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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Nov 01. 2023

헬멧 도둑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 스몰토크 9

자전거 헬멧을 도둑맞았다. 


지난주 토요일 저녁 6시쯤에 광나루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자전거 보관소에 자전거를 세워둘 때 자전거 앞쪽에 달린 철제바구니에 헬멧을 던져 놓았었다. 다음날 주일 교회 예배를 마치고 광나루역에 가서 자전거를 끌고 몇 걸음 걸으니 뭔가 허전했다. 처음엔 없어진 지도 몰랐다. 검정 바구니에는 흐린 노랑의 작은 낙엽 몇 장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나의 블랙 무광 헬멧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헬멧이 트랜스포머처럼 하이테크 한 기계음 소리를 내며 로봇처럼 변신하는 기능이 있지 않고서야 도둑이 헬멧을 훔쳐간 것이었다. 아마도 지하철역 출구 여러 곳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을 텐데, 무슨 배짱으로 그랬을까? 간도 큰 도둑이다.  


우리나라에는 꼼꼼한 거미가 만든 거미줄처럼 CCTV가 아주 촘촘하게 있다고 한다. 그래선지 요즘에는 로켓배송이니 새벽배송이니 하는 초스피드 택배시스템에서 보내준 택배들이 밤새도록 집 앞, 가게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어도 훔쳐가거나 잘 없어지지 않는다. 숨어있는 CCTV가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잠도 안 자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헬멧 브랜드는 유명한 샤오미다. 샤오미는 스마트폰에서 자전거헬멧까지 별에 별 걸 다 만든다. 역시 대륙의 브랜드는 버라이어티 하다. 심플하고 실용적인 아이디어 제품을 만드는 샤오미답게 뒤통수 아래쪽에 후미등 기능이 있어서 전원 버튼을 누르면 붉은 불빛이 번쩍이게 할 수 있다. 후미등은 기다란 모양에 LED 램프가 7개 정도 박혀 있었고 여러 타입의 불빛 스타일을 제공했다. 물론 정기적으로 충전도 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기능과 디자인이 맘에 들었던 헬멧이었다.  


사진 출처 : 이미지제공 | aliexpress


몇 년 전 거대한 러버덕이 잠실 석촌호수에 둥둥 떠서 순식간에 핫플레이스가 된 적이 있었다.  

레몬사탕처럼 상큼하고 앙증맞은 노란색 러버덕이 자이언트 사이즈가 되어 나타나선 석촌호수를 접수해 버렸었다. 검고 어두운 밤하늘과 호수 물결 위에 떠있는 노랑 새끼오리 모양의 대형 풍선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는 게 국민유행이었다.   


호수에 뜬 러버덕이 뜨기 전에 나는 오래전부터 러버덕을 좋아했었다. 노란색을 좋아하고 큐트 한 걸 좋아하고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좋아하는데 바로 러버덕이 그랬다. 어느 날 당근 마켓에서 휴대폰 그립톡을 찾아보다가 러버덕 그립톡을 보고 바로 구매했다. 어떤 사람에게 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생각보다 사이즈가 커서 사용을 안 하고 있다가 나의 샤오미 검정 헬멧 뒤통수 위쪽에 붙였다.


귀여운 러버덕이 뒤뚱거리며 뒤통수에 매달려있으니 괜스레 유머러스해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뒤에 있는 사람들이 자전거 헬멧에 붙어있는 러버덕을 보고 마치 석촌호수에 떠있던 러버덕처럼 좋아하고 재밌어해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러버덕 그립톡을 자전거 헬멧에 붙인 건 꽤 센스 있는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 디자인 정글 에디터 박유리(yrpark@jungle.co.kr)


보통 헬멧이 아니었다. 세련되게 반짝반짝 빛나는 붉은색의 후미등 기능과 러버덕 튜닝까지 한 나만의 헬멧이었다. 나쁜 사람! 왜 내 헬멧을 가져갔을까? 나는 엄마에 말했다.


"누가 자전거 헬멧 훔쳐갔어!"
 

엄마는 집 앞에 세워둔 자전거 헬멧을 도둑맞은 줄 알고 깜짝 놀라 했다. 동네에 도둑놈이 살고 있다는 건 놀랄 일이니까.


"아니, 아니, 광나루역에 세워놨는데 없어졌어."


"뭐? 그건 '내 헬멧 가져갑쇼!' 와 똑같은 거야!"


엄마는 내 행동이 헬멧을 가져가라고 하는 행동과 똑같다고 했다. 도대체 왜? 엄마말대로라면 헬멧도 따로 자금장치를 달아야 했다.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그랬어야 했다. 그래도 그렇지 요즘 세상에 바구니에 넣어놓은 헬멧을 훔쳐가다니.... 허탈하고 짜증이 나고 답답했다.


나는 자전거를 탈 때 웬만하면 헬멧을 꼭 쓴다. 헬멧을 안 쓰고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다가 사고를 당한 이야기를 몇 번 들었기 때문이다. 하반신 마비처럼 치명적인 사건사고를 듣고 나서는 헬멧 쓰기를 잊지 않는다. 최근에 돼서야 킥보드나 자전거 같은 이동수단을 탈 때 헬멧착용의 의무화된 건 아주 잘 된 거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헬멧을 쓰고 타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마음에 드는 헬멧을 사려면 당근마켓을 뒤져야 한다. 아직 마음에 쏙 드는 헬멧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자전거는 타야 하기에 집에 쳐 밖혀 있는 공사장 안전모를 쓰고 탄다.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쓰는 하얀색 안전모다. 세상에 나 혼자 산다면 안전모를 쓰든 수박껍데기를 뒤집어쓰든 상관없겠지만 투박한 공사장 안전모를 쓰고 자전거를 타면 창피한 기분이 든다. 머리도 커 보이고 특이한 걸 넘어서 경박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래도 머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우선이니 참고 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꾸며봤지만 ….. 별로 멋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공사장 안전모를 자전거 헬멧으로 쓰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없을 것 같았다.


 '독특한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안전모를 쓰고 타는 건 멋져 보이는 일은 아니다. 멋진 남자연예인이 누가 있을까? 정우성, 차은우, 하정우라도 안전모를 쓰고 자전거를 타면 안 멋있을 것 같다. 내 이름은 김태우, 그러고 보니 멋진 사람 이름에는 '우'자가 들어가는 걸 알게 되었다. 훗훗훗. 사람들이 나를 조롱하는 눈빛, 영어단어 ridiculous가 생각났다. 바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도 숫기를 기르는데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숫기가 없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아무도 안 훔쳐갈 것 같았다. 누가 공사장 안전모를 훔쳐가겠는가? 하하하. 생각보다 부자들은 스트레스가 많다고 한다. 일단 돈이 많아지면 도둑이 못 들어오게 담을 높이 세우고 쇠창살을 꽂는다고 한다. 반대로, 돈이 없으면 돈 때문에 협박당할 일도 없고, 단물 빨아먹으려고 달라붙는 사람들도 없어서 편한 부분이 있다고들 한다.


내가 만약 몇 십만 원짜리 헬멧을 쓴다면 헬멧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전용자물쇠도 사고 어디 가면 들고 다니고 애지중지 아끼겠지만 공사장 안전모는 대충 쓰고 바구니에 던져버리면 그만이다. 누군가 훔쳐간다 해도 마음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5천 원도 안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일은 양면적인 것 같다. 완벽한 명도 없고 완전한 암도 없다.


궁금한 건 내 헬멧을 가져간 도둑이 러버덕을 어떻게 했을 지다. 떼어냈을까? 아니면 아직도 붙여놓았을까? 훔친 헬멧을 자기가 쓰려고 했을까? 러버덕을 떼서 스마트폰 그립톡으로 쓰고 있을까? 내 헬멧을 도로 찾았으면 좋겠다. 에잇!


사실 갖고 싶은 헬멧이 있기는 하다 접이식 헬멧인데, 신기하게도 헬멧이 접히면서 가방에 들어갈만한 두께가 된다. 디자인도 심플하고 세련됐다. 접이식 헬멧을 사면 무방비 상태로 바구니에 담아놓지 않을 수 있고 가방에 넣어서 편하게 갖고 다닐 수 있으니 좋을 것 같다.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로서 어서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

사진 출처  : https://smartstore.naver.com/closca 클로스카 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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