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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Oct 31. 2023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 스몰토크 8

붕어빵

 10월 7일 초등학생 조카와 함께 붕어빵을 먹으러 아차산역으로 향했다. 아차산역 3번 출구 바로 앞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내내 붕어빵을 파는 가게가 있다. 천 원에 붕어빵을 4마리나 주는 인심 좋은 가게지만 주인아주머니는 잘 웃지 않으시고 차가운 분이다. 군자역에서 붕어빵 가게까지 걸어가면 20분 정도 걸리는데 중간쯤 가서야 지갑에 현금이 없다는 걸 알았다. 


'계좌이체를 해야겠군.' 


계좌이체가 가능한 페이코 앱을 열어 국민은행 통장 잔액을 확인했다. 통장에는 4천만 원이 아닌 4천 원밖에 없었다. 4천8백 원 정도. 아무리 휴직 중인 공무원이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통장에 4천 원밖에 없었다는 게.... 재정관리에 더 신경 써야겠다. 


"붕어빵 3천 원어치 주세요."


아주머니는 잠깐 눈을 마주치고 아무 말도 없이 종이봉투 2개에 붕어빵을 6마리씩 담아주었다. 나는 아이폰의 3천 원 이체 화면을 보여주었고 역시 아주머니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붕어빵 가게 바로 앞에 있는 건물 앞에서 겉바속부 몸통에 달달한 팥앙금이 들어있는 붕어빵을 깨물었다. 달콤하고 맛있었다. 순식간에 여러 마리가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조카 녀석은 슈크림 붕어빵이 아니라며 먹기를 거절했다. 난감했다.



아직 겨울도 안 됐는데다 슈크림 붕어빵을 파는 가게가 우리 동네에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달래 보고 꼬셔도 봤지만 녀석은 말도 안 하고 삐져버렸다. 인생을 아주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대단한 녀석이었다. 슈크림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이렇게나 맛난 팥붕어빵을 거절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녀석은 B형 남자다. 집요한 B형 남자, 조카는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나는 착한 A형, 녀석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아무튼, 녀석의 기분을 풀어줘야 했기에 인터넷으로 조회도 하고 열심히 머릿속을 스캔했다. 바로 그때!


"아! 저기 삼거리로 가보자! 거기도 붕어빵 가게가 있어! 슈크림 붕어빵도 팔 거 같아!"


나는 흥분돼서 녀석을 데리고 그곳으로 갔다. 5분 정도 걸어가니 가게가 보였고 도착해 보니 슈크림 붕어빵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 천 원밖에 없었다는 거다. 4천 원 남은 통장에서 3천 원을 써버렸으니 천 원밖에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그곳은 붕어빵이 2천 원에 3개였다. 불과 10분도 안 떨어진 붕어빵 업체의 가격차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한 곳은 천 원에 4개, 다른 곳은 2천 원에 3개라니! 우리 동네의 요동치는 물가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건 뭐 제쳐두고라도 조카의 입에 슈크림 붕어빵을 넣어 줘야 했다. 나는 천 원에 슈크림 붕어빵 1개 or 2개를 달라고 협상을 할 참이었다. 그리고 페이코 앱을 열었다. 그런데!


내 통장에는 여전히 4천 원이 남아있었다. 신기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전산오류가 난 건가? 이체는 됐는데 통장에는 남아있는 전산오류? 3천 원이 사라지기 전에 어서 빨리 결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차산역 3번 출구 붕어빵 가게 아주머니에게 이체를 제대로 안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앞에 있는 슈크림 붕어빵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서둘러 주문을 했고 이체를 했다. 


슈크림 붕어빵 한 마리를 녀석에게 주고 나도 한 마리를 먹었다. 참고로 나는 꼬리부터 먹는 스타일이다. 꼬리가 더 바삭하기 때문이다. 맛있었다. 너무 맛있었다. 솔직히 팥보다 맛있었다. 왜 녀석이 슈크림 붕어빵을 더 좋아하고 팥붕어빵을 천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양갱도 맛있지만 페레로로쉐 초콜릿이 더 맛있는 것과 같은 이유다. 슈크림은 팥보다 더 달콤했다. 이제 빨리 집으로 가서 내 방에 있는 동전 저금통을 뒤져서 3천 원을 갖다 드려야 한다. 나는 조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녀석에게 말했다.


"3천 원 안 갖다 줄 거야." 



물론 장난이었다. 내 말을 들은 조카 녀석은 어이없어하며 이 놈 완전 쓰레기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결국 4일이나 지난 10월 11일 수요일 붕어빵 사장님을 찾아가서 3천 원을 드렸다.


"지난주 토요일에 입금이 안 됐었어요."


사장님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표정이더니 금방 내 말을 알아차리고는 활짝 웃으면서

내가 건넨 3천 원을 받았다. 나는 궁금한 걸 물어봤다.


"천 원에 4개 팔면 너무 싼 거 아니에요?"


"싸게 팔아도 괜찮아요." 


사장님이 여유 있게 말했다. 


"그렇구나.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몇 발자국 걸어가는데 갑자기 붕어빵들이 진열된 모습의 사진을 찍고 싶어서 다시 돌아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아주머니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커다란 군밤 두 개였다.


"아.... 괜찮은데요...."



아주머니는 웃는 얼굴로 괜찮다며 먹으라고 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군밤 두 개를 받았다. 뜨거웠다. 아주 커다란 녀석 두 알이 한 손을 가득 채우고 열기를 발했다. 마치 핫팩을 잡고 있는 것처럼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아주머니의 밝은 표정을 보니 아주머니도 3천 원을 돈통에 넣으면서 마음이 좋아지신 것 같았다. 3천 원으로 이 정도 효과를 누린다면 가성비가 꽤 괜찮은 일 같다. 

그로부터 며칠 뒤 토요일 오전이었다. 도서관에서 하는 수업에 지각을 해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붕어빵가게가 보였다. 


'붕어빵사서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이랑 먹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괜히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돈 쓰는 게 싫어졌다. 그러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에잇, 붕어빵 얼마 한다고!'


역시 3천 원어치를 샀다. 아주머니가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는 것 같았다. 아차산역에서 도서관까지 걸어가면 40분 정도는 걸린다. 붕어빵을 담은 종이봉투를 받아서 최대한 식지 않게 하기 위해 가슴에 품었다. 그런데! 세상에!


너무 따뜻했다. 늦가을 토요일 오전, 쌀쌀은 아니지만 서늘한 날씨에 뜨거운 붕어빵을 가슴에 품으니 따뜻해도 너무나 따뜻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3천 원으로 이 정도 효과면 역시 가성비가 굉장했다. 느릿느릿 45분 정도 걸어서 도서관에 도착하니 붕어빵들은 미지근한 붕어떡들이 되어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책상 밑에 숨겨놓은 녀석들을 꺼냈다. 붕어떡들이 담긴 종이봉투는 장마철처럼 눅눅해져 있었다.


다행히 사람들은 붕어빵을 반기고 좋아했다. 선생님은 밀가루 단식 중이라며 먹지 않았다. 우린 식어져 버리고 눅눅한 붕어빵을 2-3마리씩 먹었다. 잠깐이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눴다. 틀에서 나온 붕어빵이 틀에 박힌 일상을 사는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걸 보니 오랫동안 붕어빵이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나도 붕어빵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붕어빵이 먹고 싶다. 그런데 나도 밀가루 단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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