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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Dec 21. 2023

290만 원 건강보험료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 스몰토크 20

공무원을 때려치운 지 2달이 되고 있다. 2달이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공직자가 아닌 일반인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걸까?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2통이나 와있었다. 카톡에 메시지도 와있었다. 퇴직 전 근무했던 학교의 급여담당자였다. 퇴직급여도 받았고 퇴직수당도 받았으니 받을 건 다 받은 상태에서 회계 담당자가 보낸 카톡을 열어보니 역시 무언가 뱉어내라는 말이었다. 


1년 4개월의 휴직기간 동안 안 냈던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라는 내용이다. 이미지파일을 첨부했는데 왼쪽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었고 오른쪽 끝에 내가 내야 할 건강보험료가 적혀있었다. 이름이 있는 행을 따라 쭈욱 끝까지 가보니 숫자가 굉장히 많아 보였다.


2,909,260원

처음에는 29만 원으로 읽었는데 자세히 보니 290만 원이었다. 깜짝 놀랐다. 무슨 건강보험료가 290만 원이 된단 말인가? 그리고 휴직기간에도 휴직급여를 받았지만 보험료가 빠져나간다고 알고 있었다. 퇴직금은 공무원연금에 모두 때려 넣었고 퇴직수당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300만 원 가까운 돈을 뱉어내야 한다니 당황스러웠다. 


급여담당자가 미리 연락을 했었어야 했는데 납부기한 당일 오전 10시에 카톡을 보내서는 오전까지 납부를 해달라고 했다. 우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학교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건강보험료가 많이 나왔네요. 제가 휴직기간에도 보험료를 낸 걸로 알고 있거든요."


"보험료가 아니라 기여금을 내고 계셨어요. 오늘까지 납부를 안 하면 학교 통장이 펑크가 나서요. 오늘 꼭 내주셔야 해요."


"갑자기 300만 원 가까운 돈을 바로 내라고 하니까 당황스러워서요. 선생님에게 뭐라고 하는 건 아니고요."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저도 오늘 봐서 죄송합니다. 퇴직금 받으셨죠?"


"제가 건강보험공단에 연락을 해볼게요. 저도 지금 퇴직수당으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큰돈을 한 번에 내면 생활하는데 지장이 있어서요."


"건강보험공단에서 가능할까요? 그럼 빌려서라도 내시는 게....."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분명 급여 담당자 잘못은 아니다. 어차피 내가 내야 할 돈이니까. 그런데 급여담당자 목소리에서 뭔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자기가 미리 말을 안 해줘서 납부 당일 오전에 부랴부랴 300만 원을 내라고 하는 상황인데, 내가 납부를 안 하겠다고 버티는 모양새로 전화통화를 이끌었다. 나는 외부에 있고 자기는 사무실에 있으니까 전화통화를 듣는 사무실 직원들에게 자기를 보호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퇴직할 때 건강보험료에 대해서 말했었고 자신이 나 때문에 난처한 상황이라는 말을 내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직원들 들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평소 친절했던 직원이 교묘하게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나의 상상일 수도 있다. 빌려서라도 내라는 말도 어이가 없었지만 더 이상 담당자가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학교 통장이 빵구가 나면 얼마나 난처하겠는가. 공무원도 아니고 공무직이신데 말이다. 전화를 끊자마자 현재 통장에 들어있는 전재산 가까운 돈을 곧바로 입금해 줬다. 이제 진짜 통장이 아니라 텅장이 돼버렸다. 뒤늦게 알아보니 건강보험공단에 분할납부 제도가 있다고 한다.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심호흡 한번 크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지역가입자일 경우에 연소득이 6억 6,199만 원이 넘으면 건강보험료 최대치인 3,991,280원을 내고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직장가입자는 월급이 1억 1,032만 원이 넘으면 마찬가지로 건강보험료 최대치를 3,991,280원을 내고 더 이상 내지 않는다. 만약 건강보험료가 밀려서 290만 원이 낸 게 아니고 이번달 보험료로만 청구되었었더라면 한 달 급여가 41,000,000원이었어야 한다. ANOTHER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290만 원의 보험료를 내서 연말연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내 생애에 한 달 보험료로 290만 원을 내는 날을 꿈꿔본다.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인 금전출납부를 쓰지도 않고 통장을 자세히 보지도 않는다. 솔직히 돈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점점 수중에 돈이 없어지니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빨리 다른 직장을 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보지만 연락은 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겠다는 조바심이 든다. 솔직히 공무원을 괜히 그만두었나 싶은 후회가 든다. 바보처럼 아무 대책 없이 의원면직을 한 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대학교 졸업 후 계속해서 직장에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청년실업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내가 실업자가 되어보니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가고 있다. 동병상련이란 말처럼 내가 겪어보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는 게 맞다.


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지만 그럴 때일수록 감사하는 마음과 즐거운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보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더 잘 믿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차곡차곡해나가야겠다. 그리고 돈 버는 공부를 해야겠다! 건강보험료 최대치를 내는 멋진 남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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