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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Dec 04. 2023

최저시급 받는 공무원 퇴사자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 스몰토크 17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서점과 출판사를 차리고 싶어서 사무실과 점포를 알아보고 다녔다. 그런데 퇴직금을 공무원 연금에 모두 때려 넣어서 통장에 총알이 별로 없었다. 맘에 드는 가게가 있었는데 대출을 받아야 해서 마음을 접었다. 예쁜 애견 옷을 만들고 판매하는 노란색 아이보리 컬러의 가게였는데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계약을 했어야 했나 싶다. 대출 없이 내가 갖고 있는 돈으로는 시골에 버려진 집처럼 허름하거나 인적이 드물거나 너무 작은 가게만 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나는 왜 몰랐을까?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사업을 하기보다는 먼저 출판사에서 일을 배워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출판사 몇 군데에 입사지원을 했다. 디자이너는 포트폴리오가 중요한데 내 포트폴리오가 쉬원찮았는지 연락이 오지 않았는데,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요즘 출판 시장이 호황은 아니니까 급여는 기대하지 않았다.  

   

“급여가 어떻게 되나요?”

“얼마 생각하시는데요?”

“월 200만 원은 받을 수 있나요?”

“물론이죠! 월 200은 드려야죠!”     


월 200만 원이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급여 걱정 없이 지냈던 공공기관, 공무원 생활만 10년 넘게 해왔으니 다른 기업의 급여 사정을 잘 몰랐다. 지인과 얘기를 하다 보니 요즘에는 신입 최저연봉이 2200만 원 정도 된다고 들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기본 연봉이 1800만 원이었는데 물가가 많이 오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바로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유는 공무원을 그만둔 지도 얼마 안 되었고 포트폴리오와 작업물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선 3개월 동안 오후 3시 30분까지만 근무해도 되는지 물어볼 계획이었다.          


 출판사에는 디자인전공자가 한 명 있었는데 11월로 퇴사할 예정이라 일할 사람을 빨리 구해야 했다. 첫 번째 면접을 보러 갔는데 사장님은 내 포트폴리오를 보시고 확신이 서지 않으셨는지 입사 테스트 과제를 내주었다. 새로 만들 책의 표지디자인이었고 3일 동안 디자인 3안을 만들어서 이메일로 제출했고 감사하게도 통과했다. 두 번째 면접을 볼 때 출판사는 풀타임으로 일해주길 원했지만 나는 먼저 3개월 동안 3시 30분까지만 일하겠다고 했고 다행히 사장님이 OK를 해줬다.      



 첫 출근을 했고 며칠 뒤 계약서를 썼다. 신분은 계약직 지원, 급여는 최저임금을 받았다. 계약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서명을 했는데 최저시급 9,650원이 적혀있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 이후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어서 최저시급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최저시급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니 내 시급과 다른 사람들의 시급이 비교되었다. 의사들은 시급이 50만 원 정도 된다고 들었다. 지금 내가 최저시급을 받는 게 맞나? 나의 시급은 정확히 얼마나 될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시급을 늘릴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생각해 보면 월급은 시급이니까. 지금부터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풀타임으로 일해 달라고 했는데 파트타임으로 일한다고 해서 일하고 있어요."


공무원을 그만두고 그래도 곧바로 이름 있는 출판사에 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시급을 말하지는 않았다.


최저시급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점심시간은 1시간인데 시급은 나오지 않고 한 달에 7만 원이 식대로 나온다. 월~금 20일 근무하면 하루 식대로 3천5백 원이 나오는 것이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식대다. 요즘 점심먹고 커피마시면 만원이 넘게 드는데 점심값으로 그렇게 큰 돈을 쓰고 싶지도 않았고 밥먹으러 왔다갔다 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간단하게 도시락을 먹었다. 연차가 높은 직원이든 아니든 다른 직원들도 나와 비슷하게 급여를 받는 것 같았다. 그래도 서로 간식도 사서 나눠먹고 내 사수는 나에게 점심밥도 사줬다.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라는 말은 내가 일하고 있는 출판사와 가장 적합해 보였다.     


맡겨진 일은 새로 나올 책의 표지디자인이었다. 출판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하는데 일이 아주 많아서 출판 스케줄이 밀려있을 정도였다. 그 말은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는 이야기다. 오랜만에 디자인 실무를 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디자인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현직에서 책을 만드는 전문가들에게 일을 배우는 것도 아주 재밌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도 좋았고 내 사수도 좋은 분이셔서 친절하고 꼼꼼하게 업무를 잘 가르쳐주셨고 여러모로 챙겨주셨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프로그램 사용 문제였다. 규모가 있는 출판사인데 한글프로그램을 가정, 학생용을 사용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설치해 준 직원에게 문의해 보니 비용을 아끼려고 그러는 것 같다고 했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출판사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수십 년 동안 수 천권의 책을 만들고 있는 출판사다. 경력 인정을 안 해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최저시급을 주는 것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다루는 출판사에서 한글 프로그램을 가정용, 학생용을 쓴 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사장님은 강남에 빌딩이 있는 부자다.     


지원부서 담당자에게 프로그램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사수에게도 말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이 맞는 건가라는 고민도 든다. 분명 바른 프로그램을 쓰는 게 맞지만 그렇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해해야 하나? 참고 버텨야 하나? 모든 것이 완벽한 기업이 있을까? 내 마음에 꼭 드는 회사가 있을까? 나에게 중요한 조건은 2가지였다.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과 3시 30분 퇴근이었다. 나의 컴플레인을 통해서 출판사에서 계속 일을 하든 안 하든 출판사가 정직하고 정당하게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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