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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Nov 08. 2023

편의점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 스몰토크 15

 내가 다니던 대학은 춘천에 캠퍼스가 있었다. 1학년때는 학교를 안 가서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먹었고 2학년, 3학년때는 자취를 했었고 중간중간 통학도 했었다. 버스보다 기차를 탔는데 경춘선에는 언제나 MT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춘선은 참 아름답다. 대성리역, 가평역, 청평역, 남이섬, 강촌역, 남춘천역, 김유정역, 춘천역까지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서 주옥같은 역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있다. 춘천은 이름처럼 낭만과 애정이 가득한 곳이다.




대학 4학년 2학기때 나는 학교 전공실에서 살았다. 전공실에서 살았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 예술대학은 그게 가능하다. 왜냐면 예대학생들은 허구한 날 전공실에서 밤을 세기 때문이다. 작품 과제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예술작품은 완성이라는 개념이 애매하다. 끝이 없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디자인이 예술은 아니지만 디자인과 학생들도 예술가의 심장을 갖고 있다. 디자인과가 있었던 문화예술대학 2 건물에는 미술학과, 무용학과, 디자인과가 함께 있었고 밤이고 낮이고 언제나 불이 환하게 켜있었다.


최고 짬밥을 자랑하는 공업디자인 4학년 전공실 한쪽 구석에는 더블침대 매트리스가 있었고 중간에는 가정집 거실처럼 소파도 있었다. 칠판 왼쪽 모퉁이에는 텔레비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본적으로 밤 12시가 넘어도 내가 있던 전공실뿐만 아니라 다른 교실에도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건물에 혼자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에 무섭지도 않았다. 내가 전공실 매트리스에 누워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여전히 여기저기 학생들이 있었다. 소파에 누워서 자는 애들, 전공실 자기 책상에 엎드려 잠든 애들, 새벽에는 밤새도록 술 먹고 전공실에 잠자러 온 애들 다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했다. 화장실 맨 왼쪽 칸은 변기가 없고 수도꼭지에 호스가 달려있어서 그걸로 몸에 물을 뿌려가면서 냉수샤워를 했다. 겨울에는 꽤 추웠다. 아마도 대학교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며 살았던 대학생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샤워를 하고 트렁크에 있는 옷으로 갈아입고 멀끔하게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아침 일찍 한 여자 후배가 전공실에 왔었다. 그 애는 밤에 편의점 알바를 하는 친구였는데 야간알바가 끝나고 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몇 개 들고 전공실로 왔다. 그 후배와 함께 날짜가 지난 삼각김밥을 나눠 먹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낮에는 학교 다니고 밤에는 편의점 알바를 했으니 잠은 언제 잤나 싶다. 한밤중에 편의점을 지키던 후배가 얼마나 졸렸을지 하품을 얼마나 많이 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때는 몰랐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먹고 배가 아플 것 같아서 안 먹고 버렸던 적도 있다. 내 삼각김밥까지 챙겨준 후배는 몰랐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미안하다.


그 후배는 디자인을 잘하고 똑순이 같은 애였다. 내가 00학번, 그 친구가 04학번이었다. 나는 밀레니엄 학번, 걔는 공포학번으로 불렸다. 02학번은 오투 산소학번, 03학번은 오쓰리 오존학번이었던 게 기억난다. 경상남도 봉화에서 사과농장을 하는 과수원집의 딸내미였다. 같은 해에 졸업을 했고 졸업앨범에 함께 사진이 실린 졸업동기다. 벌써 대학을 졸업한 지가 15년 가까이 흘렀다. 그 친구는 디자인 전문회사에 들어가서 폐인처럼 밤새면서 일했었고 중간중간 이직을 하고 진로를 바꿨다. 나처럼 말이다. 그리고 돌고 돌아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함께 과수원을 하고 있다. 결혼도 하고 이름도 바꿨다. 가끔 그 녀석이 생각나서 사과를 주문하면 타이밍을 놓쳐 사과가 다 팔렸다는 말을 듣는다. 사업이 잘 되나 보다. 사과 중에 처음 열린 사과와 햇사과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는데 그 친구는 얼마나 좋은 사과를 많이 먹었을까? 참으로 똑똑한 친구였는데 첫 사과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


종종 녀석의 카톡을 본다. 꽤나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졌다. 하긴 결혼도 하고 30대 후반의 아주머니니까. 말괄량이 같았던 녀석은 돌멩이처럼 세상과 부딪히며 살았던 것 같다. 경상도에서 강원도까지 혼자 학교에 와서 과사무실에서 일하고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면서 대학을 다녔고 사회초년생이 돼서 사회조직에 이리저리 구르고 부딪히며 세상을 배웠을 것이다. 동글동글 조약돌처럼 단단한 친구였는데 어떻게 동글동글한 조약돌이 되었는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금은 사랑하는 남편의 품에서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살고 있다. 지금 다시 카톡을 확인해 보니 세상에! 아기사진이 올라와있다! 드디어 엄마가 된 것이다! Congratulation!


함께 글 쓰는 모임이 있다. 이번달 글쓰기 주제단어 중에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 하면 그 친구와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이 생각난다. 아직도 이른 아침 전공실에 앉아서 삼각김밥을 나눠먹던 모습이 기억 속에 아스라이 남아있다. 삼각김밥을 내려다보는 나의 시선을 잊지 못할 것 같다. 후배에게 출산 선물이라도 하나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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