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고 나는 고개를 돌려 복도 같은 통로를 확인했다. 


숨바꼭질을 하듯 긴장된 발걸음으로 101호를 향했다. 후배한테 온다는 말도 없었다. 후배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었다. 무계획 무대책 무대뽀 정신으로 맨땅에 헤딩하며 결승점 앞까지 오긴 왔다.  101호를 노크했다. 똑똑. 대답이 없었다. 불안해졌다. 다시 똑똑. 내 숨소리만 들릴 뿐. 멀리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일본어 소리와 할머니의 달그락 소리와 함께. 앞이 깜깜해졌다. 계획 없는 자의 최후는 일본노숙자가 되는 비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어떻게 해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가 노크한 곳이 101호가 아니라 102호였다. 후배의 기숙사는 101호! 주위를 둘러보다 뒤를 돌아보니 101호 표지판이 보였다. 꺼져가는 촛불의 불꽃이 힘차게 다시 살아나 환한 빛을 밝혔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노크하는 주먹은 종을 울리는 추가되어 101호 문을 때린다. 

똑똑! 잠시 기다린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 다시 촛불이 꺼지려고 한다. 불안함을 담아 똑똑. 적막이 흐른다.


 '아.... 나는 이제 어떻게 하지?'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문 채 마지막으로 노크한다.


똑똑!


그때였다. 태평양 한가운데 타이타닉과 함께 침몰하는 나에게 구조헬기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 구.. 야....?" 


 문 뒤에서 잠에서 덜 깬 한국여자의 허스키한 목소리. 그때 들렸던 후배의 목소리는 9회 말 2 아웃 2 스트라이크 3 볼 3점 뒤지고 있는 만루 상황에서 터진 짜릿한 역전만루홈런포 같았다! 할렐루야! 나는 감격에 젖어 후배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후배는 귀찮은 듯 궁시렁대며 문 쪽으로 다가왔다. 101호의 문이 천천히 열리자 나는 산삼을 캔 심마니의 얼굴로 후배를 바라봤고 후배는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져서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봤다.


 "태우오빠...? 뭐예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일본에 놀러 왔어.." 


 후배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우선 들어오라고 했다. 드디어 구조헬기에 탑승한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얼마동안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하하. 이렇게 염치가 없을 수가! 착한 우리 후배는 아무 계획 없이 찾아온 나를 알뜰히도 보살펴주었다. 나를 위해 기숙사 방을 내주고 후배는 친구집에 가서 잠을 잤다. 그런데 그때 후배가 나에게 맛있는 걸 사줬는지 기억이 안 난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되지만 기회가 되면 맛있는 걸 한 번 사주고 싶다.  


 여기서 엄청나게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다. 후배가 1년여의 일본유학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오전 수업을 빼먹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단 한 번도! 그날 처음으로 늦잠 자서 오전 수업에 못 갔다고 했다. 자기도 너무 신기하다고 했고 나도 정말이지 신기했다. 만약 늦잠을 자지 않고 학원에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기도 싫다. 나는 글자도 모르는 음산한 일본땅에서 삼각김밥을 먹고 길 잃은 양이 되어 거리를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를 돌아보면 일본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4시간 동안 간절히 기도했던 나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셨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계획도 대책도 없는 사람을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여행이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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