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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n 28.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14

폭망 바디프로필 도전기

 몇 년 전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꽤 거금의 돈을 들여 바디 프로필 사진작가로 유명한 강남의 바프스튜디오에 예약을 했다. 내가 바디 프로필을 찍었다고 하니 인스타 같은데 등장하는 몸짱이냐라고 묻는 다면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비싼 돈 버려가며 바디 프로필 스튜디오를 예약했을까? 바디 프로필 촬영을 예약하고 날짜를 정하면 그날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다이어트와 운동을 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시험기간에도 공부를 안 하고 시험지를 받는 순간부터 집중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던가? 날짜가 다가오지만 난 여전히 운동도 열심히 안 하고 살도 안 뺐다. 과자, 치킨, 피자, 떡볶이, 아이스크림, 햄버거를 언제나 ENJOY 했다. 배가 불룩 나오고 통통하고 동글동글한 얼굴을 찍는 것은 바프사진이 아니다. 반지의 제왕처럼 금반지들을 열손가락에 가지런히 끼고 옷까지 벗은 채 멀뚱멀뚱한 표정연기까지 하면 엽기적인 어른 돌 사진을 찍을 것 같았다.  어쩌면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 나왔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부득이하게도 도저히 바프를 찍을 수 없기에 날짜를 한번 연장했다. 이제 진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하지만 모두의 바람대로 연장한 기간 동안에도 난 다이어트를 안 했다. 스튜디오 홈페이지에서 연장은 한 번 밖에 할 수 없다는 경고문을 봤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고 사진작가에게 전화를 했다. 



"저 연장 한 번 더 할 수 있을까요?"

"아. 안됩니다. 홈페이지에 공지한 대로 연장은 한 번밖에 안되십니다."

"아.... 네....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네. 그럼 촬영 당일날 뵙겠습니다."


망연자실한 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드디어 디데이가 왔고 이미 바디 프로필은 물 건너갔고 정장 프로필 사진이나 멋있게 찍어야겠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지하철을 나와서 언덕을 걸으며 건물유리면에 비친 정장 입은 모습을 봤다. 솔직히 별로- 멋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사진작가의 예술적 감각으로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설레었다. 더군다나 사진작가들은 포토샵의 귀재들이 아니던가! 드디어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먼저 작가님은 내 얼굴이 부었다고 했다. 


 '얼굴 부기도 신경 써야 하는구나.....'


명색이 바프찍는다고 아침도 굶었건만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라 얼굴은 부은 건 맞았다. 푸석푸석하고 밥도 안 먹어서 생기도 없었다. 밥을 안 먹으면 기본적으로 신경질이 나고 기운이 없다. 그러니 웃는 얼굴도 잘 안 나온다. 그리고 그날 전신사진은 찍지도 못했다. 전신사진을 찍으려면 새 구두를 챙겨 왔어야 했는데 새 구두를 챙겨 오지 않아 상반신만 촬영을 했다.


나는 사전조사를 하고 갔어야 했다. 작가님은 여러 포즈를 취해 보라고 했다. 나는 기억 속 저 멀리 정장 의류 브랜드의 모델 이미지를 어설프게 따라 했다. 팔목 단추를 잠구는 시늉, 시계를 보거나 만지는 포즈를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포즈도 구상을 하고 갔어야 했다!


작가님은 바디 프로필계에서 유명한 분이셔서 준비가 전혀-안되어 있는 모델을 촬영하며 본인도 열의가 급격하게 식으신 듯 촬영은 금세 끝나버렸다. 나는 어색한 웃음과 인사 후 썰렁한 마음과 창피함을 느끼며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나 자신이 진심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몇십만 원을 날린 것이다. 나는 왜 이럴까. 우울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갔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침을 안 먹어서 허기도 지고 더 우울했다.


드디어! 몇 주 뒤에 메일로 사진들이 왔다! 그래도 좋은 조명아래서 좋은 카메라로 좋은 작가가 찍었으니까 뭐라도 건지겠다 싶은 생각에 사진 파일을 열려고 하니 설레었다. 모델은 아니지만 모델 느낌이라도 나오길 바라고 기대했지만 나의 바람은 무참히 부서졌다.!



 사진은 100% 내 모습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생 보습학원 전단지에 나올 법한 퉁퉁한 국어선생님, 구의원 홍보책자에 나올법한 중년의 아저씨 정치인,  헬스클럽 전단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다이어트 BEFORE & AFTER 사진의 BEFORE 사진의 주인공이었다. 부은 얼굴로 어색하게 웃으며 시계와 옷소매를 만지작 거리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이고 창피했다. 사진작가가 사진들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을지 상상하니 부끄러웠다. 아마 친구들에게도 보여주며 깔깔 대고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혹여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들에게 나의 바프사진의 존재가 발각될까 봐 한 두 번 몰래 보고 컴퓨터 어딘가 폴더에 숨겨두었다. 지금은 그 사진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디 프로필 폭망 사건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로 기억 저 멀리 묻어두고 있었다.


그 후로 몇 년 뒤 2021년이 돼서 다시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사전조사를 통해 지난번에 대실패를 만회하리라는 마음속 뜨거울 불길이 지펴지고 있었다. 실패를 통해 좌절하면 마이너스지만 실패를 통해 하나라도 배운다면 값진 플러스가 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바디 프로필 예약을 하고 날짜를 계산해서 하루에 해야 할 운동과 먹어야 할 식단을 계획하고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 의상, 포즈까지 2021 바디프로필 촬영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하려고 했다. 인스타와 인터넷에 바디 프로필 사진들을 열심히 보고 동기부여를 받으며 연구하려고 했다. 나의 에너지원 중에는 경쟁심이라는 연료가 화력이 꽤 좋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봤던 잡지에서 '전설적인 몸을 만들다.'라는 글이 있었는데 나도 한번 전설적인 몸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역시 2021년 바프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날아갔다. 작심삼일도 아니고 다짐하자마자 다음날 까먹었다. 나는 언제 바프사진을 찍어 볼 수 있을까? 언제 전설적인 몸을 만들어 볼 수 있을까? 실패를 디딤돌 삼아 바디 프로필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운동해야겠다! 성공해서 꼭 카톡 프로필, 인스타에 올리리라!


하지만 나는 오늘도 밤빵, 호두파이, 초콜릿, 마들렌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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