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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Nov 07. 2023

오락실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 스몰토크 13

나의 친할아버지는 서울 신당동에서 작은 오락실을 하셨다. 명절에 할아버지가 계신 오락실로 가면 할아버지는 한 손으로 동전을 한 움큼 집어서 나에게 쥐어 주셨다. 어른 손으로 한 움큼이니까 나는 두 손을 모아서 한가득 받았다. 그런데 나는 오락을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은 게임을 아예 하지 않는다. 남자들의 국민게임이라고 하는 그 흔한 스타크래프트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할아버지 오락실에서도 게임을 몇 판 안 했다. 열판도 안 했던 것 같다. 그럼 남은 수많은 동전을 주머니에 챙겨서 용돈으로 썼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오락실이 있었다. 물론 오락실은 모범생들보다는 놀기 좋아하는 학생들, 껄렁껄렁한 동네 형아들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오락실에도 꼬장을 피우던 건달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큰삼촌이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고 할아버지가 오락실 정문에 아들이 서울대 법대를 들어갔다고 붙여 놓으셨더니 이후로 깡패 같은 사람들이 오락실에 다신 오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 파워가 굉장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아주 무서웠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나의 아버지를 혼낼 때는 방에 들어가서 불을 끄고 어두운 방에서 몽둥이로 물씬 두들겨 때렸다고 한다. 아직도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그런데 난 한 번도 할아버지의 무서운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오락실에 놀러 가면 두 손 가득 동전을 가득 채워주시는 모습이 기억의 대부분이다.


창피한 기억이 있는데 내가 미대입시를 준비하던 고3 때였다. 당시 수능 성적이 백분위 7%로 꽤 잘 봤는데도 미술 실기를 잘 준비하지 못해 결국 모든 대학교에 떨어지고 경기도에 있는 전문대학 계원예술대학에 겨우 붙었다. 학교는 경기도 인덕원에 있었고 집에서 상당히 멀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때라 내가 어떤 상황인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설날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나의 입시 결과를 물어봤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계원대학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경원대냐고 다시 물어봤다. 계원대를 못 알아들으신 거다. 나는 계원예술대학이라고 겨우 말했다. 순간 방 안이 적막으로 가득 차고 이후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모두가 어색해하던 순간이었다.


삼촌은 서울대 법대를 들어갔는데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지방 전문대에 붙은 것이다. 많이 창피했다. 우리 부모님들은 얼마나 더 창피하셨을까? 나는 재수를 해서 겨우 지방 국립대에 붙었고 삼촌은 사법고시를 붙었다. 삼촌은 지금 고등법원 판사가 되었고나는 백수가 되었다. 삼촌은 고3때 맹장수술받고 깨어나자마자 책을 봤다고 한다. 나는 자고 일어나면 스마트폰을 본다. 삼촌은 분명히 지금도 언제나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일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빈둥거리면서 시간을 낭비했다.



 할아버지가 어딜 가시면 삼촌이 오락실을 지킬 때가 있었다. 1평도 안 되는 아주 자그마한 공간에 안경을 끼고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삼촌의 모습이 기억나는 듯하다. 생각해 보니 동네 깡패 같은 형아들이 삼촌에게 동전을 빼앗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아니면 건달들이 할아버지에게 집적거리는 걸 멀리서 숨죽여 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삼촌은 가족을 지키는 일이 열심히 공부하는 거라고 마음을 굳게 잡지 않았을까.


 멍청하게 힘도 없는데 건달들에게 달려들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바보 같은 행동은 안 한 것이다.

내가 지금 뭘 해야 가장 좋은 건지 아는 게 지혜고 그걸 해내는 게 용기고 그걸 계속하는 게 끈기 같다. 나는 지혜로운 오락실 오너의 자손인가? 아니면 대책 없이 미련한 트러블 메이커인가? 나도 지혜롭고 용기 있기 끈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은 왠지 할아버지의 오락실이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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