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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Feb 05. 2024

소금과 죽음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 스몰토크 22

 어렸을 적 제일 좋아하는 율무차에 설탕대신 소금을 잔뜩 넣어 마신 트라우마가 있다. 그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달콤하고 고소한 율무차를 기대하며 한 모금을 듬뿍 들이켰는데 바닷물보다도 훨씬 짜디짠 소금 율무차가 혓바닥을 온통 뒤덮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 느껴지는 뇌의 진한 삼투압 경고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금을 좋아하지 않는다. 설렁탕처럼 개인이 소금 간을 해야 하는 음식들도 나는 간을 하지 않고 먹는다. 평생 맛볼 짠맛을 그때 맛봐서 그런 것 같다. 


I really don't like saltness!


마찬가지로 간장도 질색을 한다. 예전에 간장과 콜라를 두고 서로 속이는 게임이 유행한 적이 있다. 간장을 맛보면서도 콜라를 맛보듯 아무렇지 않게 마셔서 청중을 속이면 이기는 게임인데, 나는 잠깐도 견디지 못하고 들통이 났던 기억이 있다. 



소금과 죽음에 대하여 


글쓰기 모임을 하는데 소금의 염장과 죽음의 염장이 같은 단어라는 말에 소금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먼저 예전부터 궁금했었던 성경 마가복음 9:49-50 말씀을 먼저 읽어본다.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49절에 지옥은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는 괴로운 고통스러운 장소를 묘사하는데 소금이 사용된다. 그리고 50절에는 소금은 좋은 것이라고 나온다. 이런 극적인 표현의 이중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소금의 특이성을 알고 싶어졌다. 성경을 조금 더 살펴보면 마태복음에는 아주 유명한 빛과 소금 이야기 나온다. 크리스천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만일 크리스천이 짠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없어 버려져 비참해질 뿐이라는 내용도 나온다. 이렇듯 성경에는 소금이 중요한 모티브로 자주 등장하는데 잘못해석하면 안 되니까 정확한 신학적 의미는 목사님께 여쭤봐야겠다. 





다시 나만의 느낌적인 느낌으로 소금 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한글 염에는 다양한 한자가 숨겨있다. 짠맛의 염 鹽 죽음의 염 殮 염증의 염 炎  생각의 염 念 등 여러 뜻이 있는데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연결된 느낌을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모두 옅어진다는 것이다. 소금도 녹으면 농도가 옅어진다. 죽음 후에는 망자에 대한 존재와 기억이 점점 옅어진다. 생각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희미해진다. 화염이나 염증도 결국에는 약해진다. 우리 선조들이 옅어진다는 느낌의 말들을 모두 같은 '염'이라는 글자로 쓴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느낌적인 느낌대로 말이다. 마치 영어 화이트와 국어 하얗다가 비슷한 발음처럼


언어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를 표현하는 기록하는 도구다. 그 도구를 더 깊이 감각적으로 느끼고 알고 사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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