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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Nov 06. 2023

버려진 우산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 스몰토크 12

우산이 뒤집어진 체 차도 중앙에 버려졌다. 놀이터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두꺼비집 놀이를 하면서 봉긋하게 쌓아 올린 모래산 중앙에 막대기를 꽂아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높지 않은 모양, 철로 된 우산살이 돔경기장을 연상시켰다. 피뢰침처럼 손잡이가 우뚝하게 솟아있었다. 차가 다니는 도로 중앙에 저런 물체가 있다는 게 특이했다.



왜 버려졌을까? 우산을 쓰고 가다가 바람에 뒤집어진 우산을 냅다 내동댕이 친 걸까? 우산이 펴진 체 버려졌다는 건 잃어버린 게 아니라 버린 거다. 가까이 가서 우산을 들어보았더니 창살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몇 가지 상황을 추리해 본다.


어떤 학생이 급하게 등교를 하다가 백팩에 꽂아두었던 우산이 빠지면서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강력한 바람이 불어서 우산을 펴졌고 우산이 뒤집어지면서 하늘에서 720도를 회전하고 체조선수처럼 바닥에 사뿐히 착지한 걸까?


아니면 우산 모양의 UFO일 수도 있겠다. 밤새도록 지구를 정탐하다 연료가 떨어져서 불시착했던 것이다. 외계인들은 급하게 탈출하고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잡혀 먹인 것이다. 이것도 가능성이 별로다.


우산 디자인으로 봐서 젊은 여성은 아닐 것 같다. 그들은 우산도 아무거나 쓰지 않는다. 귀엽거나 예쁘거나 세련되거나 비싸거나 아무튼 대충 쓰지 않는다. 학생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계속 실린다. 여학생이 우산을 쓰고 길을 걷는데 우산이 뒤집히면서 너무 창피해서 그냥 던져버리고 도망을 친 걸까?


어떻게 버려졌든 잃어버려졌든 차도 중앙에 세워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우산을 들어서 접었다. 잘 접혔고 아직은 쓸만했다. 차도에 널브러져 있는 술 취한 노숙자를 끌고 도로 옆으로 옮겨다 준 것처럼 우산을 곱게 접어서 아차산역 3번 출구 붕어빵 가게 옆에 얌전하게 뉘어주고 왔다.


버려졌다는 건 슬픈 일이다. 하지만 우린 버려지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를 해야 하고 인생은 채워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있다. 그래도 버려진다는 건 마음이 아픈 일이다. 쓸모가 없다는 거니까. 세상에 쓸모없는 게 없다고 하고 모든 건 존재의 이유가 있는 거지만 버려지는 일은 계속된다.  


내가 그 우산을 보고 마음이 간 건 아마도 사람들이 보이는 데서 버려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출근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모습에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우리 동네에 2평 남짓한 서점이 생겼다. 책이 100권도 안 되는 것 같다. 정말 조그마한 서점이다.  그 서점 사장과 잠깐 대화를 나눴고 책을 추천받았다. 책 제목은 기억이 안 난다. 내용은 이랬다. 물건을 함부로 사지 않는다는 것. 물건을 사려면 오래 쓸 생각으로 산다는 얘기다. 그 책을 읽고 서점사장도 서점을 차렸다는 데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책을 쓴 작가의 말은 맞는 얘기다.


나는 다이소가 인기가 많은 걸 경계한다. 왜냐하면 싸고 저렴한 물건에 익숙해지는 게 과연 좋은 걸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같은 시계라도 다이소는 5천 원이지만 세상에는 5만 원부터 5,000만 원이 넘는 시계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높은 퀄리티의 물건을 보고 사용해 보는 게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레임이라는 심리학책을 쓴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도 물건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산은 그렇게 버려지면 안 되는 것이다. 우산뿐만 아니라 우리가 쉽고 가볍게 버릴 수 있는 물건을 사면 안된다. 한 번 산 물건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아끼고 잘 사용해야 한다. 세상이 경박해지는 건 이런 소비습관 때문 같다. 경박한 내 모습을 버리고 깊이 있고 진지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지인이 오늘 맛있는 소금빵을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빵 하나 먹는 것도 경박하게 먹으면 안 된다. 왕과 거지의 차이는 먹는 것과 잠자는 태도의 차이라는  어마마마의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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