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리우스 Mar 04. 2024

20살 재수할 때 여자친구를 만났다. 여자친구는 고3, 나는 재수생. 우린 같은 미술학원을 다녔다. 미술학원 뒤에 오락실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같이 오락을 하게 되었다. 그때 교복을 입고 있던 그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게임을 할 때 내 마음의 전구에 발그레한 불빛이 들어왔다. 그 친구는 생일이 4월 7일이었는데 잘 잊어버리는 나를 위해 외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오빠, 내 생일은 꽃이 피는 4월에 행운에 숫자 7이야!"

"응, 꽃이 피는 4월에 행운에 숫자 7!"


20년이 지났는데도 잊히지가 않는 말. 꽃이 피는 4월에 행운의 숫자 7. 보송보송한 솜털이 남아있던 고3과 재수생 커플은 지하철을 타고 데이트를 했고 몇 시간을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경춘선을 타고 강촌에서 자전거도 타고, 춘천여행도 했다. 첫사랑이 그렇듯 어렸던 우리는 아니 바보 같은 나 때문에 군대 가기 몇 달 전 헤어졌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났고 그 주 토요일에 우리는 내 차를 타고 남산으로 드라이브를 하며 마지막 데이트를 했다. 몇 년이 지나고 그녀의 카톡에는 결혼사진과 엄마를 쏙 빼닮은 예쁜 딸 사진들이 올라왔다.


싸이의 노래 중에 '어땠을까'라는 노래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날, 헤어지지 않고 안아주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하는 노래다. 나도 한번 생각해 본다. 어땠을까? 그냥 살짝 웃어보지만.... 시간이 흘러도 가슴이 뭉글한 건 어린 날 헤어짐과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든 삼켜내야 했던 기억을 몸이 기억하는 것 같다. 그 친구도 나에 대해서 그러려나? 친구에게 들은 말이 생각난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


봄이 오면 인생의 봄날에 만났던 생일이 봄이었던 여자친구가 생각난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화내게 하는 미친 자들과의 작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