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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Nov 03. 2023

헬멧 컴백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 스몰토크 11

레모네이드 같은 러버덕 커스텀 헬멧을 찾은 사건의 전말은 이랬습니다. 어제 3시 30분경 여의도에 볼 일이 있어서 부랴부랴 마을버스를 타고 광나루역 정거장에서 내려 지하철로 쟁쟁 걸음으로 걸어갔습니다. 지하철 입구 앞쪽에 제가 자전거를 세워두었던 자전거 거치대 쪽을 슬쩍 보았습니다. 여러 대의 자전거들이 줄지어 파킹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 유난히 짙은 핑크색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일하게 그 자전거 바구니에만 헬멧이 담아져 있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검은색 둥그런 물체였죠.  



'설마?'


저는 설레는 맘으로 얼른 그 자전거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역시 바구니에는 저의 헬멧과 똑 닮은 헬멧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죠. 똑같은 제품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헬멧을 들어 자세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하하. 뒤집어보니 노란색 러버덕이 붙어있더군요. 제 헬멧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 나와 똑같은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잖습니까? 아니면 자기 헬멧도 아닌데 자기 거라고 우기면서 저를 도둑놈으로 몰아세우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보니 러버덕 안쪽에 제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적혀있더군요. 저는 제가 써놓은지도 몰랐습니다.





제 손때가 뭍은 물건이 다시 제 손안에 들어왔습니다. 헬멧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촉감과 라이트 한 무게감이 마치 제 방에 들어가면 맡을 수 있는 저만의 냄새처럼 정겹기까지 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잃어버렸던 퍼즐조각을 찾은 듯한 완성감마저 들었습니다. 살면서 늘 느끼는 '무언가 필요하다.'는 공허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충만함은 아니지만 필요감이 없다는 상태는 맥시멈 라이프를 강요하는 세상에선 느끼기 드문 좋은 마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짐정리를 하면서 제 헬멧을 잠깐 옆에 있던 자전거에 두었고 그걸 깜빡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제가 몇 번이나 확인을 했었을 때는 없었거든요. 아마도 그 자전거 주인은 그냥 제 헬멧을 자전거 바구니에 놓고 며칠 타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제 헬멧을 착용하셨을까요? 헬멧 안쪽 체취를 맡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오래된 분홍색 바구니 자전거를 봐서 중년의 아주머니일 거라고 추측해 봅니다. 참으로 쿨하시고 덤덤하신 분 같습니다. 다시 헬멧이 사라진 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아무튼 아주머니의 파킹 시간과 저의 이동시간이 겹치면서 행운의 타이밍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죠?




다시 찾을 확률이 0.0001%라고 생각했던 헬멧을 찾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솔직히 별로 중요하게 생각도 안 하고 바구니에 던져 놓고 다녔던 헬멧이었는데 다시 찾으니 더 멋져 보였습니다. 사람 마음이 신기하죠. 갑자기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누군가 훔쳐간 거라고 생각해서 있지도 않은 범인을 만들어냈던 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요즘 거짓뉴스를 없애려고 정부에서 혈안인데, 전직공무원이 거짓뉴스를 퍼트렸네요. 벙벙한 공사장 안전모가 창피해서 당근마켓을 며칠 뒤졌는데 쓸데없는 지출을 하지 않게 되어 다행입니다. 앞으로 자전거 탈 때는 헬멧을 더 잘 챙겨 쓰고 헬멧을 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헬멧 잘 챙겨 쓰고 안전한 라이딩 하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 헬멧디오스.


광나루역 안에는 꽃집이 있습니다. 어제 꽃이 예뻐서 찍은 사진도 같이 올려드릴게요. 꽃처럼 예쁜 주말 보내세요. 다시 - 꽃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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