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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an 29. 2024

자동 만보기와 다리 골절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 스몰토크 21

만보기와 다리 골절


지난여름 강화도에서 1박 2일 캠프가 있었다. 아는 형님과 선발대가 되어 캠프장에 미리 도착을 했었다. 늦은 시간까지 힘들게 일을 하고 숙소에 들어왔는데 형님이 방구석 콘센트 주위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세팅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뭘 충전하나?’


형님은 어떤 장치를 바닥에 설치했는데 모양이 신기했다. 마치 자명종 시계의 추처럼 핸드폰이 공중에서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는 거였다. 요즘 충전기는 피아노 메트로놈처럼 인테리어 소품역할까지 하나 싶어서 물었다.


“형님, 저게 뭐예요?”


“아! 저거, 핸드폰 충전해 주면서 걸음수 늘려주는 거야.”


요즘 보험상품 중에 일정 걸음수를 채우면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특약 같은 게 있는데 그런 상품을 가입한 모양이었다. 잘 걷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말처럼 걷기 만한 좋은 운동이 없다고 하는데 보험고객이 열심히 걸을수록 더 건강해질 테고 그럼 보험회사에서도 보험금 청구가 줄어들 테니 영리한 상품을 만들어서 잘도 파는 똘똘한 세상에서 나온 좋은 보험상품인 것 같다.  


오랜만에 상부상조하자는 보험회사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치듯이 교묘하고 영악한 속셈으로 걸음수를 늘리는 제품을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형님, 저거 사기예요?”


약간의 무례함을 무릅쓰고 형님에게 말했더니 형님은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야, 그런 거 아니야. 나 원래 하루에 만보이상 걸어. 그냥 하는 거야.”


형님은 얼버무리듯 둘러댔는데 나는 뭐 저따위 물건을 쓰나 싶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불법을 보면 신고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인데, 엄연한 불법 같은 행동을 하는 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험회사가 어딘지도 모르고 아는 형님이 거짓으로 걸음수를 늘리고 있다고 신고를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답답해졌고 형님과 말도 하기 싫어서 바로 잠을 잤다.



그렇게 캠프가 끝나고 얼마가 지났을까 형님이 단체톡에 사진을 올렸다. 다리 골절상을 당해 응급실에 가서 깁스를 한 사진이었다. 나는 사진을 보자마자 형님의 사기 만보기 충전기가 떠올랐다. 사기로 만보를 채우니까 다리가 부러지는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거 봐요. 형님. 그렇게 걷지도 않으면서 만보기 충전기로 사기를 치니까 멀쩡한 다리가 부러진 거 아녜요? 부끄러운 줄 아셔야지!”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몇 달을 깁스를 하고 절뚝거리다 괜찮아진 형님에게 솔직하게 물어보고 싶다.


“형님, 아직도 사기 만보기 충전기 쓰세요? 정신 차리시고 그 기계 냅다 버리세요.”


역시 이 말도 하지는 못했다.


물론 형님의 다리 골절과 사기 만보기 충전기 사용이 인과관계로 연결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인간이 모두 이해할 수는 없으니 나도 정답은 알 수 없다.


과연 형님은 다리가 부러지고 나서 자신이 썼던 사기 만보기 충전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A : ‘저거 쓰다가 벌받았나보다. 에잇! 저거 버려 버려야지!’

B : ‘아이쿠, 저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네. 다리도 부러졌는데 저거라도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깁스 풀 때까지 까먹지 말고 걸음수 채워야지.’



형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장기 두는 사람보다 훈수 두는 사람이 판을 더 넓게 보는 것처럼 나도 내 잘못을 못 보고 다른 사람 잘못만 크게 보는 실수를 하고 있을게 뻔하다.



나는 7급 공무원도 때려치우고 결혼도 못하고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루저 중에 캐루저같을 때가 있어서 우울해지고 겁이 나고 화가 날 때가 있다. 문득 나의 어떤 잘못들이 이런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하다. 나의 잘못들을 돌아보면 공개할 수 없는 잘못들이 얼마나 많은가. 거짓말, 게으름, 교만함, 탐욕, 탐식, 나태, 질투 등 그중에서도 인생을 걸쳐 나를 괴롭히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잘못들이 있다.


똑같은 유혹에 걸려 넘어지는 나를 보고 낚싯바늘에 걸린 붕어가 생각나서 한동안 낚싯바늘을 작은 플라스틱 통에 넣어 다닌 적이 있었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바늘을 보면서 멍청하게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다짐이었다.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음에도 자신이 지금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무슨 의도인지, 어떤 결과가 생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잘 모른다. 잘못인지도 모르고 잘못을 하고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못을 한다. 그럼에도 잘못을 줄이려는 노력들이 나를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고 믿는다. 내려가는 에스켈레이터에서는 계속 계단을 올라가도 제자리인 것처럼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제자리걸음도 운동이다. 분명 다리는 튼튼해지고 심폐지구력도 늘어나고 있다. 더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의 걸음을 멈추지 않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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