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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Mar 05. 2024

바지에 똥싸는 공무원 10

like 인도코끼리

아침에 출근해서 동료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일을 나왔는데 7시 37분부터 배에서 묵직한 신호가 왔다. 응가 신호다. 참아보려고 했는데 신호벨이 급하게 왔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있던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고 근처 상가건물로 달려갔다. 파리바게트가 보여서 서둘러 식빵 하나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하면서 화장실이 있는지 물으니 위치와 비밀번호를 말해주었다. 


파리바게트에 있는 테이블에 잠바를 빠르게 벗어놓고 미로 같은 상가복도를 달렸다. 너무 급해서 지퍼와 바지단추를 풀면서 화장실을 향해 뛰었다.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고 변기칸으로 갔는데 세상에! 휴지가 없었다! 오! 맙소사! 휴지를 사러 갈 수도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잘못하면 팬티에 쌀 것만 같았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잊지 못할 일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 경거망동해서는 안된다! 다행히 남자화장실 바로 옆에 붙어있던 여자화장실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나는 남자화장실 입구에 몸을 3분의 1 정도 내밀어서 소리쳤다.


"어머님! 어머님! 거기 혹시 휴지 있어요?"


나의 다급함을 금세 알아차리셨는지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잠깐만요!"


몇 초가 흘렀을까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소리쳤다.


"어머님, 제가 급해서요...."


불안해 떨며 힘껏 힘을 모아 참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분홍색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하얀색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여자화장실 입구로 나오셨다. 뽀송뽀송한 엠보싱이 들어간 폭신한 휴지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아~감사합니다~어머님!"


나는 서둘러 변기칸으로 뛰었고 앉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볼케이노가 되었다. 인도코끼리처럼 어마어마한 양이 변기를 듬뿍 채웠다. 얼마나 시원하고 통쾌했는지 모른다. 지난밤에 먹었던 걸 생각해 보니 아이스크림 3개, 컵라면 큰 거 하나, 작은 거 하나, 저녁밥, 당근, 양배추, 사탕이 있었다. 많이 먹으니까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속도를 내서 마무리를 했다. 세면대로 갔는데 비누가 없어서 물로만 열심히 손을 닦았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청소 아주머니가 앞에 계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아주머니는 무덤덤해하셨다.


'침착하신 분이구나.'


종종걸음으로 파리바게트에 벗어놓은 잠바를 챙기고 비치되어 있던 손소독제로 열심히 손소독을 하고 차로 갔다. 내 손에는 식빵이 들려있었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것처럼 경쾌한 발걸음이었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계셨던 아주머니에게 감사하며 위급한 상황에서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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